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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불행했던 식민지기의 역사 이야기다. 식민지 조선에 거주했던 일본인 중에는 고려청자를 비롯하여 왕실과 사찰의 명품, 온갖 귀중한 책, 그리고 그림 등을 싼값에 수집했던 골동품 학자들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864~1946)이다. 아유카이는 한반도에 거주하면서 국보급 진품을 다수 수집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왕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아유카이의 서울 집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들었다. 다행히 그의 소장품 대부분은 한국에 남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소문사설(謏聞事說)·식치방(食治方)》이다.

 

임금의 주치의는 왜 이 요리책을 썼을까?

이미지① 《소문사설·식치방》의 시작 면(서울 종로도서관 소장)

 

《소문사설》의 저자는 숙종(肅宗, 1661~1720)의 어의(御醫)였던 이시필(李時弼, 1657~1724)이다. 《소문사설》에는 네 편의 각기 다른 내용의 글이 실렸다. 그 네 편은 중국의 벽돌식 온돌 설치법을 적은 〈전항식(塼抗式)〉, 생활도구 제작업을 적은 〈이기용편(利器用編)〉, 여러 가지 만드는 법을 정리한 〈제법(諸法)〉, 그리고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는 요리법을 정리한 〈식치방(食治方)〉(다음부터 《소문사설·식치방》을 〈식치방〉이라고 함) 등이다. 이 네 편은 일부는 합쳐진 채로, 일부는 나누어진 채로 조선 왕실의 내의원 사이에서 전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소문사설》은 필사본으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한 종, 서울의 종로도서관에 두 종이 소장되어 있다.

이시필은 조선 후기 숙종의 주치의였다. 당시 말로는 어의였다. 어의는 얼핏 보면 요사이 대통령 주치의와 다름없어 보이지만, 그 무게감은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모름지기 왕의 장수를 책임지고 있었으므로 질병 치료는 물론이고 거의 매일의 식사 후 몸 상태까지도 살피는 업무를 수행했다. 이 때문에 어의는 왕의 일상 식사 메뉴를 정하는 업무도 맡았다. 질병이 주로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는 인식은 동서고금의 의학이론에서 두루 통하고 있다. 그렇다고 오로지 장수를 위해 맛없는 음식을 왕에게 권할 수는 없다. 맛도 있으면서 건강에 좋은 음식의 마련, 이것이 바로 어의 이시필이 고심했던 일이었다.

 

 

 
 

이미지② 〈선묘조제재경수연도〉의 1면 부분, 1695년의 왕실 잔치의 남성 숙수의 요리 장면 그림(고려대박물관 소장)

 

 

〈식치방〉에 담긴 38가지 요리법

이시필은 1678년 숙종이 왕위에 오른 4년째 되는 해에 의과에 합격하여 의관(醫官)의 길을 걸었다. 《승정원일기》 숙종 40년(1714) 음력 4월 11일자를 보면 내의원 도제조, 즉 내의원 총책임자 이이명(李頤命, 1658~1722)이 숙종에게 의관 이시필이 영남에서 들은 죽 처방에 대해 말하는 글이 나온다. 〈식치방〉의 ‘서국미(西國米)’에서 이시필은 “병이 들어 밥을 먹기 싫어하는 사람이 먹는다고 한다.”라고 했다. 이 내용은 《승정원일기》의 “몸이 아파 입맛이 써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서국미’로 죽을 만들어 먹였”다는 이시필의 말과 같다. 따라서 〈식치방〉의 저자는 이시필이 틀림없다.

〈식치방〉에는 38가지의 요리법이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 38가지의 요리법이 모두 이시필에 의해서 개발된 것으로 생각하면 오해다. 대부분의 요리법에 이시필의 미식 평론이 붙어 있지만, 요리법 자체는 궁중 요리사들이 개발한 것과 이시필이 직접 맛보고 요리법을 알아낸 것들이다. 〈식치방〉의 ‘붕어죽’에는 “경자년(1720)에 대궐에서 죽을 쑤어 따뜻할 때 임금께 올렸더니 맛이 자못 좋다는 하교가 있었다.”라는 글이 나온다.

 

임금이 낙점한 음식

이미지③ 우병(芋餠, 토란떡) 아래에 “낙점을 받아 임금께 올렸다. 이상은 숙수(熟手) 박이돌(朴二乭)이 만든 것이다.”, 사삼병(沙蔘餠, 더덕떡) 아래에 “영평(永平)의 관노(官奴) 강천익(姜天益)이 만들었다.”, 외부어(煨鮒魚, 붕어구이) 아래에 “강화경력(江華經歷) 원명구(元命龜)가 사복시 거덜(司僕寺巨) 지엇남(池旕男)이 만들었다고 말해주었다.”는 이시필의 설명이 적혀 있다.(서울 종로도서관 소장)

 

〈식치방〉에 소개된 38가지 요리법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범주는 조정의 고관대작부터 숙수(왕실의 남성 요리사)·거덜(사복시(司僕寺)에서 거마(車馬)와 양마(養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종7품의 잡직. 관직상의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임금의 행차 때 앞에서 말을 타고 길을 틔우는 일을 주로 맡았음. 거덜의 행동으로 인해서 ‘거덜거리다’라는 말이 나왔음)·노비에 이르기까지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요리법으로, 처음에 나오는 동아찜〔冬瓜蒸〕부터 송이찜·메밀떡·토란떡·더덕떡·붕어구이·붕어찜·황자계만두·굴만두·만두전골·날꿩장·전복소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 범주는 중국에서 먹어본 음식들의 요리법으로, 마늘장아찌·솜사탕·유즙가루·새끼돼지찜·호떡·계란탕·돼지대창볶음·녹말국수·열구자탕·연근녹말가루죽·두부피(이시필이 중국에서 먹었다는 글을 써놓지는 않았지만, 두부피는 당시 중국 북방의 일상식이었음)·오이장아찌 등이다. 그 밖에 따로 기준을 정하기 어려운 음식들이 세 번째 범주에 속한다. 서국미·물고기내장찜·새알심·귀리송편·까치콩채·즙장·송도식혜·순창고추장·식혜·깍두기·백어탕·가마보곶·배추겨자채 등이 그것이다.

〈식치방〉에 기록된 38가지 음식 중에서 동아찜·송이찜·메밀떡·토란떡·황자계만두·연근녹말가루죽·서국미죽·붕어죽은 실제로 임금에게 바친 음식이다. 특히 동아찜과 토란떡의 요리법에는 “낙점을 받아 임금께 올렸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여기에서 임금은 바로 숙종이다. 숙종은 27명의 조선 임금들 가운데 다섯 번째로 장수했고, 재위 기간도 47년이나 되어 영조 다음으로 오래 재위했다. 이시필은 이 동아찜을 두고 ‘상품지미(上品旨味)’, 즉 ‘최고의 아름다운 맛’이라고 평가했다.

〈식치방〉은 조선 후기 숙종 때 왕실에서 소비했던 건강에 좋은 음식 요리법 38가지를 적은 글이다. 이 중에는 중국의 문헌에 나오는 음식도 있지만, 이시필은 이것을 조선적인 요리법으로 바꾼 왕실 요리사들의 레시피로 옮겨 놓았다. 최근 K푸드가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K푸드 대부분이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음식점에서 판매한 메뉴다. 이제 K푸드도 오뜨퀴진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 나는 K푸드가 오뜨퀴진이 되는 길은 조선 후기 왕실의 요리법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책을 읽고 여러분도 새로운 오뜨퀴진 K푸드를 창조하기 바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문학을 공부한 백승호·부유섭·장유승은 《소문사설》 전체를 한글로 번역하고, 원문을 부록에 붙인 책을 펴냈다.(이시필(백승호·부유섭·장유승 옮김),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18세기 생활문화 백과사전》, 휴머니스트, 2011) 불행하게도 아직 e-book이 없다.

 

이미지④ 번역본 《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 18세기 생활문화 백과사전》

 

◎ 열구자탕(悅口子湯)

“대합(大盒: 놋대합)과 같은 삶는 그릇을 따로 마련하고 다리 옆에 아궁이를 하나 뚫는다. 대합의 중심에는 통 하나를 세우는데, 덮개 밖으로 높이 솟아나오게 한다. 덮개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통이 밖으로 나오게 한다. 통 안에서 숯을 피우면 바람이 다리 옆의 구멍으로 들어가 불기운이 덮개 바깥 구멍으로 나온다. 대합의 중심 주위에 돼지고기, 생선, 꿩고기, 홍합, 해삼, 소의 밥통, 염통, 간, 대구, 국수, 저민 고기, 새알심, 당근, 무, 배추, 파, 마늘, 토란 등 여러 가지 먹을 것을 넣어 종류별로 배열하고 청장탕(淸醬湯)을 넣으면 저절로 불이 뜨거워지면서 익는다. 여러 가지 액이 섞여서 맛이 꽤 진하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젓가락으로 먹고, 숟가락으로 탕을 떠서 뜨거울 때 먹는다. 이것이 바로 잡탕이니, 중국 사람들의 매우 좋은 음식이다. 눈 내리는 밤 손님이 모였을 때 (먹으면) 매우 적당하다. 만약 각상을 놓으면 운치가 없다. 중국 사람들의 풍속에는 본디 밥상을 따로 하는 예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그 그릇을 사오기도 하는데, 야외에서 전별하거나 겨울밤에 모여서 술 마실 때 먹으면 매우 좋다.”

 

 

이미지 ⑤ 2010년대 한정식음식점의 신선로열구자탕(주영하 사진)

 

이시필이 말한 열구자탕은 ‘입을 즐겁게 하는 탕(悅口子湯)’이라는 뜻이다. 보통 ‘신선로(神仙爐)’라고 부르는 음식이 바로 열구자탕이다. 본래 신선로는 열구자탕을 끓이는 그릇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조선 후기 이래 이 음식이 왕실과 부유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이름이 ‘신선로열구자탕’으로 변했다. 따라서 이 음식의 본명은 ‘신선로열구자탕’이다. 이시필이 소개한 그릇의 모양은 중국의 훠궈(火鍋)와 똑같다. 이시필도 말했듯이 17세기에 베이징에 간 조선의 사신들이 이 그릇을 가지고 와서 조선식의 음식으로 바꾸었다.

이시필은 “그릇의 원통 둘레에 돼지고기, 생선, 꿩고기, 홍합, 해삼, 소의 밥통·염통·간, 대구, 국수, 저민 고기, 새알심, 당근, 무, 배추, 파, 마늘, 토란 등 여러 가지 먹을 것을 넣어 종류별로 배열”한다고 했다. 그 재료가 무척 화려하다. 이들 재료 위에 ‘청장탕(淸醬湯)’을 부은 뒤, 원통 안쪽에 숯을 피워 음식을 끓인다. ‘청장(淸醬)’은 담근 지 1년이 안 된 맑은 조선간장을 가리킨다. 대구·홍합·해삼 같은 해물과 배추·무 같은 채소는 청장과 어울리며 끓일수록 시원한 맛이 우러났을 것이다. 여기에 돼지고기, 꿩고기, 소의 내장에서 나온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맛이 국물에 감칠맛을 더했을 것이다. 그리고 파와 마늘은 고기와 생선의 비린내를 잡아주었을 것이다. 이시필은 열구자탕의 맛을 두고 “여러 가지 액이 섞여서 맛이 무척 진하다”라고 적었다.

20세기 한반도를 강제로 침탈한 일본인 중에서도 신선로에 담긴 열구자탕의 맛에 반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림과 일본어로 해설이 쓰인 《조선만화(朝鮮漫畫)》(1904년)에는 열구자탕을 신선로라고 적고, 다음과 같은 찬사를 적어놓았다. “조선 요리 중에서 첫 번째의 명물로서 우리나라 사람〔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것은 신선로다. (중략) 조선 요리는 냄새가 심하고 불결하다고 하여 먹어보지도 않고 얼굴을 찌푸리는 거드름쟁이도 이 신선로만큼은 젓가락을 든다. 조선 요리를 먹는 일은 우선 신선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중략) 선물로 내지(內地)〔일본〕에 가져가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신선로로 불리는 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신선과 수명이 같아진다고 하는 의미라고 한다.”

 

이미지 ⑥ 은제산수화신선로(銀製山水文神仙鑪),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구10014)

 

신선로열구자탕은 식민지기에 조선의 일본인 사이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던 음식이었다. 당시의 조선요리옥에서의 수십 가지 요리 중, 신선로열구자탕은 주인공이었다. 이런 사정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1980년대 중반 대도시의 한정식음식점에서도 신선로열구자탕은 여전히 상 위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놋으로 만든 신선로를 설거지하는 일은 너무 까다롭고 힘들었다. 그래서 신선로 설거지는 주방의 막내에게 맡겨졌고, 요리의 책임도 막내에게 전가되었다. 결국 주방의 막내는 육수를 신선로에 붙고, 재래시장의 부침 전을 넣는 방식으로 신선로열구자탕을 만들어 식탁에 냈다. 당연히 맛이 없을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부 한정식음식점에서는 아예 각종 해물과 고춧가루를 넣은 해물잡탕을 신선로열구자탕이라고 식탁에 내놓았다. 신선로가 아예 해물탕으로 변해버렸다. 1980년대 이후 제대로 만든 신선로열구자탕을 먹어본 한국인은 거의 없다. 2020년대 이후 중국의 마라탕이 ‘Hot Pot’이란 이름으로 세계적 인기를 누린다. 중국의 ‘Hot Pot’은 크게 베이징식과 쓰촨씩의 두 가지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공장 노동자의 증가로 매운 음식이 크게 유행하면서 쓰촨식이 ‘마라탕(麻辣湯)’이 되었다.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신선로는 17세기 베이징에서 수입한 것이다. 신선로열구자탕은 한겨울에 온돌방에서 식탁 위의 국이 방의 차가운 외풍으로 인해서 바로 식어버리는 단점을 보완해준 대단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왕실의 겨울 잔치에서 신선로열구자탕은 빠지지 않았다. 물론 왕의 겨울 ‘수라’에도 자주 올랐다. 특히 임금에게 올리는 신선로는 독약을 염려하여 은(silver)으로 만든 1인용이었다. 대한제국 때 고종은 외국 사신이 오면 은제 신선로를 기념품으로 주었다. 나는 누군가 21세기형 ‘신선로열구자탕’을 만들어 중국의 ‘Hot Pot’과 나란히 어깨를 견주기를 기대한다.

 

◎ 순창고추장조법(淳昌苦草醬造法)

“쑤어놓은 콩 두 말과 흰 쌀가루 다섯 되를 섞고, 고운 가루가 되도록 마구 찧어서 빈 가마니 속에 넣는다. 1, 2월에 이레 동안 햇볕에 말린 뒤 좋은 고춧가루 여섯 되를 섞고, 또 엿기름 한 되, 찹쌀 한 되를 모두 가루로 만들고 진하게 쑤어 빨리 식힌 뒤, 단간장을 적당히 넣는다. 또 좋은 전복 다섯 개를 비스듬히 저미고, 대하(大蝦)와 홍합(紅蛤)을 적당히 넣고 생강을 조각내어 보름 동안 항아리에 넣어 삭힌 뒤, 시원한 곳에 두고 꺼내 먹는다. 내 생각에 꿀을 섞지 않으면 맛이 달지 않을 텐데 이 방법은 실리지 않았으니, 빠진 듯하다.”

 

 

이미지 ⑦ 오늘날 전라북도 순창의 명품 고추장(주영하 사진)

 

1751년 음력 윤5월 18일 아침에 약방의 책임자 도제조 김약로가 57세의 영조에게 “고추장은 요사이도 계속 잡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영조는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매우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약로는 “그것은 조종부 집의 것입니다. 다시 올리라고 할까요?”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영조는 조종부가 “누구의 자식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김약로는 “조언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답했다. 사실 조언신(趙彦臣, 1682~1731)은 탕평책과 달리 당파심을 내세워 영조로부터 미움을 산 인물이다. 그런데 이 맛있는 고추장이 그의 아들 조종부 집의 것이라니! 하지만 영조는 조종부 집의 고추장을 탓하지 않았다. 고추장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순창은 이즈음 고추장으로 이름난 고장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시필이 소개한 고추장과 지금의 순창 고추장이 어떤 연관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숙종과 영조 때의 문헌 중에 순창이 고추장으로 유명하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시필이 말했던 순창은 바로 서울에 살고 있던 ‘순창 조씨’ 조언신의 집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의 문헌에는 고추장을 만초장(蠻椒醬), 초장(椒醬), 고초장(苦椒醬, 古椒醬, 枯椒醬)이라고 적었다. ‘만(蠻)’은 남방의 오랑캐를 뜻한다. 곧 남방에서 전해진 초(椒)로 만든 장(醬)이란 말이다. 고초(苦椒)는 본래 천초·산초처럼 매운 알갱이를 가리켰던 말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대단한 인기를 누린 고추가 이름으로 독차지했다. 품종과 농법이 개량된 1970년대 초반 이전만 해도 고추는 매우 비싼 작물이었다. 고추장에 들어가는 재료 역시 값이 만만치 않았다. “시어머니 죽고 나면 고추장 단지 내 차지”라는 옛말도 귀한 고추장의 매력 때문에 생겼다.

2020년대 이후 고추장은 K푸드의 대표 주자다. 세계의 어떤 음식이라도 소스로 고추장을 넣으면 K푸드라고 내세운다. 영어로 red pepper paste’, ‘chilli paste’ 등으로 불리던 고추장은 2016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gochujang’으로 이름이 올랐다. 《소문사설·식치방》의 고추장 제조법은 요사이의 상품 고추장과 기본은 같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너무나 풍성하다. 고추장도 고급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패스트푸드점의 식탁에도 오르고, 미슐랭급 고급음식점의 주방에도 놓일 수 있다.

 

주영하

음식을 문화와 역사학, 사회과학의 시선 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문화인류학박사)로 현재 한국학중앙연 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다. 2024년 9월 부터 1년간 SOAS 한국학센터 방문학자로 런던에 체류 중이다.

《 음식 인문학: 음식으로 본 한국의 역사와 문화》 (2011), 《 식탁 위의 한국사: 메뉴로 본 20세기 한국 음식문화사》 (2013, 베트 남·일본·태국에서 번역출판), 《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2018, 타이완에서 번역출 판), 《 조선의 미식가들》 (2019), 《 백년식사: 대한제국 서양식 만찬부터 K-푸드까지》 (2020), 《 음식을 공부합니다》 (2021), 《 그림으로 맛보는 조선음식사》 (2022, 중국에서 번역출판), 《 분단 이전 북한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 일제강점기 북한 음식》 (2023), 《 글로벌푸드 한국사》 (2023), 《 국수 : 사 람의 이동이 만들어 낸 오딧세이》(2025)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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