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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달팽이 / 마티스

hherald 2010.07.17 19:03 조회 수 : 7617

색깔과 형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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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 파이오니어의 한명인 프랑스 화가 마티스(1869~1954)는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밝은 하나의 창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2차대전 이후의 격변하는 현대미술을 관찰하는 시작점이 되어 준다. 흔히 ‘야수파(포비즘, Fauvism)’로 불리는 그의 그림들은 그러나 야수파라는 짧고 굵었던 미술사의 흔적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폭넓다. 야수파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과 굵은 필치로 대변되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잠깐 일어났던 미술운동을 부르는 용어다. 야수파가 현대미술에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뜻밖에 지대하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우리의 근대미술을 보아도 삼초내로 알 수 있다. 한국의 ‘로트렉' 구본웅의 강렬한 터치는 분명 야수파의 영향으로 볼 수 있으며, 한국의 천재 이중섭도 그 영향권 아래에서 자신의 필력을 발전시켰다고 짐작된다. 포비즘은 한국근대화의 중요한 선생이었던 셈이다. 마티스는 인상주의의 바로 다음 세대로서, 라이벌이자 동료였던 피카소와 더불어 인상파나 후기인상파의 연구를 가슴 가득 끌어안고 현대를 향해 돌진한 커다란 이름임이 분명하다. 그의 그림 중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테이트모던’의 분위기를 좌우할만한 말년의 문제작 ‘달팽이(1953)’라고 생각된다.

 

이 엉성하고 화려한 달팽이 한 마리는 현대미술의 발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유명한 답안지의 하나다. 노년의 마티스가 건강의 악화로 붓대신 가위를 잡고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진, 커다란 의미의 꼴라쥬 기법의 그림으로, 그 당돌하고 순수함이 마력처럼 펼쳐지는 커다란 그림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붓을 잡지 못한 노년의 마티스는 붓 대신 가위를 잡는 놀라운 투혼과 예술혼을 보여주었다. 나이 80이 넘어서 이런 대표작을 남긴 화가는 거의 없다는 측면에서도 놀랍고, 그런 노구로 새로운 변용(變容)의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것도 경이롭다. 원색을 칠한 종이를 오려 붙여 만들어진 달팽이다.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폭넓은 감상의 범위를 허용하는 이 화려한 색감의 달팽이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 상상의 자유는 감상자 모두가 지니는 삶만큼이나 다양하고 분방한 것일 터다. 나의 삶은 과연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떠나 보자.

마티스는 달팽이라는 작은 생명체를 관찰하면서 하나의 자연을 발견해내고 있다. 먼저 색깔을 찾아내었다. 보색(補色)들의 만남이 돋보인다. 보색이란 서로 합쳐져서 무채색이 되는 색의 관계를 설명하는 용어다. 즉 주황과 파랑, 빨강과 초록 같은 관계를 말한다. 보색들은 개체로서의 빛과 화려함을 상대방을 통해 지워버리는 것이다. 강렬한 대비로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심하게 미안한 보색들. 달팽이보다 조금 더 화려한 색감의 인간들도 예외일 리 없다. 서로에게 빛과 음영을 주는 보색인 인간들. 그리고 형태를 찾아내었다. 다양한 사각형들의 부딪힘을 통해 존재하는 것들의 참을 수 없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은 달팽이 관을 형성하기 위하여 둥글게 돌기도 하고 달팽이의 몸처럼 직선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달팽이 보다 조금 더 큰 인간들도 예외일 리 없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화합과 불화를 밥 먹듯이 한다. 그리고 움직임과 정지를 통해 시간과 영원을 찾아내고 있다. 달팽이의 움직임은 시간이지만 정지는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달팽이가 자신의 온몸을 다해 움직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반응이며 때로 멈춰서는 순간, 그것은 시간에 대한 무반응, 즉 영원에 대한 추구를 의미하는 동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가 보이는 듯 하다. 

 

드문드문 달팽이와 맞서며 나열되는 백색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달팽이의 형태와 색을 지켜주기 위한 그 여백은 달팽이가 속한 치열한 자연, 즉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달팽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순백일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모든 생명체들이 숨쉬며 만들어내는 색깔과 형태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그 변화는 생명체들을 품기 위한 어미의 품처럼 지순(至純)한 것이다. 모든 색과 모든 개지랄 같은 성격, 즉 개성과 모든 각이 진 생김새, 즉 생각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무대가 필요하다. 개구리에게는 물풀 엉킨 우물이 필요하고 사자에게는 낮잠 잘 초원이 필요하다. 꽃에게는 흙이 필요하고 새에게는 하늘이 필요하다. 아바타에게는 스크린이 필요하고 인간에게는 가족과 지구와 우주가 필요하다. 좁은 세상 속에서 포착된 이 한 마리 달팽이를 통해 마티스는 우리에게 본질의 턱없이 방대한 의미를 생각하게 하여준다.

색깔과 형태는 이미 우리에게 보이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할 수도 보이는 대로 느낄 수도 없다. 그것은 너무도 복잡해져 버린 현대가 우리에게 준 지독한 선물이다. 우리가 판단해야 할 것은 색깔과 형태가 아니라 그 속에 내재된 운명이며 생각할수록 무궁무진한 세상의 섭리일 뿐이다. 화려함 속에서, 반짝임 속에서, 우리는 한 마리 달팽이처럼 속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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