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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대사들/ 한스 홀바인

hherald 2010.08.02 16:06 조회 수 : 21190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8
대사들/ 한스 홀바인
Jean de Dinteville and Georges de Selve(The Ambassadors)/ Hans Holbein
 

죽음에 대한 한 연구그림으로-p41.jpg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각과 추측은 세상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 뿐, 정작 세상은 우리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지닌 것 같지도 않다. 런던에서 사는 일은, 그렇게 쓸쓸하고 복잡한 인생을 이상한 렌즈에 투영시켜 왜곡시키는 일이다. 외로움이나 우수 같은 허영 넘치는 단어들을 조용히 접어 빨간 우체통에 넣는 일이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미술관이다. 그 중에서도 공짜인 런던 미술관들은 특히 그렇다. 회신 없는 외로움의 행방을 묻는 일 만큼 쓸쓸한 일은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그림과 오랫동안 싸워보는 일이다. 영국 미술의 위대한 스승인 독일 르네상스 최후의 대가 한스 홀바인(1498~1543), 그의 문제작 ‘대사들(1533)’과의 싸움은 언제나 버겁다. 그것은 그림이 왜 예술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예술이 왜 그림인지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운명을 환기시키듯이.

헨리 8세의 궁정화가를 지낸 한스 홀바인의 이 이상한 초상화는 미술 역사상 가장 미스터릭한 그림 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의 외교관 장 드 딩트빌과 그의 친구 조르주 드 셀브를 그리고 있는데, 두 인물의 사이를 비정상적으로 띄워 놓고 그 사이에 많은 정물들을 어지럽게 묘사하고 있다. 펼쳐진 찬송가, 줄 끊어진 악기, 지구의, 해시계, 천문학 기구들……그것들은 부티가 좔좔 흐르는 두 인물의 폭넓은 과학적, 종교적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값비싼 터키산 카펫과 고급 커튼은 네덜란드 화가들 못지 않은 홀바인의 묘사력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 끝에서 반쯤 모습을 드러낸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은 이 초상화가 추구하는 미스터리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 하다. 왜 이런 복잡한 장치들이 필요했을까. 주문자인 딩트빌 대사의 간곡한 요구였을까. 아니면 홀바인이 심사숙고 하여 구상해낸 교묘한 연출이었을까. 그런 궁금증은 그림의 아래 중앙을 가로지르는 타원형의 기이한 형상을 확인하고 나면 갑자기 맥이 빠져버린다. 그것은 물론 해골이다. 그 유명한 죽음의 상징이다. 오랫동안 유럽에 존재해온 생각 ‘메멘토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경구다. 로마시대의 군인들에서 유래했다는 이 죽음에 대한 상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 ‘바니타스(vanitas)’라고 볼 수도 있다. 무상(無常)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니디아(anitya)’와 유사한 서양의 개념이다. 우리 모두는 죽는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 한스홀바인은 그 상징인 해골을 길게 잡아 늘려 그리고 있다. 가장 유명한 ‘왜상(歪像)원근법(Anamorphic Perspective)’의 그림이다. 왜상원근법이란 뒤틀린 모습으로 그리지만 특정한 위치나 각도에서 보면 그림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그리는 것을 말한다. 이 기이하게 뒤틀린 해골은 그림의 우측 하단 어느 위치에서 보면 온전한 해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궁정화가를 지내며 영국 미술의 위대한 선생 역할을 했던 한스 홀바인은 독일 르네상스의 날카로움과 네덜란드 르네상스의 부드러움을 모두 품은 화가였다. 그는 영국 역사의 중요한 자료인 튜더 왕조의 인물들을 기품있게 그려 남김으로써 영국 역사 고증에 실질적인 기여를 많이 한 화가다. 독일 초상화의 전통을 영국에 전수한 화가인 셈이다. 그러나 이 ‘대사들’은 그의 다른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다. 무언가 심각한 의도를 내포한 듯한 신비스럽고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마치 네덜란드의 정물화와 독일 초상화가 병치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세부의 대상들은 그 의도를 짐작하고 싶게 할 만큼 교묘하다. 수많은 해석과 추측과 억측을 가능하게 한 그림이다. 그 억측들은 당시의 종교, 철학, 정치적 측면을 포함한 억측들이었다. 그 수많은 억측들에 자신만의 억측 하나를 추가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림을 보는 이유다. 홀바인 화백에게 보내는 수줍은 나의 억측은 대충 이렇다.

복잡한 세상은 인간들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들은 모자이크된 화려한 바닥 위에 서있다. 자신이 축적한 부와 명예로 온몸을 감싸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인간의 허탈함을 상쇄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은 그 허탈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한한 언어를 위해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이라는 언어로 지저귄다.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잊기 위해 종교적 신비를 체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비밀을 이해하려 과학적 탐구를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인간이란 지구와 우주의 광활한 비밀 앞에서 늘 목마른 존재이다. 인간의 시간이란 더 깊은 시간의 비밀을 알 때까지 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시간의 비밀은 죽음이 쥐고 있다.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연구는 늘 왜곡되고 일그러진 것일 뿐이다. 인간들은 장막 앞에 서 있다. 그 장막 뒤에는 이 세상의 비밀을 아는, 반쯤만 보이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이상한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런던에서 이방인으로 잿빛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무량 힘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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