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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날 믿어! 난 문화인류학자거든!

우리 가족이 영국을 떠나면서부터 나는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등지에서 별 계획 없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침팬지 실험이 거절 당하자 실망한 아버지는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는 대신 나를 민족서지학자로 키우는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다섯 살밖에 안되었는데도 그는 이 불리한 조건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학생보다 키가 조금 작았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내가 민족서지학 조사방법을 익히는 데 문제가 될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내가 배운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 찾기였다. 익숙지 못한 문화에 접했을 때 나는 주민들의 행태에서 일정하게 지속되는 무언가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러고는 이 행태를 지배하는 인습과 집단적인 지혜인 숨은 규칙을 찾아보았다.
이 규칙 찾기는 거의 무의식적인 버릇이 되었고 반사작용 (혹은 오랫동안 고통 받는 나의 동반들에 의하면) 병적이고 억제할 수 없는 충동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면 2년 전 약혼자 헨리가 폴란드에 있는 친구를 방문하는 데 나를 데리고 갔다. 폴란드 차들과는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는 영국 차를 운전하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운전자인 그는 승객인 나에게 언제 추월해야 하는지 물어보며 가야 했다. 폴란드 국경을 통과하고 20분쯤 지나자 양쪽 2차선 도로의 반대 차선 저 앞에서 차가 오고 있는데도 나는 "응, 이제 추월해도 돼"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내 말에 따라 추월을 시도했으나 막판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두 번이나 포기한 뒤에는 내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데? 그때는 절대 안전하지 않았는데? 달려오는 큰 트럭을 보지 못했나?" "응, 못 본 것 아닌데, 여기 폴란드 도로 규칙은 달라, 왜냐하면 여긴 비록 2차선이지만 사실은 3차선 역할을 해서 만일 차가 추월을 시작하면 상대편 차가 옆으로 비켜서서 자리를 만들어주거든."
헨리는 공손하게, 내가 이번이 첫 폴란드 여행이고, 이 나라에 들어온 지 30분밖에 안 되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폴란드 운전자들은 자세히 관찰해본 결과 모두들 이 규칙을 따르더라는 내 말을 그는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나를 믿어! 난 문화인류학자야!" 라는 장담도 도움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내 이론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그를 설득할 수 있었다. 그가 추월을 시도하자 차들은 홍해처럼 알맞게 갈라져 3차선을 만들어주었다. 나중에 우리를 맞은 폴란드 주인은 그런 비공식 관습이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나의 승리감은 헨리의 친구 여동생에 의해 가차 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그녀가 폴란드 운전자들의 조심성 없고 위험한 운전 습관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일 좀더 잘 관찰했다면 길 옆에 십자가와 함께 군데군데 조화가 있는 광경을 보았을 거라는 얘기였다. 교통사고로 가족이나 친척을 잃은 사람들이 사고가 난 자리에 놓은 것이다. 헨리는 너그럽게 문화인류학자의 신뢰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폴란드 관습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왜 목숨을 걸고 그 규칙에 참여하고 싶었느냐고 물었다. 물론 자기 목숨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이 충동의 일부는 참여자 관찰의식이 불러일으켰으며, 나의 광기에는 조사방법론도 조금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원주민의 행태에서 규칙적이거나 일정한 형식이 보이고, 그것이 잠정적으로라도 불문율이라고 여겨지면 민족서지학자는 그런 규칙이 정말 존재하는지를 증명하고자 여러 시험을 해본다. 대표적인 원주민을 선정해 자신의 관찰을 말하고, 그 행태 뒤에 숨은 불문율, 인습 혹은 원칙을 제대로 알아맞혔는지 물어본다. 또는 증명이 안 되고 가설로만 존재하는 규칙(hypothetical rule)은 일부러 어겨보고 그들의 반응에서 불인정이나 적극적인 인정의 표시를 찾음으로써 확인해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폴란드의 세 번째 차선 규칙처럼, 직접 실행함으로써 그 규칙을 시험해볼 수 있다.

지겨우나 중요한 것

이 책은 사회과학자를 위해 쓰인 책이 아니고 출판인이 얘기하는, 까다롭고 예리한 '지적인 일반인(intelligent layman)'을 위해 쓰였다. 내가 비학문적으로 접근한다고 해서 혼란스러운 생각, 너절한 언어 사용, 용어 규정 실패가 용서될 수는 없다. 이것은 영국인다움의 규칙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규칙(rule)'이라는 단어의 뜻을 우선 설명해야 한다.
나는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따라 규칙에 개념을 네 가지 해석에 근거해 사용하고 있다.
-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원칙, 규정 혹은 행동 원리
- 구별, 차별, 판단, 견해의 기준; 기준(규범,표준 척도), 시험, 측정
- 전형적인 사람이나 사물; 목표의 표본
- 사실 혹은 사실의 표현, 일반적으로 물건의 좋은 상태, 정상/보통 상태를 유지한.
따라서 영국인다움의 원리를 찾겠다는 내 목표는 특정한 행동 규칙을 찾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일상적이고 통상적인 영국인 행동의(넓은 의미의) 표준, 기준, 이상, 주요 지표와 사실에 관한 규칙이 포함되어야 한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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