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만나는 런던-28
클락 부부와 퍼시/ 데이빗 호크니
Mr and Mrs Clark with Percy/ David Hockney
일상의 숲에 핀 백합화
그림 혹은 미술은 다른 무엇도 줄 수 없는 걸 우리에게 준다. 그것이 아름다움이건 감동이건 연민이건 사랑이건, 다른 무엇도 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만의 고유 권한이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미술의 고유권한에 대한 인식은 필수 아미노산 만큼 중요하다. 사진, 영화, 뮤지컬, 콘서트, 티브이드라마, 광고 등속의 미술에서 파생된 수많은 새로운 미디어들은 미술과 많은 걸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그림의 고유영역을 완전히 침범하지는 못한다. 그림에는 그림만의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기 때문이다. 그 수수께끼는 역사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워지고 있으며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사진이 없던 시절의 초상화와 미디어의 홍수 속인 현대의 초상화를 비교하는 일은 그래서 재미없다. 가장 출세한 현대 영국화가의 한명인 데이빗호크니(1937~)의 이 유명한 초상화(1970~71,런던 테이트브리튼 소장)는 그러한 미술의 고유권한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걸작이다.
이 부부상은 반아이크의 ‘아놀피니 부부 초상화’가 그려진 지 오백삼십육 년이 흐른 어느 날 런던에서 그려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틀스가 해체되던 바로 그 해 그려지기 시작했다. 호크니의 친구이자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였던 오씨 클락(Ossie Clark,1942~96)과 그의 아내였던 섬유디자이너 셀리아 버트웰(Celia Burtwell,1941~ )의 초상이다.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은 화가가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적 성공을 이루어낸 친구 부부의 삶을 들여다 본 그림이다. 오씨는 비틀스, 믹재거(롤링스톤스), 마리언느페이스풀 등 팝가수들의 무대의상을 디자인한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부부는 70년 결혼하여 74년경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팅힐 쯤의 어느 그럴듯한 타운 하우스쯤으로 짐작된다.
임신한 것으로 알려진 새신부는 고급 홈드레스를 입고 팔로 허리를 받힌 채 화가를 근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새신랑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급이었을 의자에 편하게 기대고 앉아 맨발을 내밀어 푹신한 양탄자에 올려 놓고 있다. 70년대식 깃넓은 셔츠를 입은채 시니컬한 표정으로 화가를 응시한다. 두 사람 사이의 버티컬도어는 반쯤 열려져 있어 베란다너머로 바깥 풍경이 보인다. 왼쪽 탁자 위에는 백합을 한아름 든 꽃병과 노란 표지의 책이 올려져 있고, 벽에는 금색 프레임의 액자가 보인다. 오른쪽 바닥에는 70년대의 다이얼 전화기와 스텐드가 놓여져 있다. 신랑 위에 앉은 하얀 고양이는(부부가 키우던 다른 고양이의 이름 알려져 있다.) 창밖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다. 약간 열려진 왼쪽 버티컬은 빛의 조도를 얌전히 보여주고 있다. 두 인물 사이로 모여진 햇빛은 원근법을 따라 흡사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 빛의 건너편에서 보이는듯한 창밖의 나무들은 마치 하얀 난간을 붙잡고 있는 듯이 보인다. 나무 뒤에는 또 다른 이들이 포즈를 취하며 살고 있을 이웃집의 창이 보인다.
이 그림의 매력은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이 편안해 보인다는 데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취급된 것이 없다. 그림 속의 모든 것들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사물이건 모두다 그림 속의 주인공처럼 당당하다. 모든 것이 빛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또한 서늘한 영국집 온도에 어우러져 있다. 자연스럽다. 팝아티스트였으며 사진작가이기도 하였던 호크니가 그려낸 1970년 어느날 런던의 어느집 거실은 모두 안전해 보인다. 백합도 전화기도 스텐드도 하얀고양이도 부인도 신랑도 모두 세상의 빛과 어둠을 안고, 삶이나 사랑이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라는듯이 당당하다. 놀라운 미술의 투시력이 아닐 수 없다. 어느 사진도 어느 영화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을 사랑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그림은 나에게 다양한 환각을 보여주었다. 마치 홈드레스광고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고, 마치 전화기 광고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고, 백합꽃 광고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니면 창밖, 바깥 세상을 동경하는 어느 하얀 고양이의 편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버티컬도어의 장점을 예시하는 카탈로그를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두 인물의 과장된 눈빛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였다. 놀라웠다. 그림만의 고유 권한의 열쇠는 역시 화가라는 인간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그림이다.
미술의 상상력이란 거창한 아바타식 환상같은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삶의 미세한 부분 속에서도 그 상상력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마치 화가처럼 살아가야 한다. 슈퍼에서 샴푸를 고르며, 친구의 생일카드를 고르며, 식당에 앉아 메뉴를 고르며… 우리의 미술적 상상력은 쉴새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일상화된 현대인의 상상력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그 집중력을 잃고 헤매이기 쉽다. 흐트러진 집중력을 치유하는 필수 아미노산은 역시 사랑이지 싶다. 세상의 모든 꽃과 전화기와 고양이를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 우리 삶 모든 부분에 사랑을 심어주는 상상력이야말로 미술이 바라보는 일상의 숲 속에 핀 백합화 같은 것 아닐까. 사랑스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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