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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결혼계약(유행에 따른 결혼) / 호가스

hherald 2010.07.17 19:00 조회 수 : 8307


 

탐욕에 대한 끈질긴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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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꽃피웠던 민중미술은 자학적 사실주의라는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거대한 독재라는 고대광실 담벼락에 하는 수줍은 낙서 같은 것, 물론 충분히 가치 있는 수줍음이었다. 이를테면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시집을 장식하였던 오윤의 판화 같은 것들은 예술의 느려터진 파장과 대결한 아름다운 씨앗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보다 빨리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는 심정의 미술. 독일의 여류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1867~1945)식 자연주의의 표현이었으며, 힘과 악을 고발하였던 위대한 고야(Francisco Goya, 1746~1828)의 정신에서 갈래 지어진 미술의 방식이었던 같다. 하지만 민중미술이란 반드시 심각해야만 하는 것일까. 좀 더 자신에게 관대할 수는 없을까. 웃음과 통쾌함으로 조촐하지만 즐거운 밥상을 차릴 수는 없을까.

 

웃음과 조롱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그림을 자신보다 우월한 힘을 향해 투척한 화가 중 단연 돋보이는 선구자는 영국미술의 아버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다. 그는 참을성이 강하고, 남의 자유를 인내하는 데 숙달된 영국인이었다. 혁명보다는 로버트태권브이식의 변신보다는 하루에 한잔씩 마시는 홍차처럼 유구하고 느려터진 변화를 추구하는 답답한 나라 영국 말이다. 그의 비판적 연작화 중 가장 유명하고 통쾌한 그림은 아마도 내셔널갤러리에 걸린 이 여섯 점의 연작일 것이다.

 

“유행에 따른 결혼(1743~1745)”은 ‘결혼계약’, ‘결혼직후’, ‘돌팔이 의사를 찾아감’, ‘백작부인의 아침접견’, ‘살해되는 백작’, ‘백작부인의 자살’, 이렇게 여섯 점으로 이루어진 연작이다. 당시 상류층들의 생활상과 금전만능 풍조의 결혼상을 풍자하고 있는 그림이다.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돈이 간절히 필요한 어느 귀족이 철부지 아들을 어느 신흥 졸부의 딸과 뜬금없이 결혼시킨다.(결혼계약) 두 젊은 남녀는 부모의 이해에 얽혀 결혼하였으나 결혼생활은 이내 엉망이 되고 만다. 새신랑은 밤새 룸싸롱에서 보내다가 기어 들어 오고 새신부는 밤새 클럽을 헤매이기 일쑤다. 집사는 쌓이는 청구서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된다.(결혼직후) 신랑은 어느 날 돌팔이 의사를 은밀히 방문한다. 어린 정부의 성병을 치료해주려는 것이다.(돌팔이 의사를 찾아감’) 드디어 신부는 법률고문과 불륜에 빠진다. 일명 옥소리식 맞바람이다.(백작부인의 아침 접견) 신부는 법률고문과 러브호텔에 투숙하게 되고 낌새를 챈 신랑은 급습한다. 내연남은 신랑을 죽이고 도주한다.(살해되는 백작) 내연남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신부는 자살한다. 재산을 탕진하고 몰라 보게 초라해진 신부의 아빠가 딸의 손에서 결혼반지를 빼낸다. 잘못된 결혼은 허무하게 끝난다.(백작부인의 자살)

위의 그림은 1편에 해당하는 ‘결혼계약’이다. 맨 왼쪽에서 흡사 미스터빈 같은 철없는 자세로 거울을 보는 놈이 귀족의 아들이다. 황금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들만큼 유려한 솜씨로 표현된 실감나는 표정묘사다. 유쾌한 조롱의 필력이다. 그 옆이 졸부의 딸과 법률고문이다. 두 사람 사이의 야릇한 감정을 긴장과 부드러움을 함께 섞어 그리고 있다. 통쾌한 은유의 필력이다. 그 옆은 졸부다. 계약서를 꼼꼼히 따지는 그의 모습, 졸부다운 단순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꽉찬 직유의 필력이다. 그 옆은 중개인들일 것이고 맨 오른쪽이 몸이 불편한듯한 귀족 아버지다. 다급한 마음을 숨기고 여유로 가장한 그의 가식적 표정은 이 그림의 압권에 해당한다. 통쾌한 환유의 필력이다. 그는 자신의 족보를 펼치고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들은 모두다 무슨 이유를 하나씩 지니고 걸린 듯 견고하다. 이 연작의 실내장식들은 호가스의 예리한 통찰력과 솜씨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만큼이다. 서로 관심 없는 두 마리 강아지는 이 결혼의 어리석음에 대한 복선처럼 맥 빠진 채 늘어져 있다.

 

호가스는 로코코의 곡선미를 정상으로 끌어올린, 대단한 필력을 지닌 화가였다. 그는 자신을 비롯한 영국화가들을 외면하고 이태리 화가들의 그림을 고가에 사들였던 귀족들에게 이런 풍자화로 뚜렷이 답하였다. 천박한 그들의 문화취향과, 돈이면 무엇이든 될 것이라는 아둔한 자가당착과, 이 한 몸 잘 살면 만사 오케이라는 더러운 이기심과, 바람 피워야 성이 차는 추잡한 성욕과, 맞바람 피워야 직성이 풀리는 불쌍한 암내를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모든 소품과 장식과 인테리어까지도 철저히 이용해 탐욕에 대하여 관찰적 시점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비웃음과 조롱을 적당한 객관 속에 실어 당시 유행이었다는 귀족들의 결혼풍습에 대해 풍자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것은 너무도 완벽한 코메디였다. 영국처럼 코메디가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풍자가 없는 코메디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상에 대한 관찰과 연민이 모든 웃음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실수와 웃음 다음에 생겨나는 것은 경험과 도덕이다. 이 그림의 도덕에 대한 심각한 반응은 세상을 정제하는 예술의 건전성과 맥 닿아 있다. 오늘날의 예술은 과연 무얼 하고 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가끔 메일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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