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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블랙페이스

hherald 2019.04.01 16:44 조회 수 : 4118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연례 축제로 그리스 비극을 공연하는데 올해는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이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공연장에 몰려가 이 작품이 인종차별적이라며 반대 시위를 해 공연이 취소됐다. 연극배우들이 고대 그리스를 모방해 검은색과 흰색 가면을 쓰고 출연하는 데 특히 검은색 가면을 쓰는 것이 흑인을 비하하는 '블랙페이스'라고 학생들은 주장했다.

 

 

블랙페이스는 흑인이 아닌 사람이 흑인 얼굴을 희화화해 분장한 것이다. 1800년대 후반 미국의 백인 코미디언들이 흑인을 코미디 소재로 삼아 분장하면서 시작됐다. 얼굴을 과할 정도로 까맣게 칠하고, 입술을 붉은색으로 두껍게 그렸다. 흑인은 지저분하고, 지능이 낮고, 도둑이라는 내용으로 백인 코미디언들이 백인 관객들을 웃겼다. 이를 민스트럴 쇼 Minstrel Show라고 했다. 민스트럴은 중세 유럽의 음유시인을 지칭했으나 후대에 오면서 음악이 있는 광대극으로 바뀌고 미국으로 건너가 흑인광대극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미국에 민스트럴 쇼를 처음 만든 이가 영국에서 이민 간 코미디언이었다. 

 

민스트럴 쇼에서 만든 우스꽝스러운 흑인 상은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전형처럼 굳어지고 흑인들과 직접 접촉이 없는 백인들에게도 흑인은 열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민스트럴 쇼는 블랙페이스로 만들어졌다. 이를 예술적 자유라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오늘날 블랙페이스는 금기다. 그런데 불과 30년 전까지 영국에서 공공연히 공연됐다면 과연 믿기는지. 영국 BBC에서 1978년까지 <The Black and White Minstrel Show>라는 코미디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백인들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나왔다. 1958년부터 20년간 이어졌다. 인종차별 지적과 흑인 인권운동의 결과 이 프로그램은 퇴출됐지만 무대를 웨스트 앤드로 옮겨 빅토리아 역 건너편에 있는 빅토리아 파라스 씨에틀에서 10년이나 더 공연된다. 호주와 뉴질랜드로 원정 공연도 갔다. 런던 웨스트 앤드에서 블랙페이스 분장의 공연이 한창알 때 우리나라에서도 개그맨 장두석과 이봉원이 KBS에서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시커먼스'로 사람들을 웃겼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에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오가는 사람들이 있다. 검은 피부의 이집트 남자(아들)들은 오만하고 호전적인 야만인이며 탄원하는 여인(딸)들은 문명 세계 아르고스 출신이다.  2500년 전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사회가 갖추어야할 미덕과 범해서는 안 될 금기에 주목했다는 평을 받는다. 

 

미덕과 금기. 아, 2500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질 블랙페이서의 비극을 예견했다는 듯이 말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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