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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다른 기차역에서의 사례이다

안내소 데스크 앞에 나보다 먼저 온 두 남자가 있었는데 누가 먼저 줄을 섰는지 확실히 몰랐다. 거기에는 두 사람이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옆을 보면서 조금 앞으로 가고 흡사 텃세를 부리는 태도로 무언극을 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직원이 이를 눈치채고 "다음은?" 이라고 하자, 그 둘 다 당황한 듯했다. 왼쪽 남자가 손바닥을 펴서 옆의 사람에게 앞으로 가라는 포즈를 취하자 오른쪽의 남자도 '아닌데...... 나는 괜찮은데......'라는 반응을 보인다. 왼쪽 남자가 '그렇다면, 음......'한다. 그러자 내 뒤에 서 있던 사람이 '그냥 아무나 빨리 가지'라는 투의 기침을 한다. 왼쪽 남자가 서두르면서 '오, 알았습니다......감사합니다'라는 몸짓을 취한다. 그러곤 앞으로 가서 문의하지만 좀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른쪽 남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뻐기는 표정으로 자기가 한 일로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건 아주 흔한 일이고 나는 이것을 본 대로 기록했다. 가장 전형적이고 특징도 없으며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이런 일화들이 깔린 불문율의 공통분모는 분명하다. 만일 당신이 공정하게 행동하고 당신 앞에 선 사람의 권리와 우선권을 인정할 때, 상황이 좀 애매모호해도 우선권을 주장하지 않고 양보 할 때, 그들은 그 대가로 피해망상에 가까운 의심과 적대적인 태도를 즉시 버리고 당신을 공정하게 대한다. 그뿐 아니라 자신의 자리까지도 양보해줄 정도로 인심을 쓰기도 한다.
줄서기는 공정함 바로 그 자체이다. 조지 마이크가 지적했듯이, "한 줄에선 한 사람은 공정한 사람이다. 그는 남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삶을 살고 타인의 삶도 존중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서 자기 권리를 행사할 때를 기다린다. 그는 한 사람의 영국인이 믿음을 갖고 행하는 모든 일을 한다."

줄서기라는 드라마

외국인은 우리의 불문율인 줄서기 규칙의 복잡성에 어리둥절해하나 영국인에게 이건 찬성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모든 규칙에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복종한다. 방금 설명한 상호모순, 비합리성, 완벽한 부조리에도 불고하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이 우리는 줄서기를 정말 잘한다. 물론 외국인들이 이를 칭찬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영국인의 줄서기 재능을 얘기할 때 약간의 냉소를 담아 정말 재미 없고 고달픈 양 같은 인간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질서정연하게 줄 설 수 있는 자신의 불쌍한 능력에 자부심을 갖는다라는 뜻으로 말한다("영국인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라면 잘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줄을 잘 서니까"라고 말하며 그들은 웃었다). 우리를 비평하거나 정말 약간의  칭찬을 곁들여 혹평을 하는 그들도 한 줄에 선 영국인은 공정한 사람이라고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줄 선 그가 결코 그 분이 좋거나 신이 난 상태는 아니라는 점은 꼬집는다.
그렇게 얘기하는 이들은 영국인의 줄서기를 아주 가까이서 꼼꼼히 지켜보지는 않았음이 분명하다. 이는 개미나 벌을 지켜보는 것과 같다. 무관심한 사람에게 줄서기는 재미없고 흥미도 없다. 그냥 깔끔하게 줄을 선 사람들이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줄서기를 사회과정의 현미경을 통해서 보면 하나하나가 다 미니드라마임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시대 풍속 코미디'가 아니고 진정한 인간 본성에 관한 드라마다. 음모와 속임수, 격렬한 도덕적 딜레마, 명예와 이타주의, 적과의 동침, 수치와 체면치레, 분노와 화해들로 가득하다. 나는 지금 클래펌 정크션역 매표소 줄을 보고 있다. 그렇고 '전쟁과 평화'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약간 낮추어 말하기와 영국인인 점을 감안해서 말한다면 '오만과 편견' 같다고나 할까?

정말 영국인다운 헌정

다이애너 비의 죽음을 보도하는 기사들 중 가장 웃긴 것은 기자와 아나운서 들이 시민들의 '비영국적'인 반응에 흥분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경악하는 태도였다. 그들은 예외 없이 "대중들이 유례 없는 감정을 표출했다"느니 "시민들이 전대미문의 비탄을 쏟아냈다" 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장례식 내내 흥분해서 과장된 주장을 일삼았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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