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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유길준과 영국, 그리고 중용中庸의 눈

hherald 2015.11.23 20:48 조회 수 : 1189

 

 

영국한인사 편찬과 관련해 이래저래 여러 자료를 살피다 보니 처음 한국땅을 밟은 영국인, 처음 영국에 온 한국인 등과 같이 뭔가 '최초'라는 말이 붙은 사람과 사건에 자꾸 주목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최초의 조선인 국비 유학생인 유길준과 그의 책 <서유견문西遊見聞>이다. 유길준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가 미국에서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조선을 갈 때 태평양을 건넌 것이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유럽을 들렀다는 것. 그리고 그는 이때 겪고 본 것을 바탕으로 유럽 국가들을 서유견문에 소개했는데 영국의 정치 체제를 근대 국가의 모범으로 생각하며 꽤 자세히 소개했다는 점이다. 그런 것은 영국한인사에 다룰 내용이고 여기 소개할 것은 많이 알려진 것만 부분 인용한다.

 

아시다시피 서유견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기행문이다. 20편의 이 책에는 서양의 역사, 지리, 정치, 산업, 제도, 문화 등이 망라됐다. 이 책은 한때 금서禁書였는데 100년이 넘은 지금도 배울 것이 많은 양서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당시 이 책의 가치는 말 할 것도 없다.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책을 살피기엔 여기서 맞지 않아 기행문 중 단편만 소개. 

노론 양반 출신인 그에게 서양은 곧 야만이었을 법 한데 그는 미국 유학을 간다. 1883년 9월 조선에서 온 대미 사절단 보빙사의모습을 본 미국 신문은 당시 이렇게 적었다. <모두 기혼인데도 부인을 동반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조선은 여성을 천시한다. 조선인은 내외 풍습이 있어 남이 보는 앞에서 남녀가 절대 키스하는 법이 없다>. 유길준의 눈에도 이들은 낯설었다. 그는 미국에서 무도회를 본다. 이렇게 적었다. <우리나라 풍속에 따라 본다면 남녀의 분별이 없다고 책망할 자도 있으며 음란한 풍속이 있다고 비난할 자도 있을 것이다>. 기차를 봤다. <그 신기하고도 경이로운 규모와 신속하고도 간편한 방도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넉넉히 놀라게 하였으며 마음을 뛰게 하였다>. 프랑스에 갔다. 유길준에 눈에 프랑스인이 건방져 보였던 모양이다. <서양 여러 나라의 사물이 거의 파리의 제도를 본뜨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심성과 자만하는 의기가 매우 심하다>. 독일 베를린은 당시도 맥주를 많이 마셨던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맥주를 좋아하여 그 음주량이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월등히 많다. 날마다 오후가 되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길가에 비틀거리는데 크게 떠들거나 노래를 부르며 심한 경우에는 길에다 오줌을 누기도 할 정도로 해괴한 버릇이 많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본 투우鬪牛는 야만의 풍습이라 했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놀이로 야만스럽고도 잔인한 풍속이 남아 있다. 궁지에 빠진 커다란 소를 찔러 죽일 때에는 투우장에 가득한 관객들이 손뼉 치고 갈채하는데 하루에 찔러 죽이는 소가 열댓 마리나 된다고 한다>.그는 당시 신문의 속보성을 보고 놀랐다. <묘시(오전 5-7시) 말에 끝난 일이 있었는데 그 내용이 신문에 실려 그 날 신시(오후 5-7시)에는 서울에서 300리 떨어진 곳까지 떠들썩했으니 놀랄만한 일이다>

 

유길준이 품었던 꿈, 개화開化가 <새로운 근대 국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었음을 짐작게 하는 부분도 있다. 서양의 <여자를 대접하는 예절>을 보고는 <제왕처럼 귀하고 제후처럼 부유해져도 첩을 두는 풍속이 없고 일부일처가 임금으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두루 통하는 제도다. 그러므로 봄날 안방에서나 가을날 다듬이질을 하면서도 원한이 없다>고 했다. 당시 조선의 축첩과 많이 달랐다는 거다.

 

앞서 말했듯 유길준은 영국을 근대 국가의 모델로 생각했다. 영국이 가진 국가 제도의 합리적인 면과 좋은 경제 체제, 런던이 보여주는 대도시의 위용도 칭찬했다. 그렇지만 유길준에게는 서양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보다 ‘외국 것’과 ‘자기 나라 것’의 조화를 강조하는 중용의 눈이 있었다. 120년도 더 된 지금, 우리는 영국에 살면서 '영국의 것'과 '우리의 것'을 조화롭게 하는 중용의 눈이 있는가. 120년도 더 지난 지금, 유길준을 불러내는 이유가 아직도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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