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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무아트시에 부인 / 앵그르

hherald 2010.07.17 19:38 조회 수 : 2605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2
무아트시에 부인/ 앵그르
Madam Moitessier/ Jean-Auguste Ingres

 

 

 

바램과 바람의 미이라

 

미술관은 그림들의 공동묘지다. 그러나 그림의 죽음이란 인간의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그림은 죽음으로 다시 한번 살아난다. 화가를 떠나 감상자를 만나는 것은 곧 그림의 죽음이자 환생을 의미한다. 미술관은 그래서 그림들의 무덤이자 요람인 것이다. 육신의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유구한 바램의 열정은 런던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미이라들이 역설하고 있다. 기억을 지워도 좋다는 의미로 뇌를 꺼내고, 영혼의 한 시대를 불태웠던 내장을 버리고, 오로지 심장만을 남겨놓은 이집트 미이라 말이다. 이집트 미이라가 진정 끔찍한 것은 허접스러운 우아한 포장지인 아마포, 붕대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아직도 팔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심장 때문이다. 영혼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심장 아니던가. 심장이 팔딱거리는 미술관의 초상화들은 그래서, 잔인한, 인생의 교본들인 것이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초상화 중에서 심장의 팔딱거림이 아직도 느껴지는 그림으로 프랑스 고전주의의 거장 앵그르(1780~1867)의 걸작 미이라 ‘무아트시에 부인(1856)’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에서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백오십 년 전의 어느 귀부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심장은 장난이 허용되지 않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다. 맹랑한 인간의 과학은 심장수술까지도 능란히 수행하는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심장은 원래 꾸준하고 반복적이어야 하는 생명의 상징이다. 성형이나 장식, 멋 냄 보다는 순수한 본질의 규칙과 가장 가까운 묵묵하고 속절없는 기관이다. 그 심장의 박동이 들리려면 가장 인간다워야 하고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 귀부인의 초상화는 현대미술의 시각으로 본다면 애증이 교차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림 한 점이다. 물론 여기서의 자연스러움이란 그리스 조각에서 유래한 신체의 우아함을 말하는 것이다. 앵그르는 현대미술의 화두로 등장하게 되는 ‘본질’이라는 문제를 그저 심장의 박동처럼 우아한 규칙으로 생각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당시 새로운 유럽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를 지배하였던 두 가지 트랜드 낭만과 고전 사이에서 활동하였던 대단한 소묘실력의 화가였다. 그의 안정감 넘치는 소묘실력은 그림의 모든 요소들을 포용하고도 남아 보인다. 마치 문장력이 모든 소설의 기본이듯이 말이다. 필자의 어설픈 판단으로는 여인의 누드에 관한 한 앵그르의 그림들이 가장 그럴듯하다. 물론 주제나 스토리를 배제한 단순한 문장력, 즉 소묘실력 만을 가지고 보았을 때를 말함은 물론이다.

한 재력가(은행가)와 재혼한 젊은 부인의 초상화다. 이 그림을 따라다니는 가장 유명한 전설은 이런 것이다. 앵그르는 역사화보다 상대적으로 저급의 예술로 평가 받던 초상화 그리는 것이 내키지 않았으나 모델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그리려는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 부인의 어린 딸을 함께 그려 넣으려고 하였다가 계획을 수정하였다는 것, 1844년 시작했으나 완성된 것은 앵그르의 나이 칠 십 육 세 였던 1856년이라는 것, 아내의 사망 이후 한 동안 붓을 잡지 못했던 앵그르의 사정과 모델 무아트시에부인의 개인적 사정(임신, 부친상 등)이 겹쳐 한동안 중단되었다는 것, 그러나 앵그르는 1851년 무아트시에 부인의 서있는 초상화 한 점을 그려냈다는 것, 모델의 오른 손을 얼굴에 척 댄 자세는 로마시대의 벽화에서 차용했다는 것, 등이다. 이 그림은 먼저 마치 앵그르의 소묘실력을 보려 주기라도 하려는 듯 착 가라 앉은 색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거울을 이용해 부인의 머리띠와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을 진짜 천연 미이라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은 색감보다 형태를 중요시한 앵그르의 치열하고 집요한 소묘실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의 눈에는 마치 로라애슐리(Laura Ashley)의 커튼을 뜯어 디자인 한 것처럼 보일 부인의 옷, 필자의 부인이 딱 좋아할 스타일의 팔찌, 왼손에서 곧 떨어뜨릴 것만 같은 쥘부채, 물 건너 온 것 같은 도자기, 모두 단단하고 정확한 그 형태들이 색깔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다. 루벤스나 램브란트가 색과 형태를 한꺼번에 움직이게 그렸던 걸 생각해 본다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앵그르의 고전주의적 기법이 인상깊게 느껴지는 초상화다.

 

미이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인간의 욕망이 가미된 가공의 미이라들, 대영박물관의 ‘남자무용수의 미이라’처럼 그 처절한 욕망의 천을 두르고 있는 붕대와 문신의 황홀한 미아라.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무관한 자연의 변태적 섭리로 만들어진 천연미이라들, 대영박물관의 ‘진저(ginger)’처럼 아무런 반항의 흔적이 없는 죽음의 눈부신 화석. 분명한 것은 두 가지 모두 그 안에 심장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심장은 색깔이 아니라 형태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미이라, 이 위대한 프랑스 그림쟁이 앵그르의 걸작은 심장의 박동을 느끼게 한다. 그 박동은 미이라, 생명보험, 풍수지리처럼 인간의 허접한 욕망과 바램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하나의 바람과도 같다. 초상화라는 그 바람의 피부가 뽀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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