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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식초이야기

hherald 2010.09.06 16:12 조회 수 : 10612

몸에 좋다면 양잿물도 들이킨다더니 바로 내가 그 짝이다.

이틀 전부터 식초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들놈이 시어꼬부라진 식초를 벌컥벌컥 들이킨 후에 진저리를 치는 내 꼴을 보더니,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이층으로 올라간다. 뭔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피차 별것도 아닌 일로 떨떠름하게 지내던 친구목사를 불러 함께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었다. 맛은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내 요리솜씨도 요리솜씨였지만 어쩌다 발견한 소스가 웬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뺨치는 맛을 내주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 친구가 스파게티를 즐겨먹는다는 것도 그 메뉴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맛은 괜찮았다. 특별히 맛이 없을 이유가 없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놈 간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만들어 먹었던 손에 익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목사가 포크에 스푼을 대고 스파게티를 똘똘 말더니 입으로 가져가 맛을 본다.
“어쭈구리... 제법하네” 하는 표정이다.

임목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런던의 요리사다. 하긴... 아내가 직장을 다니는 목사들 가운데 요리사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친구의 수준은 좀 달랐다. 무슨 일이든 대충하지 않으려는 그의 성격 탓일 것이다.

“스파게티에 옥수수를 넣으니까 맛있더라구”

몇 년을 만나지 않는 동안, 맛에 대한 관심이 웰빙으로 옮겨간 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샐러드 이야기며 드레싱 이야기며 모두가 한결같이 웰빙이었다. 딸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스파게티에 옥수수를 넣은 맛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식초를 뿌린 샐러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좀 그랬다.

“박목사... 식초를 마셔보라구... 식초가 어쩌구 저쩌구...”
식초를 뿌린 샐러드를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역겨운데 그 친구는 내게 아예 식초를 쌩生으로 마셔보라고 권했다. 그 날 이야기는 그렇게 식초 이야기로 마감을 했다. 결론은 식초가 골다공증까지 치료하는 만병통치약에 불로초라는 이야기다.

 

얼마 전부터 손이 붓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검사를 했지만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다. 일을 미루고 병을 키우는 내 천성 탓이다. 더구나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 앉아있는 요즘 내 습관이 건강에 독이 되고 있는 것이 뻔했다.

어쩌다 들어간 블로그에 ‘식초 이야기’가 있었다. 올해로 91세가 되는 샘표식품 박승복 회장의 ‘건강비결 식초’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88세(2007년)의 나이에도 신체나이 40대의 비결은 바로 흑초에 있습니다”

 

영국에 흔해빠진 것이 흑초다.
몇 번 먹다 보면 질려버리는 맛대가리 없는 영국의 전통음식, ‘피시 & 칩스’에 뿌려먹는 것이 바로 흑초다. 그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니 정말 웃기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몸에 좋다면 양잿물도 들이킬 나이 50이 되고 보니 그 웃기는 이야기에 살며시 마음이 잡히고 만다. 망가진 건강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친구목사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그대로였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더 이상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다.

미친척하고 흑초 Sarson’s Malt Vinegar를 한 병 샀다. 1파인트짜리가 1파운드도 되지 않는 99펜스였다.

인터넷에 가득한 식초예찬론자들의 이야기대로 소주잔 7할 정도의 흑초를 생수와 3:1로 섞어 식후에 마셨다. 맛이 그렇게 끔찍하지는 않았다. 순간, 정말 그걸 마실 거냐고 옆에서 웃던 아들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그 다음날 아침과 점심까지 세 번을 마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식초를 마신지 하루 만에 부었던 손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몸도 가벼워 졌고 얼굴색도 밝아졌다.

내 이야기를 듣고 친구 조목사가 흑초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날 저녁부터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술 더 뜬다. 흑초를 마시고 몇 시간 지나지도 않았는데 부었던 손이 가라앉았다더니, 그 다음날에는 몸도 가벼워지고 아프던 어깨도 한결 좋아졌다며 신기해했다.

 

영국은 식초천국이다.
흑초도 흔하고 뉴몰든에 있는 리들에가면 그 비싸다는 발사믹식초 Balsamic Vinegar가 겨우 99펜스다. 와인으로 만든 것이라 마시기가 한결 편하다며 아내는 발사믹식초를 마시기 시작했다.

 

복음도 그런 것이다. 그 전엔 그렇게 우습고 황당하던 ‘예수 이야기’가, 어느 날 궁한 내게 통하더니 내 삶을 신기하게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면 호들갑을 떨며 동네방네 ‘예수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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