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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50을 코 앞에 두고 생각해 보는 행복론

hherald 2010.07.15 15:19 조회 수 : 1187

내 나이 30이 되던 해에는 20대에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내 나이 40이 되던 해에는 30대에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나이 50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지금, 좀 더 열심히 살지 않았던 40대가 후회된다.

 

30이 되던 해에 난생 처음으로 세월의 중압감을 느꼈다. 막연히 잘 못 살아온 세월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영미의 시詩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마흔이 되던 해에 다시 읽으며 30이 되던 해의 내 생각이 옳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이 40은 꺾어진 인생의 절반을 넘어 이미 늦을 대로 늦은 시간이었다. 50을 코 앞에 둔 지금, 돌이켜보니 그 때만해도 결코 늦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젠 정말 늦은 시간이다. 내가 아니라고 도리질을 쳐도 사람들은 나이 50부터 살아 갈 인생을 여생餘生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제 겨우 조금 남은 자투리 인생이라는 뜻이다.

 

마르깃 쇤베르거의 이야기처럼 내 나이 50은 까마득한 먼 미래의 이야기 인줄만 알았다. 그 까마득한 먼 미래가 종종걸음이 아니라 이제는 성큼성큼 걸어 내 앞으로 다가온다. 불과 10개월 후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세월은 결코 소란스럽게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법이 없다.

50을 막 넘은 대기업의 부사장이 24층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했다. 100억대의 재산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예,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등진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30이 되던 해에도 20대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고

40이 되던 해에도 30대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고 50이 되던 해에도 결코 40대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을 듯한 그의 이력이,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살고 있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서울대 학사, KAIST 석사, 스탠퍼드 공학박사, 기업내 13인 ‘S 펠로우’ 부사장 초고속 승진, 거액의 연봉과 스톡옵션으로 이룩한 100억대의 재력.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그의 이력이다. 세상을 향해 ‘인생은 나처럼 살아야 한다’고 거들먹거리더라도 전혀 흉이 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았던 흔적이 보이고, 모든 이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인생임에 틀림이 없다.그런데 우울증에 투신자살이라니...

 

“신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듯하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의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자살이 프로이드의 말에 무게를 실어준다.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생각하게 되는 행복의 조건은 대개 비슷하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을만한 돈, 존경은 받지 못하더라도 존중을 받을만한 명예,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건강 그리고 함께 행복을 나눌 가족들... 그러나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성공한 한 남자의 투신자살을 통해 확인했다.

 

프로이드는 “신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던 듯하다”는 이야기로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말은 ‘사람을 하나님처럼 크게 만드셨다’는 뜻을 포함한다. 타락한 인간의 비극이 바로 여기서 시작 되는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가 얼만큼 큰 존재인지 깨닫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이 아주 소박하고 작은 것으로 넉넉하게 채워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작은 집이라도 있으면 행복할 것 같던 마음에 작은 집을 넣어보면, 머지않아 더 큰 집을 넣어야 채워질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는 세상을 정복한 후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여러 왕들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것이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실존이다.

 

채워지지 않는 한 만족은 없다. 결국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큰 것은 더 큰 것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법이다.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그 마음에 그 마음보다 더 크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아주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게 된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으로 채워진 만족스런 자신에 대한 성도의 고백이었다.

 

나이 50에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이 여생餘生이라고 부르는 자투리 인생을 코앞에 둔 나는 행복한 미래를 한 번 꿈꿔보기로 했다.
‘While there’s life, there’s hope!’
나이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것이 빚을 잔뜩 지고 살면서도 내가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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