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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영국은 참 이상한 나라이다. 우리 사고방식으로 보면 이해가 안되는 일이 너무 많다. 예를 들면 자신들과 합병한 스코틀랜드, 웨일스에 거의 다른 나라 수준의 지방자치를 허용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스코틀랜드, 웨일스는 자체 의회도 있고, 영국 다른 곳들과는 달리 총리(Prime Minister)를 수석장관(first minister)이라고 이상하게 부른다. 물론 자체 화폐와 우표도 발행하고, 심지어 휴일도 조금 다르다. 국방·외교만을 빼고는 조세 정책 등 최대한의 지방자치를 누린다. 결국 독립요구를 그런 식으로  해소시키는 셈이다. 원래 있던 방식을 존중하는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화합을 만들어낸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른 예로는 본토 인근 해안에 있는 만섬(Isle of Man), 건지섬(Guenrsey Island), 저지섬(Jersey Island) 같은 작은 섬들에 역외권 조세피난처(offshore tax heaven)를 허용해 자체 생존을 꾀하게 하는 방식도 그렇다. 엄연히 영국 영토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섬들에 조세법이 미치지 않는 특별 지위를 부여해 조세피난처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면 영국 본토는 조세수입이 줄어드는 걸 안다. 그런데도 역사적 사실을 들먹이며 그런 특혜를 계속 허용한다는 점이 놀랍다. 이런 섬들에서는 회사 법인세는 물론 개인의 상속세, 양도소득세도 없다. 영국 내에서 2111개의 지점을 가지고 작년에 35억5000만파운드(약 6조350억원)의 엄청난 매출을 올린 스펙세이버라는 안경전문점 체인그룹은 자치왕실령(self governing British Crown Dependency)이라는 특이한 정체성을 가진 건지섬에 본사를 두고 있어 법인세를 영국 국세청에 내지 않는다. 
 
 
 
 
본토 내 섬들에도 조세피난처 허용
 
 
 
영국 정부는 스펙세이버가 3만2500명의 종업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만족한다. 영국 국세청은 종업원들의 근로소득세와 제품 판매에 따르는 부가세만 받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스펙세이버가 얼마의 이익을 내든지 영업을 하는 영국에는 법인세 한 푼 안 내도 된다. 건지섬에 회사등록을 할 때는 10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 정도의 수수료를, 회사 등록 1년 후 등록세 1000파운드(약 170만원)를 내야 한다. 세금만 내면 영업실적이 얼마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결국 건지섬은 이런 회사들로부터 등록세를 받아 주민들을 먹여살리고 자치령을 유지한다. 건지에는 이런 회사가 무려 40만개가 있다. 이들로부터 거둬들이는 수수료와 등록세만 1년에 4억파운드(약 6800억원)나 된다. 이 정도 액수면 건지섬 6만4000명 주민들의 복지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영불해협에 있는 건지섬, 저지섬은 프랑스에 훨씬 더 가까운데도 영국령이다. 만섬은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있다. 멀리는 중남미 카리브해에 영국령 버진섬, 영국령 케이만섬, 영국령 버뮤다섬 등이 이런 식의 조세피난처이다. 별다른 산업이 없는 이런 작은 섬들은 조세피난처를 다국적기업이나 개인들에게 제공하고 그 수입으로 생존해 나간다. 
 
그러면 영국은 왜 이들 섬의 합법적 탈세 행위를 허용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랫동안 자치적으로 살아온 작은 섬들이 어쩌다가 대영제국의 일원이 되었지만 세계를 경영하던 나라 입장에서 작은 섬들을 일일이 보살필 수가 없어서 자체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들을 막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영불해협의 건지섬, 저지섬은 지리적으로도 영국보다는 프랑스에 훨씬 가까워 프랑스령이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프랑스와의 사이에 일종의 정치적 중립지대 역할을 했다. 섬주민들도 영국왕 치하에 있지만 자치령으로 살고 싶어 해 지금의 형태를 선택했다. 영국은 그런 섬들을 자신들의 제도 내로 완전히 끌어들여 영국화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해서 건지섬과 저지섬에는 프랑스의 영향이 아직도 눈에 많이 띈다. 주민들 중에는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의 비중도 상당히 높다. 그래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의 독재에 반항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건지로 망명 와서 희대의 걸작 ‘레미제라블’을 완성했다.  
 
 
 
2차대전 때 해군이 세운 구조물이 나라로
 
 
이렇게 영국인들은 뭔가를 인위적으로 확실하게 줄 세우려 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흘러와서 큰 문제가 없다면 묵인하거나 용납하거나 눈을 감아주거나 한다. 영국에는 주민등록도 없고 신분증도 없는 이유를 필자는 주간조선 2542호(2019년 1월 18일 자)에서 설명한 바 있다. 이 역시 굳이 주민등록과 신분증이 없어도 나라가 잘 돌아가니 굳이 만들 이유가 없다는 국민적 합의 때문이다. 무엇이든 아귀가 딱 들어맞아야 하고 국민 모두를 잠재 범법자 취급을 해서 물 샐 틈 없이 행정제도를 만들어야 안심이 되는 한국 공무원들이 보면 영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의심이 갈 정도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영국 관할 내 한 독립국가가 존재한다는 재미있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 정확히는 영해 내에 하나의 독립국가가 있다. 이름하여 시랜드공국(The Principality of Sealand)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극소국인데, 영국 동해안 도시 입스위치에서 11㎞ 밖 바다에 존재한다. 물론 영국을 비롯해 세계 어느 국가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가는 아니다. 
원래 공국이란 중세의 제도로 공작이 영주로 되어 있는 작은 영지 단위의 자치 지역을 뜻한다. 카지노로 유명한 지중해의 모나코, 피레네산맥 안의 면세점으로 유명한 안도라, 그리고 우표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의 리히텐슈타인 등이 이런 종류의 공국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런 공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도 인정받아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각종 국제 경기에도 정식으로 참가한다.
 
그런데 시랜드공국은 이런 공국들과는 달리 땅이 아니라 바다 위에 있는 인공 구조물 위에 위치한 자칭(自稱) 공국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엄연한 합법적인 독립국가(legitimate independent country)라고 자부한다. 영토라고 해봤자 2차대전 때 영국을 공습하러 오는 독일 공습기를 저지하려고 영국 해군이 세운 시멘트 구조물에 불과하다. 당시에는 섬에 대공포와 기관총도 있었고 300여명의 해군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사무실도 있었다. 동시에 당시 막 개발되었던 레이더로 독일 공군기의 접근을 파악해 본토 본부에 알리는 조기경보 초소와 프랑스 점령 독일군의 무전과 전문들을 잡아 해독하는 기능도 했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나자 이런 구조물들은 용도가 없어져 폐허로 남았다. 이때는 마침 전후 록뮤직이 세계를 휩쓸던 스윙 식스티(Swing Sixty)의 시대였다. 비틀스 풍을 시작으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롤링스톤스 등의 브릿팝 그룹들이 젊은이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6년에 걸친 전쟁에서 유럽 인구 5억7500만명 중 14%인 8000만명이 사망한 살상전이 끝나고 20년이 다 된 때라 이제 유럽은 중흥의 시기였다. 특히 음악이 젊은이들을 열광에 몰아넣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당시 영국에는 젊은이들의 목마름을 채워줄 음악 방송국이 제대로 없었다. 국영방송 BBC가 방송을 거의 독점하고 있던 때였다. ‘전파는 공공의 몫’이란 명분하에 국가가 전파를 독점해야 한다는 데도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BBC 라디오가 주당 1시간밖에 팝음악을 방송해 주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당시 막 태어나기 시작한 팝음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갈구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걸 1주일에 1시간으로 만족하라고 하니 젊은이들의 불만은 드높았다. 결국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생길 수밖에 없나 보다. 
 
정식 방송국 설치는 꿈도 꿀 수 없어 처음에는 집에서 숨어서 불법 방송을 했으나 금방 발각되자 차를 빌려 움직이면서 방송을 했다. 하지만 그것도 2차대전 중 암호전파를 잡아내던 실력으로 잡아내니 할 수 없이 단속이 좀 덜한 바닷가로 나가기 시작했다. 배를 빌려 정박한 상태에서 방송을 하다가 단속이 시작되자 움직이면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방송들을 해적(海賊)방송(pirate radio st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도 당국의 단속과 처벌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무료로 자신들이 목말라 하던 방송을 들을 수 있으니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결국 해적방송 업자들의 눈에 2차대전 때 쓰고 방치한 해상 구조물들이 들어왔다. 이런 해상 구조물은 영해(領海)인 5㎞ 밖 공해(公海)에 있는 경우도 있어 해적방송 업자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해서 이런 구조물들에 우후죽순 격으로 해적방송이 생겼다.
 
그런 틈을 타 2차대전에 참전해서 화상을 입고 제대한 영국 육군 소령 로이 베이츠도 이런 해상 구조물 녹존에서 해적방송을 시작했다. 1965년 10월 라디오 에섹스와 라디오 캔트라는 방송국을 시작했는데 제약 없이 팝음악 방송을 하니 청취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광고도 많이 들어와 상당한 수입도 올렸다. 한국에도 수입 상영된 클리프 리처드 주연의 ‘더 영 원스’(1961)라는 영화에 보면 클리프 리처드의 동명의 노래를 해적방송이 방송하자 펍에서 이를 듣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장면이 나온다. 
 
 
 
총으로 무장한 400여평 크기의 나라
 
 
이런 해상 해적방송들이 1967년에 해상방송금지법 제정으로 불법이 되자 베이츠 소령은 당시 공해에 있던 러프스타워(Rough’s Tower)로 방송국을 더 멀리 옮겨버린다. 무주공산이던 시멘트 구조물을 무단 점거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아내 조안과 함께 변호사를 찾아가 여길 독립공국으로 선언하고 싶다는 상의를 한다. 미인대회 수상자 출신인 조안의 생일인 1967년 9월 2일, 그는 드디어 시랜드공국으로 독립을 선언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돈키호테식 만용이고 농담 같은 일이지만 자신들은 상당히 진지했고 진심이었다. 베이츠는 스스로를 로이 왕자, 아내를 조안 공주라 칭하고, 아들 마이클과 딸 페넬로프와 함께 네 식구가 생활을 시작했다. 베이츠 소령의 아들로 현재 시랜드 통치자인 왕자도 “원래 아버지는 나라를 건국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영국 정부가 자신의 방송국을 폐쇄하려고 하자 격분해서 건국을 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들은 영국이 법으로 강압을 하니 자유를 찾기 위해 반항했다는 것이다. 
 
러프스타워의 2차대전 중 공식 명칭은 ‘여왕폐하의 러프스 요쇄(HM Fort Roughs)’였다. 해상에서 18m 높이로 1942년에 세워진 4500톤 7층짜리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밑에 원형인 9.5m 지름의 두꺼운 기둥 2개가 위의 직사각형 시멘트 판을 T자로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기둥 안에 7층에 걸쳐 있던 군인들 숙소를 산뜻하게 수리해서 7개의 손님 방으로 쓴다. 방들은 모두 수면 밑이어서 침실에 있으면 바깥의 파도가 기둥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 신비한 경험을 한다고 베이츠 가족들은 말한다. 제일 밑바닥 방에는 유치장도 있다. 
기둥 위 시멘트 판의 크기는 가로 51m 세로 27m이니 1377㎡(약 416평) 정도다. 가정집 정원 넓이로 테니스 코트 2개 크기이다. 베이츠 소령은 이걸 섬이라고 지칭했다. 사무실 위 지붕은 헬리콥터 착륙장인데 전기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해서 쓴다. 물은 빗물을 받아 정수해서 사용한다. 독립 당시는 300여명의 등록 시민도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국적 취득 신청을 한 시민들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1970년 초에는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독립을 선언한 뒤 시랜드공국은 곧 총으로 무장을 했다. 언젠가는 인근 바다에 뜬 부표를 수리하러 온 해양청 선박에 공포를 쏘아 쫓아내기도 했다. 자신들의 영해에 허가 없이 침입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국이 불법무기 소지와 발사를 이유로 베이츠를 기소해서 그는 법정에까지 갔다. 거기서 관할 에섹스 법정은 베이츠 부부에게 ‘탑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그들의 점거가 불법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영국 언론들을 그렇게 조그만 일을 크게 키우는 행정관청을 놀리면서 은근히 시랜드 편을 들었다. 결국 에섹스 관할 관청도 더 이상 일을 벌이지 않았다. 당시 언론들은 심심한데 잘되었다는 듯 기사를 써대서 오히려 이들 부부는 인기인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원래 시랜드 구조물에는 두 개의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는데 1966년 분쟁이 일어나 베이츠 소령이 다른 한 방송국을 점령한 것이다. 쫓겨난 다른 방송국 사장이 힘으로 밀어붙이다가 총격 사건이 벌어졌고 영국 해군이 개입해 점령하려 하자 추가 총격이 오갔다. 결국 베이츠 소령은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베이츠 소령이 재판에서 이겼다. 판결은 시랜드가 공해에 있기 때문에 영국은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였다. 베이츠 소령은 이 판결을 두고 영국법이 자신의 구조물 점유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라고 확신했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독일이 인질 협상 과정에서 나라로 인정
 
 
사실 따지고 보면 시랜드공국이 있는 구조물도 불법 구조물이다. 공해에 영국이 설치한 탓이다. 영국 정부는 인근에 있던 비슷한 해상 구조물들은 모두 폭파해 버렸다. 같은 경우가 생겨 또 국가선언을 할 가능성을 아예 봉쇄하는 차원이었다. 현재 법상으로는 시랜드도 영국 영해 내에 있다. 하지만 시랜드는 영국이 영해를 1987년 12해리(22.2㎞)로 확대하기 20년 전에 이미 독립 선언을 했기에 자신들은 해당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다가 다시 위기가 닥쳤다. 1966년 분쟁에서 쫓겨난 다른 방송국 사장이 자신들을 시랜드 망명정부라고 자칭하면서 틈틈이 노리다가 시랜드를 카지노로 개발하자고 평화 협상안을 들고 찾아왔다. 그러나 협상이 실패하자 1978년 8월 독일인과 네덜란드 다이아몬드 상인들을 꼬드겨 헬리콥터에 용병을 싣고 와서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했다. 그들은 망명정부의 쿠데타라고 부르며 촬영팀을 동반해 그 과정을 촬영까지 했다. 그리고 베이츠 소령의 아들(현 왕자)을 체포해 포박까지 했다. 3일 뒤 베이츠 소령이 공격팀을 데리고 와서 시랜드를 다시 찾았다. 다른 침입자들은 모두 즉각 석방해 주었으나 경쟁자 방송국 사장이었던 독일인은 과거 시랜드 국민이라는 이유로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하고 잡아두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영국은 자신들 관할 밖 문제라고 관여하려 하지 않았다. 베이츠 소령은 독일을 향해 자신이 잡아둔 반란자를 찾으려면 영국주재 독일대사와 외교관이 직접 시랜드로 오라고 했다. 덕분에 시랜드와 독일 사이에 국가 대 국가로 석방 협약이 맺어졌다. 이는 독일이 시랜드를 국가로 승인한 셈이니, 시랜드에는 생각지도 않은 수확이 되었다. 주범은 벌금 3만7000달러를 내고서야 석방되었다. 베이츠 소령은 이를 두고 자신들이 국가라는 근거와 사례로 든다. 그는 1933년 몬테비데오 컨벤션에 따라 초극소국가(micronation)로 존재하려면 갖추어야 하는 4가지 조건을 시랜드는 다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구조물), 정부(자신과 아들), 타국의 인정(독일) 그리고 정주 주민 4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주 주민으로는 시랜드 관리를 하는 기술자 1명이 상주하고 있다. 
 
지금은 베이츠 소령의 아들과 손자 두 명 등 3명의 왕자들이 시랜드를 통치해가고 있지만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수입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독립하자마자 금화·은화와 우표를 만들어 팔았고 여권도 만들었다. 당시 만들어 판 시랜드 여권은 1970년대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마약 유통업자 등 범법자들에게 이용되어 이제는 판매하지 않는다. 그 이외에는 헌법, 국기와 국가 등 독립국가로 있을 것은 다 있다. 티셔츠, 커피잔을 비롯해 기념품도 판다. 심지어는 시랜드공국 귀족 작위도 판다. 남작 작위가 39.99파운드(약 6만7000원)밖에 안 하고, 귀족 작위 중 가장 높은 공작은 499.99파운드(약 84만원)밖에 안 하니 금장식이 된 귀족증명서를 거실 액자에 넣어 놓으면 멋있을 듯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산다. 세계적인 영국 유명가수이자 작곡가이면서 BTS와 작업도 같이 한 에드 시런도 시랜드공국 남작이다. 
또 시랜드 대학교도 만들어 학·석·박사 학위증도 팔았다. 한때는 교수를 불러다가 수업도 했다. 시랜드공국을 방문하려는 방문객들은 돈을 내고 신청서를 작성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보트를 1시간 타고 시랜드에 도착하면 줄사다리에 댕글댕글 매달려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는 입국 절차를 밟아 여권에 입국 도장도 찍고, 세관 통관 절차도 거쳐야 한다. 
 
 
 
작위, 금ㆍ은화… 온갖 걸 파는 나라  
 
2000년에 시랜드에 투자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시랜드를 데이터 저장소로 쓰겠다고 100만파운드를 투자하겠다는 업체가 들어왔는데 주로 도박, 포르노 웹사이트를 호스팅하는 데이터 업체였다. 하지만 이 업체는 25만달러를 투자해 영업을 했지만 파산하고 말았다. 이후 장기매매 업체도 데이터 호스팅을 요구하고 투자하겠다고까지 해서 거절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파이럿 베이라는 불법 콘텐츠 다운로드 업체가 시랜드를 6억파운드(약 1조200억원)에 사려고 해서 베이츠 소령이 고민한 적이 있었다. 세계 영화, 음악, 컴퓨터 프로그램 등의 지식재산은 자유롭게 무료로 공유해야 한다는 초현실적인 철학으로 영업하던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콘텐츠 해적판 다운로드 사이트다. 각국의 추적에 쫓긴 나머지 시랜드를 피난처로 삼은 셈이다. 파이럿 베이는 아직도 존재하는데 ‘토렌트’의 전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때는 위키리크스도 시랜드에 서버를 두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베이츠 소령의 아들이자 현재 시랜드의 영주인 마이클 베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만일 영국 정부가 다시 와서 시랜드를 되찾겠다고 작전을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에 정말 영국적인 답을 했다. “나는 일단 홍차 한 잔부터 마시겠다”였다. 영국인들에게 ‘3차대전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겠느냐’는 물음을 던지면 정답은 “주전자 스위치를 올린다”이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시랜드공국을 뺏으러 오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그 이유를 마이클은 “그들은 우리를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을 상관하지 않는다(They do not care and we do not care)”라고 말한다. 하긴 영국 정부는 분명 영해에 있는 시랜드에 세금도 받지 않고, 관리도 하지 않는다. 
돈키호테처럼 바다 한가운데 시멘트 구조물에 살면서 자신을 공작이라고 자칭하고 기념품이나 팔아먹고 사는, 그것도 대를 이어서 사는 영국인이나, 그런 황당한 일을 자신들의 영해에서 벌이는데도 반세기도 넘게 묵인하고 있는 영국이나 정말 황당한 국민이고 국가이다. 그러나 재미있긴 하다. 하긴 국가가 이런 일을 정색을 하고 덤벼들어도 좀스럽게 보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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