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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8
무제(폴라드거리의 꽃)/ 뱅크시
Untitled(Pollard Street Flower)/ Banksy
 

모두가 초대받은 파티

필자는 취미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취미문화의 선진국 영국이나 일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꿈을 심어줄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의 취미가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고 본다. 취미란 ‘즐기려고 사랑하며 좋아하는 일’을 말한다. 운동을 하건, 뭔가를 수집하건, 어디를 다니건, 취미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즐기려는 자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성향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도덕성을 형성한다. 필자가 영국의 초등교육이 보다 취미지향적이라는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전문성의 반대개념으로 사용되는 취미라는 성향을 억압하는 것은 사회의 제도가 만들어내는 준엄한 타율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제도 혹은 입시제도, 취업제도 등이 만들어내는 타율적 미의 보편화는 현대인이 생존하기 위하여 맞닥뜨려야 하는 필연적인 것이므로, 얼마만큼 심도 있는 취미를 지니고 있느냐는 머지 않은 장래에, 자율적 도덕성을 얼마나 손쉽게 손에 지니고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라고 본다. 
현대미술의 실망스러운 전문화에 대립되는 취미의 대표적인 것이 낙서(Graffiti)다. 런던의 구석구석을 장식한 낙서들을 미술로 인정할 것인가 아니냐는, 현재까지는 개인의 예술적 취향에 맡겨져 있다. 미술이라는 문화가 형성한 거대하고 불합리한 제도권에 반대하는 그들의 작품들은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려 한다는 의미에서는 ‘저주받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작품의 정상적 유통 경로를 무시하고 파괴한다는 측면에서 그들을 경멸하는 용어가 바로 ‘반달리즘(Vandalism)’이다. 그러나 반달리즘이라는 용어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의 질서파괴를 의미하는 것이지 반달족들의 입장이 고려되지 못한 상대적 표현이라는 것은 엄연한 상식에 가깝다. 낙서족들(Graffiti Artist), 그 저주받은 미술가들은 모두가 잠든 밤 사이에 세상의 미를 바꾸려는 자들이다. 그들은 명예나 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순수한 미술의 부활을 꿈꾸는 게릴라들이며 아마츄어 혁명가들이다. 그들은 거대한 사회의 타율에 맞서서 자율적으로 취미를 실현하려는 소박한 범법자들일 뿐이다. 그들의 영웅 뱅크시(1974?~ )는 오늘날 영국의 가장 중요한 미술가의 한 명이라고 불리어 마땅하다.
미국에서 열렬히 환영 받으며 최고 지존으로 등극한 뱅크시는 낙서의 위력을 세계에 알렸다는 의미에서 가장 성공한 낙서족이며, 거대한 미술의 상업화 속에 가뿐히 자신의 미술을 안착시켰다는 측면에서 가장 실패한 낙서족이기도 하다. 경찰을 피해 신상을 숨기며 도시의 곳곳에 낙서를 하고 야반도주하듯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낙서들은 그 명쾌함과 신랄함으로   제도권의 허구들을 통쾌하게 비웃는 쾌거를 이룩하였으나, 이미 수억대의 가격에 거래되기도 하는 그의 낙서들을 허접이라고 비웃는 많은 낙서족들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를 비판하는 자들은 그가 순수성, 즉 제도와 담을 쌓는 낙서족들의 원초적 기본을 이미 상실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주로 스텐실기법으로 표현되는 그의 촌철살인은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동성애 경찰관 두 명이 키스하는 모습, 가스 마스크를 쓴 여왕, 여왕 대신 다이애나를 그려 넣은 위조지폐들,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시위대, 영역전쟁(Tuf War)에서 보여주었던 가축에 그린 그림, 어느 가족계획 병원의 벽에 그려 넣은 매달린 나체의 남성 등의 작품을 통해 그의 낙서는 예술을 파괴하는 새로운 예술의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월장하였다. 그의 낙서들은 도저히 지워버리기 힘든 위엄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여전히 익명성을 고집하는 그는 작년, 미국의 한 프랑스 이민자의 모습 속에서 거리 예술의 혼을 보여준 다큐멘터리 영화 ‘Exit Through the Gift Shop’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였다.
‘폴라드거리의 꽃(2007)’은 그의 낙서지도를 보고 필자가 찾아본 몇 개의 낙서 중 하나다. 도로표지선을 따라 허름한 건물의 벽에 피어난 꽃, 그 옆에 롤러를 든 태연한 낙서족의 모습, 그것이 보여주는 환상의 세계는 아무런 설명이 필요 없는 무릉도원의 모습과도 같았다. (물론 필자가 찾았을 때, 도로 표지판은 다시 원상복구 시켜 놓은 상태였으므로 원본의 이미지를 많이도 훼손당한 상태였다.) 그것은 저주 받은 예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역동적이고 순수한 절대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도로(道路) 위에서 나는 거의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더 이상 그의 낙서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허무한 도로(徒勞)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기에 완전히 눌렸다고 할까, 그를 추적하려는 계획을 순순히 포기하였다. 그가 파괴시키려는 것은 역시 미술이 아니었다. 그가 진정 파괴시키고자 하는 것은 화폐냄새에 찌들고 병들어 썩어빠진 미술의 악취와 그 악취가 만들어 내는 환각의 모호함이었다. ‘낙서가 합법화된 도시에서의 삶은 모두가 초대받은 파티와 같을 것이다.’ 그의 말에 시나브로, 고개 끄덕이고 있는 중이다. 사회가 사심 없이 미술을 이해할 그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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