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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비너스와 마르스 | 산드로 보티첼리

hherald 2010.07.17 18:28 조회 수 : 15626

 

사랑이라는 명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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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사랑의 힘이 지닌 강도도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것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으로만 채워지기에 세상은 너무 멀리 왔지 싶다. 해서 사랑도 생로병사를 지니고 불만과 원한을 가진 사람처럼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접수한 사랑이 어느 틈엔가 사람을 쏙 빼닮아버린 것이다. 사랑도 골프를 치고 사랑도 명품 가방을 들고 사랑도 성형외과를 들락거린다. 명품아울렛이라면 자다가도 슬그머니 일어난다. 사랑의 위대한 힘은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하는 태초의 물처럼 포근하지만 아련한 기억의 끝이 되어버렸다. 슬프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1874년 비교적 헐값에 내셔널갤러리로 팔려온 보티첼리(1445~1510)의 대표작  "비너스와 마르스(1485)"는 사랑에 대한 사색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소중한 그림 이다. 어느 귀족집을 장식하기 위하여 혹은 어느 귀족 커플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을 보면 먼저 눈을 의심케하는 그 선명함에 놀라게 된다. 애그템페라(Egg tempera)나 콰트로첸토(15세기)의 그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질감을 지니고 있다.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인 보티첼리는 미의 드러냄을 위하여 때로 정확함을 포기할 줄 알았다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화가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일러스트나 만화에 가까워보이는 그의 대표작들은 성경이나 신화를 우아한 윤곽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피렌체 우피치에서 그의 최고 걸작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비너스의 근영(近影)같은 이 그림 앞에서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신 '비너스(새신부라고 불러도 좋을 것같다.)'가 금테 둘러진 순백의 나이트가운을 입고 풀밭 침대에 기대고 누워, 곤하게 잠든 전쟁의 신 '마르스(역시 새신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다분히 잠든 파트너를 지나 더 원경을 향하고 있는듯 하다. 곁눈질로 보는 것이다.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 펼쳐질 결혼 생활에 대한 걱정이라도 미리 하고 있는 걸까. 오, 이 철없는 남자를 어찌 데리고 사나?, 그런 고심이 내재된 표정일까. 벌거벗은 마르스는 어젯밤 격전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는듯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모든 것(?)을 이루어낸 남자들 특유의 포만감과 피로감이 역력하다. 그는 마치 모든 결혼생활을 다 겪은 사람처럼 널브러져 있다. 우, 나는 해냈어!, 그런 마음으로 코까지 고는 것일까. 어린 사티로스들은 장난스럽게 마르스의 투구와 무기들을 가지고 놀고 있다. 한 놈은 볼을 불려 마르스에게 모닝콜을 보내고 있다. 그 옆놈이 비너스 눈치를 살피는 걸로 봐서 그녀가 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반수반인 사티로스는 원래 주색을 탐하는 숲의 신이다.) 사티로스들은 이 그림의 유머를 잊지 않도록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비너스의 고운 손등과 발등은 우아함을 잃지 않기 위하여 약간 힘이 들어가 있다. 꼿꼿함을 잃지 않는 새신부의 자세다. 반면 마르스의 손가락들은 꿈속에서도 뭔가를 하고 있는듯 하다. 그의 보이지 않는 오른 발은 꿈 속에서도 비너스를 터치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비너스 옷자락의 표현들은 르네상스의 도래를 암시하듯 섬세하다. 비너스의 긴 목과 쳐진 어깨는 이 소품의 그녀가 '비너스의 탄생' 속에서 보티첼리에 의해 탄생된 바로 그녀임을 한눈에 알아보게 해준다. 마르스의 갑옷을 입고 엎드린 우측 하단부의 사티로스는 이 그림의 주제와 무게의 중심을 온전히 잡아주고 있다. 

 

전쟁의 신이 사랑의 신에게 심각함 헛점을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다. 전쟁이란 사랑에게 버림받은 자들의 놀음이라는 인류불변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그림이다. 인류는 역시 사랑이 지배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요원한 희망사항같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인류는 늘 사랑이 지배해 왔다는 자부심에 고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열쇠를 여자가 쥐고 있다는 깨달음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여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말이다. 비록 나는 곤하게 잠드는 철없는 남자지만 여자의 꼿꼿함과 집중력을 존경한다. 그 체현(體現)된 사랑의 몸매와 성품을 사랑한다. 인류 미래의 열쇠는 이 그림대로라면 분명 여자들이 칠십프로쯤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철없는 남자들의 우의(寓意)와 상실을 바로잡아줄 힘을 지니신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비밀을 비교적 잘 인지하고 있는 나라가 신사의 나라, 영국이다.

 

현대의 여성들이여, 자부심을 가지시압! 그리고 그 현명한 자부심으로 제발 이 세상을 향기나게 해 주소서. 피곤하게 잠든 남편을 의시(疑視)하는 저 꼿꼿한 성품을 부디 유지하소서. 남자들은 저 철없이 잠든 마르스같은 벌거숭이들이오니, 남편들이 저질로 논다고 똑같이 그러시지 마시지 마시옵고 제발 우아한 발등과 손등의 자세를 보존하소서. 자식들에게는 유학도 좋고 학과공부도 좋지만 이 험한 문화전쟁터인 이십일세기를 통찰하사 부디 문화를 미친듯이 가르쳐 주옵소서. 그리하여 여성이란 지고의 명품임을, 어떤 명품도 기죽고 돌아가는 사랑이라는 최고의 명품임을 증명해 주소서. 너무도 멀리온 이 세상, 그래도 사랑을 믿습니다. 모든 여자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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