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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네 / 프라고나르

hherald 2010.07.17 18:51 조회 수 : 10353

 

신성한 어리석음의 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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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닿지 못할 경지에 존재하는듯한 사랑. 사랑에는 종류도 많다. 그 많은 사랑의 종류를 다 경험해보지 못하였지만 별로 억울하거나 섭섭하지 않다. 사랑도 인간의 일이어서 그 형식보다 내용과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진지하고 늘 열정적인, 알찬 내용으로 충만한 사랑을 한번이라도 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지,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사랑의 유혹이 존재한다. 살짝 불만이다.

프랑스 귀족들의 취향과 안목에서 유래한 로코코라는 사조는 회화사에 있어서는 ‘사랑에 대한 탐구’라는 전거로 존재한다. 때로는 심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익살맞거나 코믹하기도 하고 때로는 황당하기도한 사랑에의 무자비한 탐구, 나는 그런 것들을 로코코라고 부르고 싶다. 조개껍데기처럼, 단단하지만 지극히 깊고 섬세한 무늬를 간직한, 세상의 모든 사랑이라는 ‘신성한 어리석음’들 말이다. 프랑스혁명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자유에의 배경 같은 미술. 와토라는 화가에서 비롯된 그러한 우아하고 섬세한 사랑에의 추구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반드시 연약하고 쾌락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로코코의 풍자정신은 영국으로 건너와 반귀족적 풍자를 일삼은 자랑스러운 승리의 미술, 민중미술이 되었으니 말이다.

로코코양식의 걸작인 프라고나르(1732~1806)의 “그네(1767)”는 런던 ‘월리스콜렉션’에 걸려 있다. 사랑에 대해 일종의 병적인 난시(亂視)로 그려진 듯한 유쾌하면서도 불쾌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추하고, 밝으면서도 어두침침한, 아리송한 그림이다. 그네를 타는 한 아름다운 귀부인을 중심으로 ‘신성한 어리석음’들이 모여서 지지고 볶고 있다. 그네를 미는 귀부인의 늙은 영감은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호혜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젊은 미를 취한만큼 적당한 의무는 타당하다는 불만 없는 표정이다. 오랫동안 밀고 있는지 그는 아예 의자에 앉아 있다. 젊은 부인을 향한 그의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주인공 귀부인은 한껏 들뜨고 연출된 기쁨의 표정으로 그네를 타고 있다. 그녀는 왼발을 들어 올려 신발을 벗어 던짐으로써 변화에의 응집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코딱지 언니 만한 신발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기 위해 작고도 작게 표현되었다. 그녀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시퍼렇게 살아서 역사하는 남편에게 등을 돌린 채 이상야릇한 감정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벗어 던진 그녀의 신발이 처녀성상실을 의미한다는 해석들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이 육체만이 아닌 정신적 처녀성을 의미한다면 더더욱 동의하지 못하겠다. 순결이란 보다 순결한 무엇이라고 믿기라도 하고 싶다. (당신은 순결을 언제 벗어 던졌나, 혹은 아직도 순결하다고 믿고 계시는지.) 그냥 사랑의 유혹에 빠져들어 스스로 유혹 속에 들어가 유혹을 유혹하고 있을 뿐이다. 유혹에 빠진 그녀의 들뜬 동작들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꽃나무 위에 자빠진 채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있는 젊은 남자의 홍조 띤 얼굴은 이 그림의 클라이맥스와 연결되고 있다. 절정, 그러니까 기대와 흥분이 폭발직전인 상태, 혈압이 친구들보다 높아지고 맥박이 동네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뛰는 상태 말이다. 모자를 든 왼팔을 내밀어 무언가를 가리고 있는 듯하다. 그의 혈압과 맥박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지. 그는 과연 무엇을 가리고 있을까. 혹자가 왼팔을 남자의 성기를 의미한다고 무지막지하게 추정한 데는 물론 잔인한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당시 귀족 여인들은 치마 속에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마이굳네스으악.

왼쪽의 큐피드상은 손가락을 입술에 댄 채 비밀을 지키겠다는 동작으로 둥그렇게 몸을 굽힌 채 서 있다. 신비롭고 몽환적으로 표현된 나무들도 물론 비밀을 지켜내겠다는 자세로 휘어져 있다. 둥그런 귀를 지닌 충직한 영감의 개만이 두 남녀의 불륜을 고발하듯 짖어대고 있다. 곡선의 미는 아름다움과 비밀스러움이 공존하는 곳에 존재한다. 직선이 시간이요 역사라면, 곡선은 휴식이요 추억이다. 곡선은 늘 인간들의 은밀한 유희를 감싸 안고 존재한다. 이 화려한 색감과 우아한 곡선의 그림은 삶의 윤택함을 지닌 상류층들의 은밀한 비밀 하나를 감싸 안고 존재한다. 그러나 그 비밀은 화가가 지켜내기에는 짐짓 너무도 버거운 비밀이던 모양이다. 프라고나르는 여인의 신발을 벗김으로써 이 아름답지만 불쾌한 유희, 사랑이라는 ‘신성한 어리석음’의 변종에게 작은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세상에는 조금 못한 모양이어도 맛과 영양이 넘치는 버섯이 있다. 세상에는 아름답지만 먹으면 즉사하는 독버섯도 있다. ‘새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어떤 버섯일지를 반드시 먹기 전에 알아야 하기에, 우리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학교도 다니고 시장에도 간다. 사랑은 무서운 것이다. 인간들이 간직한 ‘신성한 어리석음’의 그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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