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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6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놀라움!)/ 앙리 루소
Tiger in a Tropical Storm (Surprised!)/ Henry Rousse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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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색한 망상의 승리

우리는 명상한다. 명상은 철학, 예술처럼 거창한 탈속적 단어로 생각되기 쉽지만, 우리 모두는 때때로 명상하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들다. 명상이 도지면 몽상이 된다.

몽상은 증상에 따라 망상에 이르기도 한다. 망상은 ‘이치에 어긋난 헛된 생각’을 가리키는 단어다. 부정적 의미로 함축된 망상이라는 단어의 경계는 언어의 불확실성을 친절히 보여주고 있다.

망상은 과연 불필요한 병적인 단어일까. 이치에 어긋난 생각은 과연 병일까.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에서 탄생한 인류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망상은 인류에게 꼭 필요하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망상은 정의하기 힘든, 참으로 오묘한 꿈인 것이다.

망상의 위대한 승리를 보여준 화가는 단연 앙리 루소(1844~1910)다. 후기 인상파로 분류되는 프랑스인 루소의 ‘놀라움(1891)’은 세계최고의 종합미술관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출구를 장식하는 중요한 그림의 하나다.

 

루소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소의 생에 대한 관찰이 아주 조금 필요하다.

돈키호테 같은 그의 그림들이 탄생한 망상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루소는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하였다.

그는 통행료를 징수하는, 지금으로 말하면 말단 공무원이었다.

이십 대 중반 십대 어린 신부와 결혼하여 일곱 남매를 낳지만 그 중 다섯이 사망한다. 어린 아내도 삼십 대에 사망하고 그는 홀아비가 된다. 그러나 예술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그는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예술을 취미로 즐긴다.

작곡도 하고 연주도 하고 시나 희곡도 쓰고,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독학으로 완성된 그의 화풍은 세상이 비웃을만한 ‘망상’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화풍이 완성되었다고 믿었는지 사십 대 후반의 나이로 전업작가의 길로 나선다. 그의 그림은 당시의 미술교육이 가르치던 모든 것을 무시한 독보적인(?) 아마츄어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열광적으로 알아봐준 몇 명의 망상가들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온다.

루소보다 훨씬 어리지만 일찌감치 명성을 누렸던 천재화가 피카소도 그 중의 하나였다.

피카소의 격찬에 고무된 그는 미술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 세상 최고의 미술이었던 자신의 그림을 계속해서 세상에 던진다.

 그는 죽기 일 년 전 처음으로 개인전을 여는 감격을 맛보지만 예순 여섯에 사망한다. 어느 미망인을 열렬히 사모하던 늙은 화가가 비를 너무 많이 맞아 폐렴으로 사망하였다는 그다운 죽음의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는 ‘원시주의(Primitive)’와 ‘소박파(Naive)’의 선구자로 이십 세기 미술을 여는 하나의 유쾌한 전설이 되었다.  

 

 

이 그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소재 ‘밀림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군복무 시절 경험한 멕시코를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는 결코 프랑스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밝혀져 있다. 그에 대한 일화는 이렇게 어이없는 것이 많다.

그의 유명한 별명이었던 ‘세관 루소’(Customs Officer)도 그렇다. 그는 한번도 세관의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는 제롬(Gerome)과 클레멘트(Clement)라는 화가들에게서 배웠다고 말하였으나, 루소의 그림에서 그들의 아카데믹한 화풍과 아무런 연계성도 찾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이 밀림의 호랑이 한 마리가 사냥꾼들을 쫓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하였지만,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는 그대로 폭풍우에 놀란 호랑이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의 밀림 시리즈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정밀 분석한 미국의 어느   식물학자는 어느 하나도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종은 없다고 결론 내린바 있다.

루소는 식물도감이나 식물원에서 관찰한 것들을 상상에 의해서 그린 듯 하다. 마치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는 어린이가 정성껏 그린 것 같은 그림이다.

가느다랗고 긴 어색한 꼬리를 가진 호랑이는 어색하게 숲 속에서 놀라고 있다. 색감은 하단이 더 밝고 상단이 더 어두워 일반적 색채 원근법의 차원에서 보면 어색하다.

어색하게 표현된 뇌우, 공간감각을 상실한 채 흔들리는 다양한 식물들의 어색한 잎사귀들.

 

 

 

루소의 어색한 그림들은 그러나 아카데믹한 그림에 진력난 이들에게 일종의 폭발적 쾌감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그 어떤 형식이나 제약에서도 자유로운, 거리낌 없는 붓질의 통쾌함 같은 것이 호랑이의 굽은 등줄기를 타고 보는 이의 등줄기로 전이되는 카타르시스! 그 카타르시스는 작가인 루소가 겨냥했던 하지 않았던, 놀라운 감동을 감상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치 이 복잡한 도시 런던은 밀림이고, 그 안에서 루소의 그림을 훔쳐보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잔뜩 놀란 한 마리 짐승이라는 깨달음, 그 일종의 놀라움…… 그 놀라움은 우리를 잠깐이나마 진득한 명상에 빠지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명상은 그 밤, 헐거운 몽상이 되어 차가운 밤거리를 배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잠 못 이루는 그 밤, 그 몽상은 망상이라는 빨간 선을 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우리의 그 망상은 한번도 밀림을 가보지 못했던 화가, 스스로 미술을 터득해야 했던 외로운 화가, 자신의 그림을 최고라고 믿었던 초라한 화가 루소가 선물한 승리의 망상이다.

승리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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