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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80년대 대학을 다닌 탓에 내 대학 시절은 제5공화국과 겹친다. 입학할 때도, 군에 갔다 와도 대통령은 늘 전두환이었다. 그리고 전두환과 5공화국은 항상 읽어야 할 책이 참 많도록 숙제를 줬다. 그 시절 판금도서가 워낙 많아 그 책들을 다 구해서 읽는 것은 힘들었다. 5공화국에서 금서禁書로 지정한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양서良書라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화됐었다.

 

 

5공화국이 사회의 미풍양속을 거스른다고 금서로 만든 책이 있을까. 섹스, 스크린, 스포츠의 쓰리에스(3S) 정책으로 국민을 우민화시키려던 그들이 그럴 리 없다. 대부분 책이 정치적 이유에서 금서가 됐다. 정권 유지를 위한 몸부림으로 생각과 사상을 틀어쥐고 싶었던 그들은 정권 유지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금서로 정했다. 그런데 금서로 지정하는데 내용을 읽어 보기나 했을까.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공무원들로 만들어진 심의 요원들이라 그냥 제목에 '민중/민족/노동/통일'이란 말만 있으면 금서가 된다는 말이 파다했다. 유신독재 8년 동안 45종이 금서로 지정됐다는데 5공 정권은 6백50종을 금서로 했다. 실질적 금서에 준하는 '시판금지 종용도서'까지 합치면 1천 종이 넘을 거라고 한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 루쉰의 아Q정전, 파울로 프레리의 페다고지 등 명작들 조차 줄줄이 금서가 됐다. 

 

 

나쁜 권력일수록 금서를 많이 만드는 법, 금서가 많을수록 사상의 자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런 암울한 시기에 나온 지식인의 저서가 금서가 안 되면 제대로 된 책 축에 못 낀다는 우스개가 나왔고 차라리 금서가 돼야 더 잘 팔렸다. 

 

세월의 아이러니인가. 지난 4월 출간 이후 '역사 쿠데타'라는 비난을 받던 <전두환 회고록>을 법원이 출판·배포를 금지시켰다. 역사상 금서를 가장 많이 만든 자가 쓴 책이 이제 이 시대에 금서가 된 것이다. 앞서의 논리대로 한다면 그에게는 영광일까. 아니다. 금서가 된 이유가 있는 사실을 왜곡한 거짓말 책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초과해 5·18의 성격을 왜곡하고, 5·18 관련 집단이나 참가자들 전체를 비하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를 저해했다>고 책을 평가했다. 거짓말을 쓴 부분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법원은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 비무장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등 33가지 내용을 허위 주장으로 판단했다. <전두환 회고록>이 정치적 이유에서나, 종교적 검열에서나, 사회 미풍양속을 위협해서나 하는 등의 이유로 금서가 된 것은 아니다. 거짓말로 진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회고록>은 거짓말이라서 위험한 책이면서 또한 유해한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 니카라과의 수도자이며 시인인 에르네스또 까르디날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도 전두환이 금서로 만들었다. 까르디날의 이 시를 보면 5공화국 사람들이 무엇이 두려워 금서를 양산했는지 보인다. 

 

예수님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라고 하셨지 / 착취자들을 포함한 만인이 / 부활할 때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 또 성서에서 ‘의인’이 무엇을 뜻하지는 우리도 이미 압니다. / 성서에서 정의는 사회정의고 해방입니다. / 불의한 사람은 압제자요, 의로운 사람은 해방자입니다. / 하느님은 절대 정의이십니다. /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칭호는 ‘의로운 분’입니다. / 불의를 징계하시는 분, /피압박자들을 찾아오시고 / 가난한 이들의 비명을 들어주시는 분, /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 그리고 의인들이란 지상에 정의를 세우고자 / 투쟁하는 인물들을 일컫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부활할 것입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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