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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게으름을 잠시 이겨내고 걸으면 감사한 것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집을 나서는 시작이 망설여질 뿐이지만 막상 걷다 보면 더 깊은 걸음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서 목표를 정한 걸음을 걷는데도 시간이 빨리 지나게 됩니다. 걷는 걸음에 따라 집중하는 생각의 깊이도 달라집니다. 아침에 걷는 걸음에는 전능자에게만 집중하려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거나 깊이 있게 기도를 합니다.

 

이는 3천 년 전에 살았던 다윗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이 걸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목동으로 있을 때도 풀이 없는 곳이어서 양 떼를 이끌고 풀을 찾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건너편 민둥산 자락으로 가려 할지라도 깊은 계곡을 지나야 해서 족히 반나절 가까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현대인 같았으면 심장이 터질 만큼 숨이 찾을 것이지만 다윗은 걷는 훈련으로 몸과 마음, 영혼이 단련되었을 것입니다.

 

소년 다윗이 신었던 신발은 어떠했을까요? 현대 문명을 온몸에 걸치고 살아가고 있지만 걸으면서 신발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해서 판매점을 몇 번 기웃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썩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아내지 못해서 예전에 신었던 신발을 신고 걷습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부산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산 신발을 그대로 신고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이 신발을 가져다주었다면 아마도 광야를 날아서 다녔을 것입니다.

 

하루에 삼만 보를 걸어야겠다는 작정을 했습니다. 작년에 세운 계획이지만 이룰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았습니다. 일 년을 지나다 보니 다시 시작하게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하한선을 정했습니다. 최소 만 보 걷기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주로 토요일과 주일에는 걸을 수 없어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갖지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삼만 보를 걷기 위해 몸부림합니다.

 

전능자를 향해 집중하는 마음으로 오전에 걸었다면 어두운 저녁에는 더 먼 거리를 걷습니다. 오전에는 만 보에서 만오천 보를 걸었다면 저녁에는 이만 보 이상을 걷습니다. 이때의 마음은 주로 기도에 집중합니다. 한걸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기도 제목을 담아서 기도합니다. 말씀 한 구절을 가지고 곱씹고 곱씹으며 걷습니다. 내 안에 주리 틀고 사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걷다 보면 감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됩니다. 줄임말로 <꼬꼬감>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감사입니다. 모든 것들이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묵상하며 걷습니다.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거나 결핍으로 인한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대한 깊은 감사입니다. 다윗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시편을 통해서 그의 영성의 깊이를 본받게 됩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는 전능자와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현실적 상황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들만 득실거렸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가는 곳마다 현실적으로 존재했을 뿐입니다. 다윗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의 골짜기 건너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하늘의 빛난 보석을 뿌려주실 약속의 그 날을 환영하며 현실적 고난을 꾹 참고 또 참아냈습니다.

 

다윗의 영성은 기도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론적이거나 종교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드넓은 광야와 끝없는 사막에서 양 떼를 이끌고 이동하면서 다져진 영적 실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을 텐데 걷고 또 걷다 보니 산등성 하나를 넘는 데는 힘들지도 않았으며 사자를 만날지라도 물매 돌로 사자를 잡아 입을 찢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걸었습니다. 감사뿐입니다. 감사가 감사를 낳고 그 감사는 더 깊은 감사를 가져오는 문이 되어 줍니다. 감사의 문을 열어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불평의 문을 열면 그 안에는 온통 불평과 불만뿐입니다. 감사가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감사가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됩니다. 감사가 충만하면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이지만 불평이 습관화되면 주변은 온통 불평의 것들만 보이게 됩니다.

 

“꼬꼬감” 꼬리에 꼬리는 무는 감사는 감사의 기관 열차와 같습니다. 가득 담긴 감사의 열차에 또 하나가 연결되고, 그 열차는 다른 감사를 끌어냅니다. 신경세포 접합부인 시냅스(Synapse)는 감사의 뉴런을 찾아내어 신호를 전달하여 작은 감사로 시작하였지만, 감사의 뉴런이 서로 연결하여 더 많은 감사가 되고 결국 뇌의 시냅스는 감사의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감사의 문을 열어 감사를 취하는 선택은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걷다 보니 마음 저 깊은 곳에 먼지처럼 쌓여 있는 원망의 불씨가 사라지고 눈물 나는 감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진정으로 나 자신 앞에 직면할 수 있게 됩니다. 나를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것은 감사하며 걷는 것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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