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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8
샘/ 마르셀 뒤샹
Fountain/ Marcel Duchamp

 

 그림.JPG

 

처절했던 지진의 잔해

 

세계 1차 대전의 공포가 지구를 휩쓸고 있던 1917년, 미국 뉴욕의 유서 깊은 철물점 ‘모트(J.L. Mott Iron Works)’에 갓 서른쯤 된 한 젊은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곧바로 남성용 소변기를 하나 사더니 황급히 사라졌다. 그가 달려간 곳은 자신의 스튜디오였다. 그는 왠 일인지 소변기를 화장실로 가져가는 대신 자신의 작업 테이블 위에 턱 올려 놓는다.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 흐뭇한 미소가 인류의 미래를 암시하는 얼마나 엄청난 복선이 될 것인가를 눈치챌 만한 아무도 주위에 없었다. 남자는 소변기를 마른 걸레로 정성껏 닦아 내더니 붓에 물감을 묻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서명이라도 하듯이 소변기에 이름을 쓰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용도로 화장실에 설치된다면 윗부분, 지금 남자처럼 설치하지 않고 눕혀 놓는다면 아랫부분이 될 왼쪽 테두리에 그는 ‘J.L. Mott 1917’이라고 서명하였다.
이 조그만 사건은 인류 미술사의 가장 짧지만 가장 강력한, 강도 10의 지진이 되어 남았다. 그리라는 그림은 그리지 않고 이상한 짓을 일삼던 뉴욕의 젊은 화가군에 속해 있던 그 남자는 체스를 좋아하던 프랑스 화가 마르셀 뒤상(1887~1968)이었다. 젊은 뒤상의 이 짧은 객기 하나에 수천 년 동거동락하던 인류 미술사의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와 어린 자식이 헤어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단절되었으며, 삼촌과 이모는 집을 나가버렸다. 이 무시무시한 지진의 흔적 한 점이 런던 테이트모던이라는 미술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 오리지널 소변기를 분실한 이후 1960년대에 노년의 뒤상이 다시 제작한 몇 점의 소변기 중 하나다. 수십 년이 흐르면서 이미 단종된 오리지널 소변기 모델을 구하지 못하고 최대한 비슷한 모양의 소변기를 찾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소변기 유체이탈사건의 이름이 바로 이 작품의 제목 ‘샘(1917,1964))’이다.  
지극히 반예술적이었던 이 조그만 사건은 인류미술사의 모든 가족들이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게 만든 사건이다. 대량생산된 이 기성제품을 미술관에 전시하며 뻔뻔한 사내 뒤샹은 ‘레이디메이드(Readymade)’라는 고상한 단어로 설명했다. 이 충격적 소변기의 유체이탈은 쏟아지는 악평과 비난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그리고 결국 인류미술의 시각을 바꾸어버리거나 최소한 그 영역을 지대하게 넓혀버렸다. 뒤샹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수많은 억측과 해석이 후폭풍처럼 불어 왔다. 그는 모든 전위라는 이름을 추종하는 예술가들에게 우상이 되었으며, 그의 소변기는 위대한 승리의 전리품처럼, 혹은 잔인한 인류 재해의 잔해처럼 소중한 예술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미술에 대한 생각 속에는 이미 너무도 많은 뒤샹의 객기가 고정관념화 되어버렸다. 이십일 세기 시민으로서의 필자 느낌을 몇 가지 두서없이 나열하는 것으로 나머지 지면을 채운다.
첫째, 오줌냄새가 난다. 역겹고 지겨운 오줌에서 우리는 평생 벗어날 수 없다. 미술이 썩었다면 예술이 썩었다면 나아가 우리 인생이 썩었다면, 저 변기 속에 쌓이는 노폐물처럼 버려야 할 것이다. 버리자, 버릴 것은 버리자, 시원하게 쏟아버리자. 쏴아, 안녕!
둘째, 나프탈렌 냄새가 난다. 오염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썩어 빠진 냄새가 지구를 삼키기 전에 막아야   한다. 벌레가 모여들기 전에 방충제를 뿌리자. 썩어빠진 나 자신에게도 향기로운 칙칙이를 뿌리자, 칙칙. 
셋째, 침을 뱉자. 하얀 눈 대신 저 새하얗고 순결한 소변기 위에 침을 뱉자. 순수함 대신 역모와 협잡이 판치는 세상의 더러움 위에 침을 뱉고 싶지만, 단지 새하얀 소변기 위에 침을 뱉자. 언제나 이 세상 최고의 예술이었던 나 자신에게 침을 뱉자. 퉤퉤.
넷째, 용도를 상실한 소변기의 비극적 모습이 애처롭다. 하나의 오브제로 변해버린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소변기의 애처로움에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인간들의 애당초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허식 없는 본질로 돌아가기에 인간들은 너무도 멀리 온 것일까? 나의 용도는 과연?
다섯째,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의 예술품들은 한결같이 그 당시에는 실용품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술은 이 소변기의 슬픈 운명처럼 죽어버린 것일까? 일상의 예술 창조라는 꿈은 재현 불가능인가?
여섯째, 그렇다면 과연 예술은 뒤샹의 생각처럼, 발상의 전환이나 아이디어가 되어버려야 하는 숙명에 처한 것일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반동으로만 예술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일까?
일곱째, 오리지널리티 즉 예술에 반기를 들었던 반예술가 뒤샹은 그러나 이 치기 어린 발상 하나로 이십 세기 최고의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므로서 가장 예술가다운 예술가가 되어버렸다. 이 아이러니가 인류의 예술을 포함한 모든 생활의 지극히 불안한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여덟째, 나는 소변기, 나는 소변기. 더러운 소변기. 그러나 하얀 꿈을 잃지 말아야 할 소변기. 그러나 새하얀 분수처럼 샘처럼 이 세상을 맑게 해야 할 소변기. 나는 소변기. 소변기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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