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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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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한 구름 아저씨

 

영국미술의 자랑스러운 경험은 윌리엄호가스라는 선구자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영국화가들이 인류미술의 진로에 뚜렷한 간섭을 하게 되는 것은 십 구세기 두 명의 위대한 낭만파 화가에서부터다. 물론 터너와 콘스터블이다. 비틀스와 롤링스톤스 같은 라이벌 아닌 라이벌 구도의 대명사인 두 풍경화가는 인상파라는 잔인한 혁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자랑스러운 영국인들이다. 터너가 그 방대한 낭만적 환상으로 인하여 역사상 최고의 영국화가라고 평가 받는다면, 콘스터블은 국제적 영향력으로(특히 프랑스) 후배 화가들에게 모범적이고 놀라운 하나의 길을 예시한 선구적인 화가다. 영국인다운 진지함과 성실성을 보여준 콘스터블(1776~1831)을 폭넓게 느끼기에는 ‘테이트브리튼’이 더없이 훌륭한 교실이지만 오늘은 ‘내셔널갤러리’에 보관된 “건초마차(1821)”를 걸었다. 런던을 대표하는 그림 한 점으로 손색없는 걸작이다.           

 

이발사의 아들이었던 터너와는 달리 콘스터블은 서포크 대지주의 아들이었다. 파리 살롱 금상수상작인 이 풍경화는 아버지 농장의 풍경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에 보이는 커티지는 그림 덕에 엄청 유명해진 소작농 윌리롯의 집이다. 물레방아는 콘스터블의 아버지 소유일까, 건초를 실은 마차가 물을 건너고 있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영국의 시골풍경이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본 프랑스의 들라크로아는 감동에 겨워 자기 그림을 수정하기까지 하였다고 전해진다. 영국인들은 터너의 그림과 더불어 이 풍경을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국 그림으로 부르는데 익숙하다. 과연 무슨 매력이 이 그림을 그런 높은 평판 위에 올려 놓는 것일까. 궁금증을 위하여, 부족한 지면이지만 미술사를 촌각만 살피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미술의 풍경화라는 개념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확립되었다. 그 이전에도 이탈리아나 독일 등에서 풍경화 비슷한 것이 그려졌으나 순수하게 독립적인 풍경을 미술의 장르로 인정한 것은 미술사의 주역 네덜란드의 업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풍경화는 제단화처럼 품위를 갖추었다거나 초상화처럼 화가의 필력을 가늠하는 텍스트가 되는 고급스런 장르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 이발소의 벌건 의자에 앉아 파리소리에 오감을 집중시켜 본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벽에 정답게 걸려 있던 물레방아 도는 풍경화, 물감을 아낀듯한 그 소박한 그림, 딱 그런 장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풍경을 진지하게 화가의 탐구 대상으로 인정한 역사는 생각보다 짧은 셈이다. 자연을 보이는 그대로 순수하게 그려보겠다는 화가들의 각오가 다져진 역사는 더욱 짧다. 그것은 멈춰진 자연이란 없다는 위대한 우주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며 시간이라는 절대권력 앞에 순응하는 환경일 뿐이다. 풍경화가들의 거대한 적은 늘 움직이는 시간이라는 우주의 권력이었다. 풀은 바람 속에 눕고 서기를 반복하고, 나뭇가지도 흔들리고, 물도 흐르고, 무엇보다 구름은 쉼 없이 어디론가 떠나간다.

 

이 움직임들을 어떻게 잡아 화폭에 가둘 수 있을까. 아마도 이 고민은 풍경화가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콘스터블의 유명한 말, “there is room enough for a natural painture”는 그러한 고민에 대한 한 젊은 화가의 전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콘스터블은 자연을 자연답게 그리지 못한 선배화가들의 오류가 시간에 대한 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던 것 같다. 어차피 시간에 따라 변하는 풍경이니 나름대로 가정해서 그려도 안될 것 없지 않은가, 라는 궁색한 자기 합리화. 오늘도 세상에서 많이 들리는 대사, “남들도 다 그러는걸 나만 올바로 한다고 뭐 세상이 달라지겠어?”. 이 뻔한 비상식은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고도 서푼 짜리 회개 한마디로 자유로워지는 몰상식을 곧잘 상식으로 둔갑시킨다. 콘스터블은 그 뻔한 상식의 틈새에서 화가의 성실성을 찾아내었다. 당연한 듯 모두가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용기, 그 작은 정의의 실천은 얼마나 심오한 몸부림이어야 하는가. 

 

자연의 색감을 그대로 화폭으로 가져 오기 위하여 그는 때로 자신이 배운 색채에 대한 관념을 지워버려야 했으며, 시간과 싸우기 위하여 늘 급한 스케치에 몰두해야만 했다. 거장 루벤스의 넘치는 갈색과 비교되는 콘스터블의 넘치는 녹색이나, 현대인들에게 보다 큰 공감을 주는 그의 뛰어난 스케치들은 그러한 치열함의 산물들이다. 무엇보다 콘스터블의 그림을 빛내주는 것은 구름이다. 그의 구름은 터너 외에는 어느 화가도 견줄 수 없는 대자연의 역동성의 포획이다. 그는 구름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위하여, 군데 군데 반짝이며 흐르는 물을 그려내기 위하여 때로 미술사의 전통이론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집념으로 그는 표면상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대단한 치열함으로 미술사를 거부한 속내를 지닌 ‘눈의 그림’을 선사하였던 것이다. 본대로 그린 우직한 그림, 본대로 그린 우아한 그림. 콘스터블의 위대함을 느끼는 방법으로 그의 그림 속 유유히 흘러 다니는 구름을 하루종일 바라보기를 권한다. 약간 우직해지는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직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콘스터블이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초유의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어디론가 아련히 흘러가는 구름들을 낭만적으로 품어낸 인류 최초의 ‘구름 아저씨’라는 것을. 우직한 구름 아저씨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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