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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특별석 / 르느와르

hherald 2010.07.17 19:13 조회 수 : 3720

 


여자와 남자에 대한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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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풍만함과 따스함을 지닌 도시다. 풍만함과 따스함은 대부분 인간에서 온다. 장엄한 고층건물이나 웅장한 조형물들이 토해내는 서늘함을 품어줄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의 주인인 인간들의 체온뿐이다. 다양한 인종들의 체온들이 번잡스럽게 움직이는 국제도시 런던의 인간미는 적요한 독일의 도시들이나 궁색한 거짓 예술혼의 도시 파리가 갖지 못하는, 현대의 오묘한 자긍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는 인간들이 만든 역사와 과학이 어우러진 불쾌한 흔적이라는 나의 생각은, 전통을 끌어안는 런던의 풍만함 속에서만큼은 늘 다소곳하다. 런던을 쉽사리 판단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전통이 숨쉬는 그 오묘한 디테일에 있다. 대영박물관이나 타워브릿지가 런던의 자랑거리라고 믿으면 강력히 곤란하다. 런던의 자랑은 풍만하고 따스한 체온들이다. 풍만함과 따스함으로 대변되어온 인상파 화가 르느와르(1841~1919)의 힘도 전통의 끈을 놓치 않았다는 데 있다고 강력히 생각한다. 르느와르의 걸작 ‘특별석(1874)’은 ‘코톨드미술관’의 체감온도에 많은 기여를 하며 걸려 있다.

 

인상파가 서양미술사상 가장 잔인했던 유혈혁명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혁명이 그런 것처럼 완성된 해답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서양미술은 전통의 고정관념을 향해 시쳇말로 ‘개긴’ 화가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 틴토레토나 엘그레코, 카라밧지오, 렘브란트처럼 전통대로 그리지 않으려던 몸부림 말이다. 그 몸부림의 본좌에 위치한 것이 인상파일 뿐이다. 인상파를 능가하는 ‘개김’을 찾아 현대미술은 오늘도 개지랄을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개지랄이란 개성과 지성과 발랄함을 지목한다. 많은 현대의 미술가들이 개성과 발랄함에는 능통하지만 지성에 약하다는 게 필자의 불만이다. 화가의 개성이란 전통을 바라보는 통찰력에서 유래할 것이라고 강력히 짐작하는 바이다.) 인상파가 전통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전통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 전통의 숙지가 비교적 유연했던 화가가 르느와르다. 르느와르는 전통처럼 그리면서 인상파의 순간포착을 시도하려 한 흔적을 보여준 준수한 프랑스 남자의 이름이다.

이 그림은 인상파 첫 전람회에 출품했던 작품답게 인상파의 이론에 충실하게 그려져 있다. 극장의 박스석 즉 특별석의 두 남녀를 그리고 있다. 화가의 초점은 하얀 피부 여인의 얼굴에 온통 맞춰져 있다. 남자를 비롯한 나머지 부분들은 초점 잃은 어리숙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인의 목걸이나 팔찌를 표현한 그의 속도감 넘치는 테크닉에서 그의 전통에 대한 숙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풍만한 여인의 몸매를 감싸고 있는 줄무늬 드레스는 초점 잃은 상태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루벤스가 그린 것처럼 우아하고 능글맞다. 그러나, 대담하면서도 강렬한 눈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 이 충실한 인상파의 그림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두 인물을 통해 미묘하게 드러나고야 마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 때문이다.

 

극장용 쌍안경을 허공에 대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관찰하는 남자의 자세는 뿌옇지만, 대단히 사실적으로 남성의 특성을 집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다른 특별석의 여인들을 살피는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 물이 좋은지…, 맞다. 남자는 들여다 보는 동물이다. 관찰과 관음으로 이루어진 탐구형 인간의 모습이다. 환경을 수시로 확인하고 읽어내야 하는 미래지향적인 관찰자, 어리석은 꼬마병정. 산만한 정찰병. 인류 전쟁의 역사를 주도해온 맹목적 교조주의자들. 반면 여자는 쌍안경을 쓸모 없다는 듯 손에 쥔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자신을 관찰하고 있을 누군가를 의식하고 있는듯한 자세다. 그렇다. 여성은 무엇을 관찰하기보다는 자신이 관찰대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는 집중된 동물이다. 환경을 읽기도 전에 이미 환경 속의 소품으로 변신이 가능한 도자기들, 과거에 집착하는 발레리나. 환경에 무심한 행인. 인류 사랑의 역사를 주도해온 싱거운 전통주의자들.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모한 만큼 강력히 불가능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상파의 그림을 르네상스의 걸작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강력히 어리석은 발상이다. 태생이 틀리기 때문이다. 며칠 전 어느 상냥한 독자님께서 필자의 실력을 과신했는지 대단히 어려운 질문을 하셨다. 런던에 명화가 몇 점이나 있느냐고. 이 그림을 보며 상냥하게 대답하고 싶다. 런던에 있는 모든 그림은 명화다. 심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그린 모든 그림은 명화다. 마치 런던의 모든 체온을 지닌 인간들이 명작인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체온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걸작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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