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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성격과 신앙

hherald 2010.07.17 20:06 조회 수 : 2288

아침 일찍 우편물이 배달되었다. 영국생활에 좀 익숙해지면 우편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다. 한국에서 날아오는 그리운 소식이나 소포들은 뜸해지고 여기저기서 '돈 내라~'는 우편물만 산더미처럼 쌓여가기 때문이다.
우편물을 뜯어보니 ‘템즈워터’에서 보낸 수도요금 'Final Notice'였다. 지난 번에 'Reminder'를 받았으니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세금고지서가 날아오면 아무 생각없이 처박아두었다가 꼭 'Reminder'를 받고 'Final Notice'를 받게 된다. 그렇다고 'Final Notice'를 받은 후에 즉각 일을 처리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마저도 어느 한구석에 처박아두었다가 '안내면 쳐들어온다'는 차압통지를 받고서야, '짜식들~ 내면 될 거 아니야' 혼자 말로 궁시렁대며 수표를 꺼내 들게 된다.
아내는 이런 내 성격을 못마땅해한다. 어떻게 세금을 미루다가 차압통지까지 받아가며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속이 터질 지경인지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그냥 말없이 돌아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에게 바가지를 긁히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닮을 것이 없어서 하필이면 그런 것을 닮았는지...
나는 아버지를 닮아서 느리고 낙천적(樂天的)이다. 좀 느리지만 인생을 별로 부대끼지 않고 사는 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내는 그런 나를 게으르고 욕심도 없고 승부욕도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심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철없을 때 느리고 낙천적인 아버지를 게으르고 욕심도 없고 승부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내가 철없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내는 장모님을 닮았다. 일을 미루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일을 대충대충 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내 성격 때문에 산더미처럼 쌓인 일도 아내의 손에 들어가면 정말 순식간에 해결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나도 아내를 바라보며 답답할 때가 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원래 오래 참고 견디며 언제까지든지 기다리는 것인데, 아내를 보면 인생을 조바심으로 부대끼며 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믿음이 부족해 보인다는 이야기다.
나는 가끔씩 그런 아내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한다.
"참을성 없는 아내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주옵소서!"
언젠가 기도회에 참석해서 아내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너는 아내보다 믿음이 좋으냐?"

나는 비교적 오래 참고 견디며 잘 기다리는 것을 나의 성숙한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 날 그 생각이 결코 옳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일 내가 예수 믿지 않았다면 오래 참지 못하고 잘 기다리지 못했을까?'
사실 나는 신앙을 갖기 전부터 오래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오죽하면 치과에 갈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까...
“아니 이걸 어떻게 참았어요? 무지 아프셨을 텐데... 나 참~ (미련한 것도 아니고)”
그것이 내가 타고 난 성격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타고난 나의 성격을 스스로 좋은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의 못난 성격을 '신앙(信仰)'이라는 이름으로 변호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신앙은 나처럼 막연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은 '기도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확실히 맡기고, 스스로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삶의 현장'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성실하게 끝을 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그것을 혼동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엉망이 된다. 바로 내 이야기다.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기도의 현장에 가 있고, 기도의 현장에 있어야 할 사람이 삶의 현장에 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신앙생활은 지금이 ‘기도해야 할 때’인지 ‘일을 해야 할 때’인지를 제대로 구분하게 될 때 비로서 성숙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일을 해야 할 때 기도하는 것처럼 꼴불견도 없다.
그러나 기도해야 할 때 일을 하는 것은 그냥 꼴불견이라는 이야기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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