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마을 출신 영국통 칼럼니스트, 권석하 선생을 기리며 재영칼럼니스트이며 영국 공인 예술문화역사 해설사 <영국인 발견><영국인 재발견 1, 2권><유럽문화 탐사><두터운 유럽><핫하고 힙한 영국><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 등 저서 편찬 <편집자 주> 이제 고인이 되신 권석하 선생을 기리는 특집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선생을 소개할 때 '영국인보다 영국을 더 잘 아는 재영칼럼니스트'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정작 재영한인들 사이에 혹시 낯선 이름이 될까해서 선생이 재영한인의 한 사람으로 재영한인사회에 남긴 큰 자취, 영국과 유럽을 연구하고 알린 그의 깊은 '책임감'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지난 3월 31일 한국으로부터 날아온 갑작스러운 부고로 그의 안타까운 죽음이 재영한인들에게 알려졌다. 향년 74세. 이르다면 좀 이른 소식이었다. 고인은 1951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500년 역사의 선비마을 경북 봉화 닭실 출신이라고 한다. 선비마을 출신이어서였을까. 어린 시절부터 책벌레였다는데 외국 번역서를 통해 유럽과 영국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영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진도모피에 입사, 1982년 영국 주재원으로 처음 영국과 인연을 맺는다. 그래서 선생이 어느 책 서문에 '반세기 가까이 영국에 산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라고 할만하다. 진도모피의 런던과 소련 법인장으로 일했으며 러시아에서 창업했다가 1990년대 러시아 모라토리엄 탓에 철수하고 런던에 정착해 보라여행사 대표 등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재영칼럼니스트이며 영국 공인 예술문화역사 해설사로도 유명했다. 일명 '블루 배지'로 잘 알려진 영국 해설사가 되는 과정은 서류심사, 필기시험 등 통과 절차가 많아 영국인도 무척 힘들다고 한다. 해설사 자격증은 선생이 영국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게 한데 큰 거름이 됐을 것이다. 주간조선,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에 10여 년 넘게 칼럼 등을 연재했다. 선생이 남긴 큰 업적은 무엇보다도 영국과 유럽에 관련된 그의 저서들로 입증된다. 선생의 부고 관련 기사를 보니 "평소 '책 10권을 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한인헤럴드에서 갖고 있는 선생의 책이 7권이니까 선생의 평소 필력을 보면 그 목표가 어렵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짙다. 그래서 아쉬움도 짙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2017)을 번역해 내놓았을 때, 인연이 시작됐는데 선생이 쓴 <영국인 재발견 1, 2권>(2013)을 보면 영국인 저자가 발견한 영국인보다 더 사실적이고 깊이 있는 영국인 재발견이 이뤄졌음을 체감할 수 있다. 서평을 보면 "<영국인 재발견2>은 <영국인 재발견>과 함께 영국의 속살을 제대로 보여준다. 그 범위도 다양해 비틀즈나 축구 사랑과 같은 가벼움에서부터 정치, 복지 문제 등에 이르는 무거움까지 종횡무진한다. 또 역사 속 ‘한국과 영국의 관계’ 같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주제까지 신선한 주제들 속에 엄청난 정보와 이야깃거리를 담았다. 이 책을 통해 영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알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올바른 판단을 비교할 기회를 가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후 선생의 저서는 <유럽문화 탐사>(2015), <두터운 유럽>(2021), <핫하고 힙한 영국>(2022),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2024) 등으로 이어진다. 2022년에 나온 <핫하고 힙한 영국>은 출간된 지 한 달 만에 한국출판학회가 선정하는 '2022 올해의 책' 중 하나로 뽑혔다. 출판사 리뷰를 보면 "<핫하고 힙한 영국>에는 신사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상상도 못 한 법과 사회제도, 왕실에 숨겨진 비화까지 이목을 사로잡는 다양한 영국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책의 1장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으로 세계의 화두가 된 영국 왕실을 낱낱이 파헤쳐 본다. 2장은 손흥민, BTS, 기생충을 비롯한 한국 영화와 한식 등 영국과 우리나라를 잇는 키워드에 대해 분석하고 이야기한다. 3장과 4장은 영국인의 문화와 사회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영국인들이 골동품에 집착하는 이유와 영국 결혼식에 전해지는 미신, 독특한 장례식 문화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시선을 끈다. 마지막 5장에서는 지금의 영국인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영국인인 윌리엄 워즈워스, 크누트 대왕, 크롬웰, 마거릿 대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동안 영국을 단순히 ‘해리포터’의 나라라고만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의 신랄한 재담이 가득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지만 멋진 나라’ 영국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며 '이상하지만 멋진 영국에 관한 특별한 책'으로 소개한다. 이를 책으로 내는 건 권석하 선생만이 가능한 능력이다. 미발표 원고나 그동안 쓴 글을 엮어서 유고집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출간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가 선생의 생전 마지막 저서가 됐다. 이 책을 출간하고 선생이 월간조선 편집장이었던 조갑제 언론인과 인터뷰하는 영상을 본 기억이 생생한데 선생의 49재 무렵에 그를 추모하는 특집기사를 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이 책은 "영국 · 영국인 이야기 결정판"이라고 하는데 절대 공감한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올 때 소개된 글을 다시 읽으면서 또다른 슬픔이 올라온다. 왠지 그런 느낌이다. "작가 권석하는 한국에서는 아득히 먼 곳 영국에서 4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의 삶을 이방인으로 명명함은 아주 당연하다. 낯설고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그를 지탱하게 했던 힘은 어쩌면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당연히 그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한국인의 눈에 비치는 영국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글은 한국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발표됐다. 외로운 재영 저널리스트의 나이도 고희를 넘겼다. 작가와 출판사는 이런 세월을 고려하여 작가의 영국·영국인 이야기 결정판을 만들기로 나섰으며, 그 첫 번째 편으로 <여왕은 떠나고 총리는 바뀐다>를 출판한다."고 했다. 그리고 "40년이라면 어쩌면 아득한 시간이다. ‘가장 많이’는 아닐지라도, ‘가장 깊이’ 영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저자의 경이와 비감이 공존하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물리적 시간을 거슬러 영국의 빛과 그림자를 만날 수 있으며,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부분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도 선생이 자신과 우리에게 준 것이 아닐까 한다.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선생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 한인헤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