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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2
현대의 우상/ 움베르토  보치오니 그림으로.JPG
Modern Idol/ Umberto Boccioni
 

미래를 꿈꾸는 탈바가지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미래란 어떤 것일까. 과학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현대의 양팔 벌린 미래의 꿈은 무엇일까. 알 수 없는 미래란 늘 현재를 현혹시키면서 존재한다. 기발한 사기꾼들에 홀딱 넘어가는 우리의 어설픈 속성에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다. 핑크빛 꿈에 속아 결혼을 미끼로 돈을 뜯긴다든지, 보장된 수입의 약속에 속아 허망한 투자를 한다든지 하는 우리의 실수담은 모두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불충한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만은 보장된 미래를 향해서만 자유롭다. 이태리에서 시작된 모더니즘 화풍의 다른 이름이 바로 ‘미래주의(Futurism)’다. 다른 열강들에 비해 뒤늦은 이태리 근대화에 대한 불만이 만들어낸 유파였다. 미래파운동은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과학문명처럼 예술이 보다 진취적인 차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아방가르드운동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르네상스라는 자랑스러운 이태리의 전통을 파괴시키고 싶었으며 따라서 전통이 숨쉬는 미술관이나 도서관도 철저히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들은 산업혁명이 촉발시킨 기계문명이 주는, 속도감이 살아있는 새로운 미래에의 추구만을 현실의 존재 이유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니체의 초인철학 같은 것이 이를 테면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배였던 셈이며 인상파의 획기적인 화풍 또한 그들에게 큰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 것이다. 그들의 미래취는 결국 파시즘을 옹호하기에 이르렀고, 미래파 화가들은 전쟁이라는 미래에의 추구를 위해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다. 미래주의라는 이름은 외부에서 작명된 것이 아니라 ‘미래주의 선언’이라는 자발적 기치에서 비롯되었다. (시인 마리네티가 1909년 ‘르피가로’에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에는 ‘아름다움이란 투쟁 속에만 존재한다’는 구절이 선명하다.) 가난했다는 미명아래 모든 것을 합리화했던 우리의 독재자들을 생각할 때면 나는 미래파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싶어진다. 그들의 미래가 다분히 실패한 것이었음을 확인시켜줘야 한다는 의무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이다.
 
런던의 코딱지 사촌형 만한 미술관 ‘에스토릭 콜렉션’은 여러모로 신기한 곳이다. 살뜰한 정원을 통해 조지안 양식의 조그마한 건물에 들어서면 몇 명의 직원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가 당신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티켓 대신 당신에게 코딱지 사촌동생 만한 스티커를 준다. 그것을 당신의 겉옷 어디엔가 붙이고 나면 당신은 미래를 향한 여행의 주인공이 되는데, 그때 코딱지 이모만한 까페에서는 수수한 커피냄새가 나기도 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놀랍게도 20세기 초반 이태리 미래주의자들의 인상적인 대표작들이 몇 점 옹골차게 숨쉬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그림, ‘현대의 우상(1911)’이다. 조각가로 더 유명한 보치오니(1882~1916)는 다른 초창기 미래파 화가들처럼 스피드와 활력의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 화가다. 전쟁 중 낙마로 서른 넷에 요절하는 그의 그림 중 이례적이고 특이한 그림이다. 미래주의자들은 그들의 미래지향적 자세로 하여 숙명적인 옵티미스트들로 볼 수 있는데, 그들의 그림에서 백 년 정도 후배인 우리들이 발견하는 것은 뜻밖에 진지한 자기성찰과 허탈함이다.

이 그림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분석하는 일이 재미있는 아주 특이한 그림이다. 모자 쓴 이 여인이 현대의 우상이라면, 그녀는 아마도 잘 나가는 연예인일 것이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는 다수의 전구들이 불빛을 내리 뿜고 있다. 스포트라이트다. 그녀는 무대 위에 있거나 아니면 기자회견 중이다. 그녀의 모자에는 화려한 꽃 장식이 되어 있다. 사람들이 바친 꽃다발이거나 어느 화원에서 협찬한 싱싱한 조화들이다. 그녀는 지나치게 화장하고 있다. 불빛에 의해 밝게 빛나는 입술 언저리의 하얀 피부가 두꺼운 화장을 친절히 보여주고 있다. 아이섀도는 빛에 의해 무지개처럼 분리되고 있다. 그녀의 위태로운 얼굴을 지탱시켜주기 위해 그녀의 귀에는 귀걸이가 매달려 있다. 그녀의 목은 털목도리가 감싸주고 있다. 그녀의 모자는 강한 스포트라이트들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는 일종의 방화벽으로 보인다. 그녀의 표정은 인간의 미래를 향해 연출된 다분히 작위적인 것이다. 현대의 우상은 인류의 미래를 거머쥔 연예인들이다. 그들의 꾸며지고 가꾸어진 외관과 연출된 표정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만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바라보는 관객의 표정은 진지하게 꿈으로 피어나고, 보여지는 연예인들의 표정은 철저하게 그림자 뒤로 사라진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연예인의 표정이란 애당초 지구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표정이다.

연예인들을 업신여기는 편이지만, 나 또한 그들의 카메라를 향한 낯선 표정에서 인류의 미래를 훔쳐보고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의 꿈이 미술에 있지 않고 미술가에게 있는 것처럼, 지구의 꿈도 지구에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대의 우상이란 미래를 향한 인간들의 아우성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미래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영원한 속도감’은 진정한 현대인인 우리의 시각으로는 심하게 느려터진 시간이 되어 버렸다. 미래를 꿈꾸는 탈바가지는 여러모로 허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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