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비. 일본 대사관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어린 소녀 동상이다. 10대 초반의 모습으로 지금은 고인이 됐거나 80대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의 성 노리개로 끌려가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한복을 입은 단정한 단발머리, 손을 앞으로 모으고 얌전히 앉아 일본 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아픈 역사가 형상화된 것이다.
평화비 소녀는 맨발이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의 사진을 보면 신발을 신은 사람이 거의 없다. 정신없이 끌려가서일까, 도망 못 가게 신발을 뺏은 것일까. 어쨌든 위안부 여성은 신발이 없다. 그래서 그 모습 그대로 표현해 맨발로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워 보였는지 엄동설한에 발이 시릴까 마음 고운 시민이 목도리를 풀어 평화비 소녀의 발을 감싼 훈훈한 사진이 자주 올라오곤 한다.
평화비는 시민의 정성으로 세워졌다. 국민의 성금으로 만들어진 평화비의 돌 바닥엔 한국어와 영어·일본어로 새겨진 비문이 있다. <1992년 1월 8일부터 이곳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시위가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를 맞이함에 그 숭고한 정신과 역사를 잇고자 이 평화비를 세운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주 수요일 정오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종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요 집회를 열었다. 1992년 1월 8일 시작돼 2011년 12월 14일 1000번째 집회. 평화비는 1000번째 수요집회를 기념해 시민이 정성을 모아 마련한 것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수요집회를 갖는 동안 234명의 할머니 중에 171명이 세상을 뜨고 63명만 남았다고 한다.
일본은 계속 평화비 철거를 요구한다. 자기네 선조의 야만적인 작태가 지독히 수치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도 노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평화비 철거를 당부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단호했다. 위안부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라며 "성의 있는 조치가 없으면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마다 제2, 제3의 동상이 세워질 것"이라고 했다. 작심하고 정상회담장에 앉았던 모양이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는 2,711개의 회색 콘크리트벽이 세워져 있다. 이름 하여 홀로코스트 기념비 공원. 일본과 같은 전범 국가지만 독일은 비싼 땅을 유대인 희생자 비석을 세우는 데 사용해 잔혹한 과거를 반성하고 희생자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일본은 높이 130㎝의 소녀상이 불편하다고 계속 철거해 주길 요구한다. 양심이 있다면 그런 소녀상을 제 손으로 만들어 오히려 용서를 빌어야 도리인데, 양심은 없고 수치심만 있어서 과거 야만적 행동을 반성하지 않고 감추기에 급급하다.
평화비 옆에 빈의자가 있다. 누군가 앉아 소녀를 위로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에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은 아직도 과욕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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