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서 필자는 출애굽은 “요셉을 알지 못하던 왕”(출 1:8)으로 시작하여 “에굽의 장자 죽음”(출 12:29)으로 끝난다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요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요셉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있다. 형들의 시기, 노예로 팔림, 억울한 옥살이, 그리고 총리가 되는 반전의 결말을 창세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이렇게 말한다. “요셉은 믿음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만 더 천천히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요셉은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요셉을 총리로 세울 수 있었던 왕은 어떤 왕이었을까?”
Ⅰ 요셉이 팔려간 곳, 애굽은 어떤 나라?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갔다. 성경은 이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하지만, 동시에 이 사건은 매우 현실적이다. 요셉이 팔려간 애굽은, 외국인 노예를 받아들이는 나라였고, 노예를 단순 노동력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쓰는 나라였으며, 이미 문서, 창고, 곡물, 인력을 관리하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하던 문명을 가진 나라였다.
만약 애굽이 폐쇄적인 부족 사회였다면 요셉은 이름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은 이미 사람을 ‘기능’으로 보는 사회였다. 이것이 요셉 이야기의 첫 번째 배경이다.
Ⅱ 보디발의 집과 감옥, 요셉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준비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신뢰를 얻는다. 우리는 이를 요셉의 성실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동시에 보디발의 집은 단순한 한 가정이 아니라 왕의 신하였으며 고위 관리였다.
보디발의 집은 행정과 권력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요셉은 그곳에서 집안을 관리하며, 사람을 다루고, 자원을 배분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억울한 옥살이 중에도 요셉은 감옥의 관리를 맡게 된다.
노예였던 사람이, 죄수였던 사람이, 다시 관리자가 된다. 왜? 애굽 사회는 혈통보다 능력과 역할을 중요하게 보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요셉을 단련하셨고, 동시에 요셉이 살아갈 사회도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하셨다.
Ⅲ 바로 앞에 선 요셉, 꿈이 정책이 되다
요셉 이야기의 전환점은 요셉이 바로 앞에 서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꿈 해석”으로만 읽으면 안 된다. 요셉은 꿈을 해석한 뒤, 곧바로 바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소서”(창 41:33).
요셉은 국가 정책을 제안한다. ① 풍년 동안 곡물을 국가가 관리할 것. ② 흉년에 대비해 저장할 것. ③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왕권 주도의 행정으로 실행할 것. 이것은 단순한 신앙적 조언이 아니다. 이것은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에서만 가능한 제안이다. 그리고 바로는 이 제안을 즉시 받아들인다.
Ⅳ 애굽(이집트)은 ‘Senwosret III(세누스레트 3세)’ 시대에 무슨 이유로 강력한 중앙집권 시대가 가능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한다. “왜 이 시대에 지방 호족(provincial nobles of Egypt)의 힘이 약해지고, 왕권이 강해질 수 있었을까?” 성경은 그 이유를 한 사건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7년 풍년과 7년 흉년이다. 요셉이 해석한 바로의 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권력 구조를 바꾸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1. 풍년은 ‘저장하는 자’에게 권력을 준다
7년의 풍년 동안, 요셉은 각 지방 호족(provincial nobles of Egypt)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지 않았다.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창 41:35).
이 말의 뜻은 곡물의 소유권이 지방에서 중앙으로 이동하고, 생존의 열쇠가 왕의 창고에 들어가며, 사람들의 시선이 호족이 아니라 왕에게 향하게 되는 구조를 말한다. 7년 풍년은 풍요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권력이 바로에게로 집중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2. 흉년은 ‘살려주는 자’에게 충성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흉년이 시작된다. 곡식이 없는 백성은 더 이상 지방의 유력자에게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도 곡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성은 어디로 가서 살아남아야 했을까?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창 41:57).
사람들은 요셉에게 오고, 요셉은 왕의 이름으로 곡식을 판매했다. 이때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었다. ① 땅은 왕의 것이 되었고 ② 백성은 왕의 보호 아래 살아가며 ③ 지방의 자율성은 약화되었고 ④ 국가 중심 질서가 확립되었다. 흉년은 잔인했지만, 그 흉년을 관리한 체제는 바로의 왕권을 절대적으로 강화하게 되었다.
Ⅴ 요셉의 총리직, 개인의 성공이 아닌 국가의 선택
요셉은 총리가 되어 왕의 인장을 받는다. 이는 명예직이 아니라 실권이었다. 요셉은 전국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고, 국가의 경제를 총괄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요셉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요셉을 받아들일 수 있는 왕, 요셉을 신뢰할 수 있는 정치체제, 요셉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Ⅵ 결론 - 하나님은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도 준비하신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그러나 요셉 이야기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만 준비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설 자리가 될 시대도 준비하신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총리가 되지 않았다. 그의 삶 전체가, 그리고 그가 살던 시대 전체가 하나님의 섭리(the providence of God) 안에서 맞물려 움직이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가? 혹시 나는 “왜 아직도 나의 삶은 감옥 같은 삶인가?”라고 묻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기억하자.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준비하시고, 사회 구조를 준비하시며, 때가 되면 문을 여신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요셉의 하나님은 개인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된다. 한 노예의 인생과 이집트의 ‘세누스레트 3세’와 그 시대의 사회와 정치 구조를 하나로 엮으시며 준비하시는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깨닫자.
■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Statues of King Senwosret III(세누스레트 3세 왕의 조각상들) - 세누스레트 3세는 헌신의 자세로 서 있다. 그는 머리덮개(headcloth)와 앞치마(kilt)를 착용하고 있으며, 넓은 주름과 좁은 주름이 번갈아 나타나는 같은 무늬를 가지고 있다. 일어선 코브라(rearing cobras)는 신적 보호를 상징하며,
그의 이마 위에 왕관처럼 얹혀 있고, 앞치마 정면을 따라 내려오는 ‘구슬 장식 수염(beaded beard)’으로 둘러싸고 있다.]
[세누스레트 3세의 상인방(문 위 가로부) 조각 - Lintel fragment of Senwosret III(기원전 약 1874–1855년). 출토지: 알렉산드리아. 원래 위치: 헬리오폴리스, 아툼과 라의 신전.]
글쓴이 전공수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