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것을 번역의 문제라고들 많이 얘기한다. 이 분야 외국인 전문 교수가 <한국문학 중에는 원작이 가진 힘을 제대로 전달한 번역 작품이 드물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번역이 창작에 비해 차별받는 한국 문학 풍토에 기인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영국에서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한강의 작품을 도맡아 번역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도 같이 주목받았다. 번역가가 공동 수상자로 호명되는 상의 특성만이 아니라 스미스는 심할 정도로 알아서 의역하는 스타일인데 한강 작가가 그 부분을 많이 인정하는 타입이라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독자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짧은 내 식견과 소양으로 이런 깊은 주제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소개되는 김소월 시인을 얘기하려니 과연 번역을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 던져본 화두 話頭였다.
우크라이나 국립대학에 김소월 시인의 흉상이 건립됐다. 이 대학의 교수가 김소월의 작품을 번역해 우크라이나에 이미 소개했는데 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낸 한국 교수가 제안해 대학 식물원에 소월의 문학 기념비인 흉상이 건립된 것이다. 뜻깊게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이 대학의 이름은 셰브첸코 대학으로 '타라스 셰브첸코'라는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학 서열 세우는 게 좀 그렇지만 여기저기 다 찾아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이 대학이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다. 그런 대학의 이름을 천민 출신 민족 시인에게서 가져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개인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매우 문화적인 국가로 평가하고 싶다. 어쨌든 김소월의 흉상이 이처럼 시인을 기리는 대학에 건립된 것이 더욱 뜻깊다.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는 다르다.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도 좀 알려지면 러시아어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는데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로 번역된 김소월의 시는 어떨까. 러시아에는 2002년에 소월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이미 김소월의 시집이 소개됐다. 우크라이나에는 어떻게 소개됐을까. 우크라이나 말을 모르니 책을 봐도 전혀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소월의 시가 내가 느끼는 소월의 정서와 거의 비슷하게 전해졌을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영어로 번역된 소월의 '진달래꽃'에서도 번역의 어려움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부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를 어떤 번역가는 'never를 두 번 반복'했고 또 다른 번역가는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참겠다'고 의역했다. - 두 번역가 모두 내가 보기엔 뛰어나다. - 이처럼 한국문학 번역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데 특히 우리나라와 문화적 교류가 깊다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같은 나라에 어떻게 전해지는지 궁금하면서 한편으로 뿌듯하고 반갑다.
다시 소월의 흉상이 선 셰브첸코 대학으로 가보자. 러시아 차르의 압제에 신음하는 약소국에서 천민인 농노의 아들로 태어나 고아로 자란 셰브첸코는 전제정치와 농노제도에 반대하는 혁명적 사상을 담은 시를 우크라이나어로 썼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에는 셰브첸코 거리, 셰브첸코 공원, 셰브첸코 지하철역, 셰브첸코 박물관, 셰브첸코 도서관 등 모든 곳에 그의 이름이 붙고 관공서나 학교에 그의 시구가 걸려 있다고 한다. 나라를 건국한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시인을 이토록 대우한다는 것이 놀랍다.
시인이 대우받는 나라의 대표적인 대학에 한국의 시인인 소월의 문학 기념비가 선다는 것이 더 반갑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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