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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동행同行

hherald 2010.07.17 20:20 조회 수 : 1558

주택부금을 부어야 하는 날과 원고마감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들이닥친다. 일주일에 <에세이>를 하나 쓰고, 분량이 적지 않은 <십일조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실타래가 풀리듯 글이 술술 풀리면 에세이든 십일조 이야기와 같은 신학논단이든 두어 시간 만에 뚝딱 해치우기도 하지만, 마감을 앞두고 밤새도록 붙들고 있다 시작도 못한 채 머리통이 터지는 날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글 쓰는 것이 짜증스럽다는 생각을 해 본적은 없다. 글을 쓰는 것만큼 나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의 이야기가 되고, 머리 속에 널부러진 관념과 명제들이 조각조각 내 생각에 맞춰지는 직소퍼즐이 된다. 마지막 피스를 끼워 넣기 전에 잠시 일어나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마셔보는 잉글리시 티는 내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막힌 ‘환타지’이다.

시계가 4시를 지나고 있다. 오후 4시가 아니라 오전 4시이다. 시차적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2시부터 일어나 한 밤중에 욕실청소를 하고 아내가 미처 끝내지 못한 설거지를 하며 부산을 떨었는데도 겨우 두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우유를 많이 넣은 티를 한 잔 들고 책상에 앉았다.
이제 겨우 3개월 된 새끼고양이 앰버가 무릎위로 올라온다. 주인을 향한 아름다운 예배가 아닐 수 없다. 지난 3월에 교통사고로 죽은 마샤가 남긴 새끼이다. 앰버는 죽은 아빠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그래서 다른 집으로 분양을 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기르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고양이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높은 곳을 좋아하고,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올라가려는 성향이 닮았고, 제 몸을 꾸미느라 여기저기 핥아가며 하루 종일 몸치장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닮았다. 자기가 필요할 때는 사람을 찾아 다니지만 내키지 않을 때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것도 사람과 닮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순간에 주인을 향해 발톱을 드러내는 독한 본성이 사람과 닮은 꼴이다.
이른 새벽부터 열심히 몸을 비벼대며 예쁜 짓을 하는 앰버가 사랑스럽다. 그러나 나는 그 맹랑한 위선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고양이가 몸을 비벼대는 것은 결코 애정의 표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몸을 비벼대는 것은 단지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강아지로 말하자면, 길을 가다가 다리를 들고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것과 같다. 고양이가 몸을 비벼대는 것은 강아지가 내게 오줌을 뿌리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단지 그런 행위가 강아지에 비해 우아해 보일 뿐이다.

그런 앰버가 사랑스럽다는 것은 내게 몸을 비벼 냄새를 묻히며 “너는 내 거야”라고 선언하는 그 가소로움이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다. 그 때마다 나는 앰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아무리 비벼대도 너는 내 꺼야 임마”
영국은 애완동물의 천국이다. 공원 어디를 가나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직까지 고양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고양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 사람들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사람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 3월에 죽은 마샤는 아들녀석이 베개  삼아 베고 잘 만큼 사람을 잘 따르고, 내가 친구목사님들과 펍Pub을 가면 그곳까지 따라다니던 이상한 고양이였지만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양이는 언제나 자기의 길만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는 동행하는 사람의 길이 자기의 길이 된다. 그래서 동행이 가능한 것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동행同行’으로 믿음을 인정받은 ‘에녹’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목사가 된 후에도 왜 동행이 믿음이 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동행이 믿음이 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동행은 믿음이 전제되지 않으면 절대불가능 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행은 상대방의 길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길이 흙탕길이라도, 그 길이 가파르고 먼 길이라도, 때론 내키지 않는 어느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라도... 끝까지 함께 걸어주는 것이 바로 동행이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제 고양이처럼 돌아설 만도 하다. 그런데 지친 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으면서도 끝까지 동행할 모양이다. 나야 당연히 그렇게 동행해주는 아내가 눈물겹도록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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