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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
The Virgin of the Rock/ Leonardo da Vinci
 

중세 마니아의 비경(秘境)

 

그림으로.JPG

 


르네상스의 전형적인 예술가의 이름은 단연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다. 박식하고 진지한 철인이었던 그의 다양한 직함을 생각하면 지레 어지럽다. 작가, 조각가, 건축가, 과학자, 수학자, 음악가, 해부학자, 설계가, 우주학자, 지질학자, 지도제작자, 식물학자 게다가 화가였다. 이 다양하고 방대한 인생의 소유자 다빈치는 중세 인문주의가 만들어낸 대표적 인간형이다. 인간정신의 억압에서 탈출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인문주의를 신본주의의 반대의 개념으로만 해석하여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대단히 교조적인 자세라고 본다. 휴머니즘을 배제하고는 도저히 신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믿는다. 다빈치가 추구했던 다양한 사실에 대한 관찰은 다분히 탐구적인 인문주의가 부여한 열정이었다고 보고 싶다. 과학의 업적을 이용하여 최대한 편리하게 살고자 하면서도, 과학을 거부한 세계관에만 갇혀 있었다면 미술이라는 예술의 종자(種子)는 결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빈치의 ‘암굴의 성모(1495~1508, 내셔널갤러리)’가 런던에 있음은 런더너들에겐 기분 좋은 자랑거리의 하나다. 전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댄브라운의 통속소설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화제 만발했던 그림이다. 통속소설은 말 그대로 통속소설이다. 우리도 절대적으로 통속적으로 보아주어야 한다. 그러나 거대한 나와바리를 점령한 통속 예술에 휘둘리는 현대인들의 갈대 같은 사고는 자못 걱정스러울 정도의 수위에 이른 것 같다. 통속예술의 권력을 제대로 휘두르는 막강한 분야는 유감스럽지만 영화다. 영화는 그 철저한 상업성을 숨길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자본을 지니고 있으므로, 지극히 통속적인 생각도 마치 고매한 사고처럼 변신시킬 수 있다. 이제 영화라는 매체는 현대인들을 회유하거나 획책하는 데 능수능란한 괴물이 되었으므로, 좋은 영화를 감별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 그림에 대한 댄브라운의 치열한 상상력을 나는 너무도 통속적인 자세로 읽었으므로 이미 다 깨끗이 잊어버린 상태다.

 

유명하듯 이 그림을 다빈치는 두 점 남겼다. 파리 루브르에 있는 버전이 먼저다(1483~1486). 밀라노 산프란체스코 성당의 의뢰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러나 다빈치는 완성된 그림을 팔아버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해서였다. 물론 다빈치코드의 해석처럼 세례 요한의 목을 자르는 듯한 천사 가브리엘의 자세가 불경스러워 거부당했다는 가설도 존재한다. (가브리엘의 묘한 손동작은 런던 버전에서는 생략되어 있다.) 다시 그려진 그림이 이 런던 버전이다. 미완성작으로 알려져 있다. (가브리엘의 왼손 처리 등이 되어 있지 않다.) 루브르 버전보다 더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루브르 버전을 더 뛰어난 작품으로 본다. (강렬한 인물들간의 긴장, 데생의 정확성, 자연스러운 스푸마토 기법, 기타 등등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런던버전은 다빈치의 제자가 보여준 솜씨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오랫동안 힘을 지니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다빈치가 그린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멈춰선 듯한 동굴 묘사만큼은 런던버전이 더 그럴 듯 한 것 같다.

 

‘애굽으로의 피신’(Flight into Egypt, 마태복음 2장)에서 돌아오는 어린 예수가 어느 동굴에서 세례 요한과 조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성경에서 탈락한 외경(外徑, apocrypha)의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어린 예수, 어린 요한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이 피라미드 혹은 원형 구도를 이루며 앉아 있다. 성모는 이례적으로 요한을 감싸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아기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스도는 요한에게 축복을 내린다. 무대는 신비스러운 동굴의 내부다. 다빈치의 진지한 탐구와 관찰의 결실로 표현되었을 암석들과 식물들이 주는 신비로움은 그림의 주제와 기막힌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경이로움과 신비함으로 다빈치라는 이름의 놀라움을 증명하는 그림의 하나다. 이 그림을 적외선 카메라로 찍고 나서 관계자들은 경악했다고 알려져 있다. 성모의 머리 윗부분 즉 바위로 표현된 자리에서 힘없이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한 여인의 모습이 발견된 것이다. 그녀의 손은 성모의 얼굴 아랫부분에서 발견되었다. 다빈치의 의도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는 비경일 뿐이다.

 

다빈치는 중세 마니아의 한 전형이었다고 보여진다. 그림에 대한 그의 관심은 관찰을 낳았고 관찰은 탐구와 실험을 낳았다. 그의 방대한 명함의 직함들은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낳은 일종의 바벨탑이었다. 그 헛됨은 다분히 탄력적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도 다빈치는 탄생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위대한 음치 봅딜런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다빈치가 되는 길은 대략 이렇다. 딜런을 이해하기 위해 우디거스리를 듣는다. 포크를 폭넓게 듣는다. 컨트리를 다양하게 듣는다. 블루스를 깊이 있게 듣는다. 반전사상과 히피사상을 연구한다. 철학과 선불교를 공부한다. 비트문학을 판다. 영어공부를 다시 한다. 기독교 사상 연구에 몰두한다. 미친 듯이 열심히 산다. 착하게 산다. 끼니를 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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