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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7
쿡햄의 부활/ 스탠리 스펜서
The Resurrection, Cookham/ Stanley Spencer
 

 


황홀한 믿음, 눈부신 상상력

 

 

상상력은 때로 우리의 상처를 아프게 도려내는 날카로운 칼날이다. 하지만 우리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유용한 상상력이 날숨처럼 자욱한 곳이 미술이라는 사실은 인간세상 작은 자랑거리의 하나다. 화가들의 상상력은, 젊은 철학가 사르트르가 지적한 것이 사실이라면, 물질적이 아닌 보다 정신적인, 지각과 개념을 연결해 주는 행위이다. 화가들은 자신이 체험한 어마어마한 분량의 지각을 상상력에 삽입하며 쾌락을 꿈꾸는 자들이다. 그들의 완성된 상상력의 몸뚱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세계를 지각하게 해 준다. 20세기 영국 미술의 자랑스러운 수확인 스탠리 스펜서(1891~1959)의 대표작 ‘쿡햄의 부활(1924~27,테이트갤러리)’은 우리에게 상상력의 쾌감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죽음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부활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진취적인 그림이다. 

 

스펜서는 성경의 극적인 부분들을 자신의 고향 마을을 무대로 그리기를 즐겼다. 그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템즈 강변의 작은 마을 쿡햄(cookham)은 스펜서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다. 버크셔에 위치한 쿡햄은 오전에만 역사가 열리는 조그만 기차역을 가진 아름다운 마을이다. 역에서 내려 일 마일 가량 우아하고 정겨운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품위와 옛스러움을 함께 지닌 조그만 하이스트릿에 다다른다. 몇 개의 단단한 펍과 흥미로운 레스토랑들, 우아한 부띠끄 들을 지나고 나면 모퉁이에 ‘스탠리스펜서 갤러리’가 나온다. 스펜서가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다니던 조그만 교회를 개조하여 만든 그의 미술관이다. 몇 년 전 현대식으로 깔끔하게 수리한 내부에는 자화상 몇 점, 첫번째 아내 힐다(Hilda Carline)가 등장하는 인물화 몇 점, 그리고 그가 애타는 마음으로 포착했을 고향 쿡햄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에게 고향인 쿡햄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 시절 그가 즐겨 놀았을 어느 농장의 문을 그는 너무도 신기하게 그려냈다. 쿡햄 다리에서 바라본 강물은 작은 소용돌이를 만지며 너무도 고요하다. 말밤나무, 구름, 해바라기, 어느 것 하나 스펜서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조그맣고 섬세한 마을이다. 미술관의 백미는 이층과 일층의 중간쯤 위치한 그의 또 하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다. 물론 쿡햄이 무대인 예수의 마지막 만찬 모습이다.

 

중세화가 조토(Giotto)를 좋아했던 스펜서가 순수함을 지닌 시골뜨기 화가였음을 나는 그의 두번째 결혼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부인이었던 소박한 힐다를 버리고 그가 선택한 여자는 화려한 화가 패트리샤(Patricia Preece)였다. 패트리샤가 스펜서에게 동거의 대가로 집문서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중요한 건 힐다와 이혼하고 불과 며칠 후 패트리샤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펜서가 그토록 집착하여 사랑했던 여인은 양성애자였다. 너무도 쉽게 그의 두번째 결혼은 끝이 난다. 그가 그린 몇 점의 패트리샤 누드화는 그의 발가벗겨진 비극적 사랑을 너무도 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진하게 고갱 냄새가 난다. 막연한 생의 시작과 끝을 묻는 고갱의 순수한 냄새가 난다.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었던 멕시코 화가)의 냄새도 난다. 잡스러운 나열과 열거를 통한 감성의 폭넓은 유영이 그렇다. 기독교 신자였던 스펜서가 부활의 아름다운 상상을 하고 있는 그림이다. 기독교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의 하나인 부활, 가슴 설레이는 새로운 시작을 그리고 있다. 그가 상상한 부활은 쿡햄의 어느 교회 뒷마당에서 벌어지는 부활이다. 그가 아는 사람들이 갖가지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읽는 사람, 땅속에서 튀어 나오는 사람, 템즈강을 건너 런던에서 쿡햄으로 오는 사람들…… 물론 여러 모습의 스펜서 자신도 있고 이상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 힐다도 보인다. 너무도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그림이다.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것만큼 수많은 상상의 편린들이 숨쉬는 그림이다. 그 상상의 근거는 스펜서가 믿었던 빛나는 부활의 메시지다. 회의와 비관 속에서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스펜서의 믿음, 부활의 황홀한 순간이다.

 

부활이 확실한 꿈이라 하여도 그 구체적 모습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목사도 세계적인 교회도 부활의 믿음까지만 인도할 수 있을 뿐, 개개인의 부활의 장면까지를 그려줄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 부활을 믿는 자라면 그 구체적 모습을 꿈꾸고 상상할 소박한 권리가 있다. 부활을 믿는 미술가라면, 그 구체적 상상을 표현하는 붓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믿음만한 진정성이 어디 있는가. 진정 아름다운 교회가 믿는 자들의 상상력을 인정하고 고양시켜주는 곳이어야 하듯이, 진정 아름다운 믿음이란 부활 같은 커다란 메시지를 열심히 상상하고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스펜서라는 한 소박한 시골뜨기 화가가 보여주는 자신의 현실을 총 동원한 부활에 대한 상상력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예술이 믿음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 하겠는가. 믿음이 예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눈부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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