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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결코 짧지 않은 인생길

hherald 2010.07.17 20:07 조회 수 : 2190

아침 프로그램에서 방송진행자가 방청객을 향해 묻는다.
“What is the quickest way to get to Edinburgh from London?”
방청객 가운데 한 사람이 ‘헬리콥터~’라고 대답을 하자 모두들 어이없는 웃음을 웃는다. 누군가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자, 비행기를 타느니 Express GNER(고속열차)을 타는 것이 빠르다는 현실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맘 편하게 자동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중간중간 휴게소를 들어가는 것도 결코 느린 방법은 아니라고 설명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물리적 스피드만이 속도의 의미가 아니라는 인생철학 비슷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방송진행자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프로그램이 원하는 대답이 나와야 아침방송의 주제토론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계획된 질문과 대답이었겠지만 방청객 가운데 의미 있는 대답으로 진행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낸 명답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고개를 끄떡이게 만들었던 직선거리 480마일770Km... 부산에서 평양쯤 되는 거리를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비결이었다.

아내와 나는 차를 타고 달리면서도 싸울 때가 많다. 사실 싸운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융단폭격을 당하면서 운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언제나 길을 떠나기 전에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스스로도 그런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서 스스로 ‘빙신~’소리를 해 볼 때도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아내도 그런 눈치다. 간혹, 혼자 가도 좋을 길을 굳이 나를 달고 떠나려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나를 태우고 길을 달리다가 결국 속이 부글부글 끓게 될 것을, 오늘도 혼자 떠나지 못하고 함께 가 잔다. 별도리 없이 구시렁대며 따라 나선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쩌다 혼자 떠난 길이 운치가 있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진작에 이렇게 여행을 할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기가 무섭게 갑자기 적적하고 외로운 길이 되고 만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피곤해서 골아 떨어진 아내라도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마음 넉넉한 여행이 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걸 꼭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춥지 않을까... 실내온도에도 신경이 쓰이고, 혹시 잠이 깰까 싶어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조심스러운 마음을 쓰며, 몇 번 자는 모습을 들여다 보면 어느새 네비게이션이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지지고 볶으며 주름살이 늘도록 부대끼게 될 것을 왜 그렇게 결혼을 못해서 안달들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들 결혼하게 되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혼자 살겠다는 독신주의자들을 보면 ‘지금 가는 인생길이 제법 운치가 있는 모양이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 머지않아 운치 있는 인생길이 적적한 외로움 앞에 이미 지나간 풍경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가야 할 길이 멀고 막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그 분은 나이 오십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남다른 미모와 내면의 깊이를 가진 분이라 대학을 다닐 때부터 남자들을 줄 세워 달고 다니셨다는 전설을 동인들을 통해 여러 차례 듣고 있었다. 글 쓰는 동인모임과 관련된 분이라 붙임성 있게 따르며(미인을 좋아하는지라) 가깝게 지냈는데 하루는 나를 앞에 앉혀놓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배야 넌 꼭 결혼해라. 혼자 사는 것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일이란다. 하루는 몸이 아파서 누웠는데 몸이 아프다는 사실보다 혼자 앓고 있다는 것이 너무 너무 서러워서 울었단다. 나 좋다던 사람들... 그 누구라도 내 옆에 있어주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말인데... 지금이라도 결혼할까 생각 중이야. 내가 좀 웃기니?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이야기 하지 마... 망신스러우니까” 그 분은 지금도 독신이다. 아마도 몸 져 눕는 날이면 더 아픈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울고 계실지도 모른다. 고독한 여행은 언제나 끝자락이 더 지루하고 더 적적한 법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혼자 떠날 걸 그랬나 싶은 마음처럼, 그냥 혼자 살 걸 그랬다고 가슴을 치며 후회했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리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몇 개월 전에도 그랬다.

어느 날, 내키지 않는 길을 함께 떠나온 아내가 여행길에 지친 듯 옆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이제 싸울 기력도 없다며 조용해졌다. 갑자기 싸우다 잠든 아내가 춥지 않을까... 실내온도에 신경이 쓰이고, 혹시 잠이 깰까 싶어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조심스런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지친 아내의 모습이 신경 쓰인다. 그런 내 삶이 그다지 싫지 않다.
오늘, 병원을 다녀온 후에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말야... 혹시 나 일찍 죽으면 그 땐 혼자 속 편하게 맘껏 살아”
그랬더니 아내가 말을 받았다.
“당신은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싸우는 재미를 모르는구나... 당신 죽으면 누구랑 악을 쓰며 싸우겠어... 보험금 안 타도 좋으니까 그냥 오래 살아”
그리고는 돌아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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