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아이콘이 된 것 중에는 빨간색이 많다. 런던의 이층버스, 우체통, 공중전화 부스는 모두 빨간색이다. 근위병 복장이 주로 빨간색인데 얼마 전 타계한 필립공의 공식 의상도 빨간색이었다. 런던 지하철 표지판은 빨간색 동그라미 위에 역명이 적혀있다. 하긴 영국의 국화가 벌써 빨간 장미다. 국기인 유니언 잭에도 빨간색이 선명한데 해마다 11월이면 빨간 양귀비꽃이 영국을 뒤덮는다.
빨강은 최초의 색이며 가장 오래된 색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시예술에는 빨간색을 사용했다. '빨강'이라 쓰든 'RED'든 '赤'이라고 적든 원시적 언어로 가장 먼저 색에 이름을 붙인 것이 빨간색이다. 인간이 인식한 색으로는 두 번째라는데 첫 번째는 빛 light이다. 그래서 빨강을 최초의 색이라 할 수 있다
.
고대 영국 전설 속 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 시대에는 빨강이 피를 나타내며 생명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후로 영국을 비롯한 중세 국가에서 빨강은 '법의 색'이 되었다. 중세 유럽에는 법관들이 사형 판결문에 빨간 잉크로 서명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에는 도시에 빨간 깃발을 달고 형리들은 빨간 옷을 입었다. 이 전통이 이어져 오늘날에도 고위 법관은 빨간 옷을 입는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 빨간색은 젊잖음과는 거리가 있다. 왠지 강렬한 감정을 불러온다. 빨간불이 오면 위험하고 움직일 수 없다. 빨간딱지가 붙으면 금지품이 된다. 빨간 조명은 성욕을 나타낸다.
빨강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선동한다. 투우사의 빨간 망토에 흥분한다. 관중들이 흥분한다. (사람과 원숭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색맹이다. 따라서 소도 색맹이라 빨간색과 다른 색의 차이를 분간하지 못한다)
빨강색에 흥분하는 것이 또 있는데 바로 모기다. 모기는 인간의 날숨 속에 포함된 CO₂와 같은 특정 화합물의 냄새로 먹잇감을 구분하는데 냄새가 모기의 눈을 자극해 주변에 먹이가 어디 있나 하고 찾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실험 결과 모기는 긴 파장의 빛에 달려들었다. 빨간색과 오렌지색이 긴 파장을 발하는데 이곳에 달려들었다. 피부색과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피부는 강한 붉은색 신호를 발산한다. 지금까지 모기는 인간의 날숨, 땀, 체온을 좇아 달려든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번에 또 하나 빨간색을 보면 달려든다는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모기에 안 물리려면 빨간색 옷을 입지 말라는 모기 퇴치법이 새롭게 첨가된 셈이다.
빨강은 여성에게 인기가 있는 색이며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런데 괴테는 "빨강은 '색의 여왕'이 아니라 '색의 왕'이다."라고 했다. 프랑스 국기에서 의미하는 빨간 박애 정신, 만선의 배에 달아 기쁜 소식을 대신하던 붉은 돛,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선물한 빨간 내복, '색의 왕'이라 부를 요인은 많고 그렇게 사용되고 대우받는다.
글쎄, 모기 때문에 이번 여름부터 위상이 어떻게 바뀔지.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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