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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찜질방과 해장국

hherald 2010.07.17 20:18 조회 수 : 1591

한국에 도착하면 먼저 해장국을 먹고 불가마 찜질방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영국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20년 전에는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짜장면 생각이 간절해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평소에 짜장면을 즐겨먹지도 않던 아내까지 짜장면 타령을 했다. 짜파게티라도 끓여 먹었으면 소원이 없겠구만... 우리가 살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는 그 흔한 짜파게티도 없었다. 감기몸살을 앓던 어느 날은 식은 땀을 흘리며 앓다 잠들었는데, 정신없이 땀을 흘리며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먹는 꿈을 꿨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아내가 묻는다.
“당신 무슨 국수 먹는 꿈 꿨어?”
2년을 짜파게티도 못먹고 버티다가 한국 나갈 기회가 생겨 밤낮으로 짜장면을 먹어댔다. 지금도 몇 년만에 먹었던 그 때 그 짜장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10년 동안은 냉면생각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그 놈의 냉면생각은 한국을 갈 때마다 퍼질러지게 먹어대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정신 없이 한국으로 달려나갔을 때도 틈이 날 때마다 냉면집을 찾았다. 아마 내 평생에 가장 많은 냉면을 먹었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질리도록 먹어댔더니 냉면생각도 잠잠해졌다.

언제부턴가 갑자기 입덧을 하듯 평소 좋아하지도 않았던 해장국 생각이 간절해졌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친구들과 밤새 고스톱을 치다가 이른 아침에 해장국을 먹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30년이 지난 지금 뜬금없이, 그 때 먹었던 선지해장국과 깍두기 국물이 생각났다.
공항에 마중 나온 친구목사가 오리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뭔 얘기야? 해장국 먹는다니까...”
“해장국?”
5년 만에 귀국한 친구에게 딸랑 해장국 한그릇을 먹이는 것이 당혹스러웠는지 “오리고기가 좋겠는데...”를 되뇌며  해장국집을 몇 개나 그냥 지나친다.
선지해장국 대신 뼈다귀해장국집을 찾아 들어갔다.
게눈 감추듯 두 그릇을 먹고 났더니 친구목사가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거기서 굶고 살았어?”
그 다음은 불가마 찜질방이었다.
깨끗한 모텔로 가자는 친구목사에게 그냥 찜질방이나 가자고 했더니 또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나는 5년 만에 귀국한 첫날 밤을 찜질방에서 보냈다. 친구목사와 몇 번씩이나 불가마를 들락날락하며 밤새도록 마음에 쌓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얼음식혜를 들이켰다. 그야말로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다.
아침식사는 당연히 해장국이다. 풋고추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황태해장국 맛이 일품이었다. 

컨퍼런스와 총회기간 동안 우리에게 배정된 숙소는 워커힐호텔이었다. 빡빡한 일정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후에 산책을 하려고 밖으로 나가는데 미국에서 참석한 목사들 몇 명이 찜질방을 간다며 몰려나온다.
“호텔보다 찜질방이 낫지”
미국이든 영국이든 찜질방 구경을 못한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같은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5년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찜질방을 작정하고 나오겠는가!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찜질방 이야기에 귀가 번쩍뜨여 산책을 나가다말고 돌아서서 찜질방을 따라나섰다.
호텔 프런트에서 가깝고 좋은 찜질방을 물었더니 황당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국내 간판호텔 중의 하나인 워커힐에 투숙한 후에 찜질방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차피 사람의 인생은 그런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생각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나라간의 문화가 다르고 지방색이 다르고 가풍이 다르고 하물며 성별이 다른 남녀간의 이해차이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일류호텔을 등지고 찜질방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아쉬움과 불갈비대신 짜장면을 먹고 냉면을 먹고 해장국을 먹는 간절함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역시도 외국을 동경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막연한 꿈을 이해하기 힘들다.

인생을 살면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이것을 잡으면 저것이 도망가고 저것을 잡으면 이것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도망치기 시작하는 것이 세상만사이다.
워커힐을 빠져나와 고덕동에 있는 찜질방을 찾아갔다. 얼마나 신이 나서 땀을 빼고 몸을 지져댔는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미련하게도 화상을 입은 것이다. 뭐 그래도 문제될 것은 없다. 그 얼굴로 해장국을 먹으며, 지금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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