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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중세시대에 오늘날 국회라는 국가 기구의 발전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국회의 기원은 왕의 궁중 참모들로 그 기원을 둘 수 있는데 이들 조언자들은 중요 귀족들과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1215년까지 공식적으로 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제도는 없었다. 이때에 이르러 존 왕은 그의 귀족들에 의해 몇 개 요구조항에 서명해야만 했다. 그 결과 대헌장(the Great Charter)이라는 마그나카르타(the Magna Carta)로 불리는 권리장전이 태어났다.

 

마그나카르타는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법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것은 귀족의 권리를 보호하고 세금을 부과하거나 법을 바꾸는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어떤 중대 결정에 왕의 귀족들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왕에게 심어준 것이었다.

 

잉글랜드에서 귀족들은 특히 돈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왕이 국회 개원을 요구하게 되었다. 국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지금의 양원(Houses) 기초가 된다. 귀족들과 대 영주들, 그리고 주교들은 상원(the House of Lords)에 자리 잡고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적은 토지 소유자들, 읍과 도시 출신의 부자들이 그들 지역의 대표로 선출되어 하원(the House of Commons)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당시 전체 인구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하원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비슷한 국회가 스코틀랜드에서도 발전하였다. 이곳에서는 잉글랜드의 양원과 달리 세 개 의회그룹으로 구성되는데 영주와 평민 그리고 성직자로 구성된 에스테이터(Estates)라고 불렸다.

이 시기는 또한 법률 체계의 발전을 가져왔다. 정부와 독립적인 판사들이라는 원칙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에서 판사들은 판례(이전의 결정)와 전통에 따른 일반법(the common law)을 발달시켰다. 이와 달리 스코틀랜드에서의 법률 체계는 조금 다르게 발전했다. 이러한 법은 성문화되었다.

 

 

독특한 정체성

중세시대는 국가 전체의 문화와 정체성의 발전을 가져오는 때였다. 노르망 정복왕(윌리엄) 이후 왕과 귀족들은 북 프랑스어(Norman French)를 사용했고 농부들은 앵글로 섹손어를 계속 사용했다. 점차 이들 두 언어가 결합하여 영어라는 한 언어를 태생시키게 된다. 오늘날 몇몇 단어들-예를 들어 ‘park’와 ‘beauty’ 등은 노르만 프랑스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고 ‘apple’ ‘cow’ ‘summer’ 등의 단어는 엥글로 섹손어에 기초를 두고 있다.

 

현대 영어에서 두 단어가 매우 유사한 뜻으로 사용되는데 하나는 불어에서 왔고 다른 하나는 앵글로 섹손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요구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Demand’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이고 ‘ask’라는 단어는 앵글로 섹손어 이다. 1400년이 돼서야 잉글랜드에서 공식문서가 영어로 쓰였고 그러한 영어가 궁중과 의회에서 선호되기 시작했다.

 

1400년이 가까이 올 무렵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Geoffrey, 1340경-1400)는 켄터베리를 순례하는 일행들의 이야기라는 시리즈 운문을 영어로 발표했다. 여행에 합류하게 된 일행들이 각자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초서는 이들 여행자들과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1만 7천여 행의 운문과 약간의 산문으로 묘사한다. 이 시들의 집대성이 켄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로 불린다.

이 이야기는 영국에서 최초로 인쇄기를 사용한 윌리엄 커스톤(William Caxton)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출판된 책 가운데 한 권이 된다.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는 여전히 인기가 있으며 지금도 연극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많은 사람이 갤릭어와 스콧어를 계속 사용하고 발전시켰다. 많은 시인이 스콧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한 예가 존 바보어(John Barbour)로 그는 베녹번 전투에 관하여 부르스(The Bruce)이야기를 스콧어로 썼다.

 

중세시대는 또한 브리테인에서의 건물의 형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브리테인과 아일랜드에는 방어를 위한 성이 많은 곳에 세워졌다. 오늘날 많은 성들이 파괴된 채 남아있고 그 성들 가운데 윈저성과 에딘버러 성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거대한 성당들, 예를들어 린콘 대성당(Lincoln Cathedral)이 건축되고 이러한 많은 성당이 여전히 예배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몇몇 대성당들은 채색유리창(windows of stained glass)으로 유명하며 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성경과 크리스찬 성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요크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한 예가 되고 있다.

 

이 시기의 영국은 중요 무역 국가였다. 잉글리시 양모는 매우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해로부터 무역과 일자리를 찾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영국으로 건너왔다. 이들 중에 많은 사람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온 면직공들, 독일에서 온 기술자들, 이탈리아에서 온 유리 수공업자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운하 건설업자들이었다.

 

 

장미전쟁

1455년 잉글랜드의 왕위를 두고 시민 전쟁이 벌어졌다. 랑카스터 집안과 요크셔 가문이 제대로 한 판 붙은 것이다. 이 전쟁이 장미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는 랑카스터 가문의 문장은 붉은 장미였고 요크 가문의 문장은 백 장미였던 까닭이다.

 

30년에 걸친 두 가문의 싸움은 보스워쓰 벌판에서 끝이 나게 된다. 요크 가문의 리차드 3세 왕이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랑카스터 가문의 헨리 투더가 헨리 7세로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헨리는 리차드 왕의 질녀인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두 가문의 결합을 이룬다.

헨리는 투더 가문의 첫 번째 왕이 된다. 투더 가문의 문장은 붉은 장미로 그 안에 흰 장미가 그려져 있다. 이는 요크 가문과 랑카스터 가문의 동맹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박필립 칼럼리스트(www.facebook.com/thamespark)

굿모닝런던 발행인

영국 안중근청년아카데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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