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규칙> 전호에서 이어집니다.
옳지! 또하나 '영국인다움의 규칙'을 챙겼다. 자기 만족에 의기 양양하여 시합을 조금 보았는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살짝 빠져 나갈까 생각 할 무렵인데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휴이트가 아주 훌륭한 플레이를 했다. (뭐냐고는 묻지마라. 난 테니스에 대해 정말 아는 게 없다).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르며 환호를 했다. "어? 잠깐!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분명 약자 날반디안을 응원하고 있었는데 왜 지금은 휴이트한테 환호를하지요? " 한 사람이 대충 설명하기를, 휴이트가 정말 잘 하고 있음에도 모든 사람이 약자인 날반디안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말은 불쌍한 휴이트는 훌륭한 경기를 했는데도 전혀 응원이나 격려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좀 불공정한 것 같아서 관중들이 미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휴이트를 위해 조금 환호를 해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강자 (오버도그 overdog? 그런 말이 있기는 하나? 하여튼 무슨 말인지 아시지요?)가 어쩌다보니 약자가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휴이트도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설명이다.
바로 이것이다. 나는 자기 만족에서 깨어나 정신을 바싹 차렸다. 그래서 휴이트한테 가던 응원이 언제 줄어들지 궁금해하며 관중들의 태도를 면밀히 지켜 보기로 하였다. 관중들이 날반디안을 다시 응원하기 시작하자, 다음 질문을 할 준비가 되엇다. "이제는 뭐지요? 왜 이제는 휴이트한테 더이상 응원을 안하지요? 이제 그가 잘못하고 있나요? " 사실 그는 더 잘하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이것이 요점이다. 휴이트가 이제 완벽한 승리를 거둘 참 이었다. 날반디안은 헤매고 있어서 완패 할게 뻔했고 반전의 기회가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란한 격려와 칭찬이 그에게 다 가야 공정하다는 것이다.
승자에게는 박수나 공손하게 쳐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인의 페어플레이 논리에 따르면 언제나 약자를 응원해야 하나 때로 약자에 대한 지나친 응원은 강자에게 너무 불공평하다. 그래서 진짜 강자는 명예 약자가 되니 관중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때까지만 응원한다.
혹은 진짜 약자의 패배가 분명해질 때까지만 응원한다. 바로 그때가 진짜 약자가 모든 응원을 다시 받을 때라는 것이다. 규칙을 일단 알게 되면 정말 간단하다. 적어도 윔블던에서는 간단하다. 거기에서는 누가 정말 약자인지를 알 수 있기때문에 아무 의심도 없기 때문이다. 이게 명확하지 않을 때는 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누가 모든 응원을 받아야 하는지 당황스러울 수 밖에. 또 영국 선수가 강자 일때는 조금 더한 어려움이 따른다. 우리의 적일지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 응원을 약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공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애국적인 관중들은 국제 시합에서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다. 자기가 응원하는 클럽이 시합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두 팀 다 자기와 상관 없거나, 특히 강자가 지금까지의 승전에 너무 자랑스러워 한다든지 시합 결과에 자신만만해 한다면 약자를 응원한다. 많은 영국 축구팬들은 가망도 재능도 없는 3부 리그 팀(영국에는 프리미어, 챔피언스, 1.2.3 부 리그가 있다. 3부라면 동네 조기 축구 수준으로 보면 된다. -옮긴이)을 한번 응원하기 시작하면 일생동안 아무리 그 팀이 형편없더라도 절대 변치 않고 계속 응원한다. 거기에는 불문율이 있으니, 어릴 때 무슨이유로든 팀을 한 번 정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절대 충성심은 변하지 않는다. 아주 잘 하는 팀,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기술이나 실력을 칭찬하고 부러워 할 수는 있다. 그래도 당신이 응원하는 팀은 역시 스윈던(swindon)이고 스톡포트(stockport)이다. 당신이 어릴때 부터 응원한 바로 그 팀 말이다. 꼭 자기 지방 축구팀만을 응원해야 하는것은 아니다. 전국의 많은 아이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널 등을 응원한다. 요점은 한 번 선택하면 그 충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스널이 요즘 더 시합을 잘 한다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 아스널 팬으로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로도 그렇다는 말이다.
또 하나의 매혹적인 하위문화집단인 경마는 내가 3년을 연구하고 거기에 관해 책도 썼다. 사실은 축구보다 경마가 국가적인 스포츠라고 불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관중 수 때문이 아니라 각계 각 층의 가장 일반적인 영국인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경마 당일 당신은 영국인의 극단적인 페어플레이 준수와 약자 응원규칙, 전반적인 영국인다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의 규칙>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