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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유인촌을 위한 변명

hherald 2011.08.01 17:54 조회 수 : 1871



이명박 정부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유인촌이 문화특보라는 청와대에 신설된 자리를 꿰차고 이명박 대통령에게 돌아왔다. 잊지 않고 불러준 대통령의 보은인사에 너무 감격했었던가. 초대 일성이 '명성황후를 '민비'라 부르고 '성벽이 너무 낮아 시해를 당했다'는 망언을 했다. 문화특보의 역사의식을 문제 삼는 비난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우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비하해서 말하는 '이조'라는 표현처럼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표현해 비하했다는 비난이다. 일본이 만든 식민사관에 젖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조선을 필연적으로 망해야 할 나라로 만들려고 조선의 모든 것을 왜곡한 식민사관, 명성황후를 살해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비하한 호칭 민비를 일본제국주의자들과 똑같이 사용하다니. 그리고 변명이란 게 고작 "좋은 얘기였는데 잘못 전달됐다"라니. 곤욕을 사서 치르고 있다.

그런데 유인촌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민비'라는 말이 명성황후를 비하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왕후의 성(姓)에 비(妃)를 붙이는 용법은 일본에서 만든 게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연산군의 생모를 '윤비'라 했고, 윤원형과 정난정의 전횡이 미웠던 사관은 문정왕후 윤씨가 죽었을 때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썼고, 지금도 고종의 계비는 엄비라고 하는데 비(妃)라는 호칭이 결코 비하하는 것이 아니며, 일본이 조선을 비하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려서 이름이 민자영이었던 명성황후는 살아서 '중전'이면서 '민비'였을 것이고, 을미사변으로 죽어 '명성왕후'가 됐다가, 대한제국이 선포돼 '명성황후'가 됐고, 1919년 고종이 승하해 '태황제'로 올려지자 이에 따라 ‘명성태황후’가 됐다.

그런데도 '민비'라고 하면 왠지 일제에 의해 더럽혀진 표현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 끼어서일까. 45세의 나이. 일본 무뢰배의 칼에 난자당해 죽고, 시신조차 홑이불에 싸인 채 대궐 소나무 숲으로 옮겨져 석유가 뿌려진 가운데 초가을 새벽에 한 줄기 연기로 사라진 그 죽음이 말도 안 되는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양이었기 때문에 민비와 명성황후라는 두 가지 표현에 더 극도로 예민해졌다는 것이 유인촌을 위한 변명이 될까.

그런데 '문화'에서는 도저히 그를 위해 할 변명이 없다. 문화란 사전적 의미로 <사회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지식이나 신념행위>다. 즉, 문화란 공통의 보편적 가치에 기인하는데 유인촌 문화특보의 역사인식과 막말 수준과 완장주의를 보건대 문화와 그를 이을 고리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니 억지 변명도 어렵다. 

참 쓰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으며 이제는 청와대 문화특보라는데, 유인촌과 문화는 변명조차 어려운 사이로 느껴지니 참 쓰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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