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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1

hherald 2010.11.08 16:11 조회 수 : 3731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1
나를 만지지 말라/ 티치아노
‘Noli me Tangere’/ Titian(Tiziano Vecelli)

 그림.jpg

대가(大家)의 알레고리

 

대가(大家)를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장(巨匠)을 실감하는 일은 설렁설렁 설렁탕을 끓이는 것보다 약간 더 어려운 일이다. 명성으로 가리워진 대가들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일은 미술사의 숨겨진 그림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힘겨운 일이다. 그 이유는 역사라는 흘러가는 강물 때문이다. 수백 년 전 대가의 필력을 실감나게 느끼기에 역사는 너무도 많은 양의 필기를 강요하며 흘러왔다. 미술사 속 거장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일은 그러니까 역사의 간이역에 앉아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일과 같다. 대가들이란 우리에게 미술사 속의 분명한 기차표 한 장을 찍어주는 검표원 같은 존재들이다.

 

16세기 베네치아 미술의 최고 스타였던 티치아노(1487~1576)의 그림을 구색 맞게 전시하고 있는 곳이 내셔널갤러리다. 거의 한 세기에 버금가는 그의 다양하고 긴 미술역정을 보여주는 초상화, 역사화, 종교화가 잘 안배되어 보관되고 있다. 티치아노가 흔히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것은 피렌체 미술이 추구한 완벽한 안정감과 차별되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상의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색이 아닌 본질로서의 색을 발견했다는 의미에서 티치아노는 서양미술사의 위대한 대가의 하나인 것이다. 그는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1516)의 제자로서 동문수학하던 선배 조르조네(Gioorgione 1477~1510)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시적인 풍경의 원조인 천재 조르조네의 난해함을 쉽게 풀어낸 티치아노는 서양미술의 일반적 원형을 만들어낸 화가의 한 명이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차이점을 느껴 보는 일은 따라서 단순히,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한 한 천재화가와 세상이 인정한 최고의 명성을 누린 출세한 화가를 비교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티치아노의 위대함을 확인하는 일은 미술사 속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만나는 환희를 가져다 줄 것이다. 오늘은 내셔널갤러리의 위대한 종교화 ‘나를 만지지 말라(1510~1515?)’를 보면서 티치아노 명성의 한 귀퉁이를 살펴볼 차례다.

 

라틴어로 ‘나를 만지지 말라’를 뜻하는 이 그림의 제목은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다. 예수가 부활 후 처음 하신 말이다. 안식 후 첫 새벽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서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시신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무덤 밖에서 서 있는 예수를 보게 되지만 알아 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고 시신의 행방을 묻게 된다. 그 때 예수가 ‘마리아야’ 하고 부르자, 알아보고 놀라며 만지려 할 때 하신 말이다.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요함복음 20장 17절)” 따라서 이 그림은 부활 후 첫 번째 등장한 예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르조네풍의 넓은 배경에는 조르조네식 이해하기 힘든 원경들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조르조네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이 해독하기 힘든 한편의 난해시 같은 것이었다면 이 그림에서 보듯이 티치아노는 화가의 관점을 모두에게 공감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화가였다. 미켈란젤로에 버금갔다는 그의 명성은 그런 친절한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부활한 예수를 보고 놀라는 마리아의 낮은 자세는 수평선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지만, 그것은 성경을 아는 모두가 공감할만한 자연스러운 놀라움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돋보이는 것은 부활한 예수를 표현한 티치아노의 두 가지 세심한 배려다. 첫째, 예수가 걸친 수의(壽衣)를 하늘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바닷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하얀색 수의를 하늘빛으로 처리하고 있는 데, 그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려는 하늘의 뜻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는 못 자국이 선명한 맨발로 가시덤불을 밟고 서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와서 인간으로서의 가장 극심한 고통을 몸소 경험한 예수의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티치아노의 장치는 믿는 자들에게 열렬한 공감을 형성할 만한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화가의 색과 형태는 화가의 생각을 따라 형성되는 것이니까.

 

생전에 명성을 누린 대가들만이 미술사 속의 주역은 아니다. 오히려 생전에 세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화가들 가운데 진정 뛰어난 필력의 소유자들이 더 많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가들에게는 일반대중들에게 쉽게 공감될만한 대중성이 존재한다. 그 대중성은 엄밀하게 따지자면 반예술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대중성으로 하여 예술은 소멸되지 않고 존재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예술은 예술가 자신의 만족에서 출발하지만 인간 감성의 거대한 동질성을 향해 우호적이어야 한다. 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티치아노의 두 가지 알레고리는 그러한 예술의 호혜성을 보여주는 한 대가의 날카로운 믿음의 단면을 친절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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