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닐진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으며 서글퍼 하는 사람이 많은 법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동으로 어른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이 드는 것과 어른이 된다는 것은 별개의 것입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릴진대 어른과 같은 사람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오래전에 영국에서 공부할 때 일본인 친구를 만났습니다. 내 나이는 삼십 언저리였고 일본인 친구는 십 대 후반이나 갓 스물이 된 어린 친구였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행동은 기억에 남습니다. 주말이면 정규적으로 테니스를 함께 했습니다. 예의가 얼마나 바른지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내가 나이가 많았지만, 그 친구가 오히려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삼 년 전에 고인이 되신 내 인생에 큰 어른이신 김동길 교수는 세상을 떠나기 칠여 년 전에 <나이듦이 고맙다>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느리게 걸을지라도 나는 고맙다, 나의 나이 듦이, 나는 고맙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육체는 다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지만 마음은 넓어지고 생각을 집중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김동길 어르신은 그의 저서에서 마음에 담을 만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엮어 냈습니다. “나이 듦의 의미는 무엇인지”,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지”,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어디를 향해 떠나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깊이 있는 고찰을 했습니다. 늙어감의 고통 속에 신음하기보다 세월이 흐를수록 바라던 소망의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쁨 속에 살아가는 노인의 삶에 대해 저술했습니다. 저자가 늙으셨고 또한 어른이셨기에 늙음을 비탄하지 않고 늙음에 고마움을 전하는 저자를 통해 나이 듦이 아름다움을 배우게 됩니다.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가 마음을 울립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나이를 물어본다는 것은 금기사항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나이 들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속셈일 수 있을 것입니다. 실상 사람은 태어나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망각하려 합니다. 나이는 상대적인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절대적인 시간입니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찾아가는 거룩한 행보입니다. 나이가 들어야 든 나이만큼 자신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으며 그 안에 웅크린 자아를 일깨울 수 있게 됩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아름다움의 원래의 의미는 “나”답다는 의미입니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나”다워질 때 아름다움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자연이나 예술, 인간의 내면이 다양한 대상을 일컬어야 하는 말입니다. 외적인 그 무엇 무엇에 관하여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아름답다’에서 ‘아름’은 순우리말로 ‘나’, 혹은 ‘알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은 ‘나다운’, ‘나를 완성’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이 더워지는 것은 모든 순간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를 깨닫고 나이 더워집니다. 나이 더워지기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자기를 찾아가는 거룩한 행보가 됩니다. 세상은 나이 든 사람을 때론 경멸하거나 홀대하기도 합니다. 마치 나이가 드는 것을 온몸으로 거부합니다.
나이 듦은 나를 완성하는 나다워지는 아름다움의 완성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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