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9
잠자는 농부/ 아드리안 브라우어
A Boor Asleep/ Adriaen Brouwer
 

 

 

우아한 도태

잠들지 않으면 꿈꿀 수 없다. 눈을 감지 않으면 이 세상의 빡빡한 스케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잠든 척 두 눈을 감고 세상을 저울질해야 한다. 미국의 현명했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티스푼으로 인생을 저울질했듯이, 우리도 세상을 저울질하며 애타는 나이를 먹어야 한다. 두 눈을 감는 것은 세상을 저울질하는 우리의 막막한 자세다. 런던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두 눈을 감은 사내를 소개한다. 런던 월리스콜렉션에서 묘하게 잠들어 있는 이 사내를 나는 오랫동안 눈 여겨 보아 왔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머리 속에 세상을 척 올려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가끔이지만 그를 만나면 나는 못다한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세상의 우스운 변명을 전해주거나 오랫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가늘게 실눈을 뜨고 나에게 뭐라고 중얼거리듯 대꾸한다. 그 이야기는 물론 여기에서 밝히기 좀 거시기한 낯뜨겁거나 건 목소리이기 일쑤다.
플래미쉬의 17세기 화가, 지금의 벨기에인인 아드리안 브라우어(1605~38)의 ‘잠자는 농부(1630~1638)’다. 브라우어는 플래미쉬 바로크 시대에 특별히 풍속화로 명성을 누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허름한 선술집이나 유곽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소란을 피우는 서민들이나 농부들을 주로 그렸다. 그는 프란스할스에게서 그림을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대의 최고 거장들인 렘브란트와 루벤스가 공히 그의 그림들을 소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풍속화의 선구자인 피터 브로이겔(1525~1569)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로이겔이 서민들의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낸 화가라면, 브라우어는 추하고 처절한 서민들의 모습을 차갑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 화가다.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그들의 모습이 하나의 완전한 아름다움인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셈이다. 아무런 수식 없는 그의 표현들은 그래서 때로는 그 어떤 수식보다 아름다운 표현의 직관이 되기도 한다. 그에 대한 이력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굳이 그의 이력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당신이 그의 그림을 보며 상상하는 바로 그런 모습이 그의 인생이었으니까. 딜런 토마스급 주정뱅이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으며, 감방에도 좀 앉아 봤고, 그리고 너무도 젊은 나이에 죽었다. 그의 이력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빚’이다. 빚에 허덕이던 인생이었던 것이다. 빚에 허덕이던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허접스러운 분탕질 같은 모습들은, 그러나 매우 인상적이다. 나는 특히 이 그림을 좋아한다. 그의 화가로서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 허름한 사내가 어느 허름한 선술집 구석에 앉아 잠든 모습이다. 그는 한 팔을 낡고 삐걱이는 탁자위에 올려 놓은 채 다른 손은 옷 속으로 집어 넣어 자신을 어루만지며 잠들고 있다. 아마도 낮술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잠들어가고 있는 중인 듯 하다. 그는 오른 발 아래 무엇인가를 받혀 놓고 잠들려고 한다. 아마도 세상의 무게 중심을 잡으려는 것 같다. 칸막이 뒤 편에서는 아직도 성한 사내들이 모여 있다.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고스톱을 치고 있는 중일 것이다. 혹시 돈을 다 잃고 허탈감에 빠져, 판이 끝날 때를 기다려 개평이라도 받아내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눈에 힘주고 둘러 보아도 모두가 칙칙하다. 모두가 낡고 어둡고 더럽고 초라하고 허접스러운 것뿐이다. 그나마 빛나는 것이라곤 탁자 위에 놓인 싸구려 탁주병뿐이다. 싸구려 탁주병의 반짝이는 눈망울, 그것은 거친 유약의 변덕처럼 빛나고 있다. 삶의 괴로움과 노동의 허탈감을 이기기 위해 막장 인생들이 모여든 선술집에서 홀로 도태된 한 사내의 조용한 휴식을 탁주병의 변덕스러운 눈망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순간을 나는 ‘우아한 도태’라고 부르고 싶다. 이 허접스런 낮잠이 우아한 이유는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자신을 세상에 던져 저울질하는 순수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 ‘우아한 도태’를 볼 때 마다 런던 복스홀(Vauxhall)역의 거지들에게서 느꼈던 우아함이 오버랩된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우아한 일이 구걸이라는 도태여서는 안 된단 말인가. 마치 묵은 빚을 갚듯이 그들에게 동전을 던질 때 마다 나는 마음 속 깊이 흐르는 눈물을 닦기 힘들었다. 그들이 내게 주는 심한 동질성의 호흡을 거부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 그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 그림은 언제나 자신을 확인시켜주는 아이디처럼 내게 다가 온다. 나는 거지거나 아니면 조금 더 양호한, 어느 술집에서 낮잠에 빠져드는 농부일 뿐이다, 그래, 가난하고 가난하여 더 이상 깰 쪽박도 없는 허접일 뿐이다. 오냐, ‘우아한 도태’여, 그러나 나는 이 험한 세상을 늘 저울질하며 오늘도 구걸하듯 살아야겠다. 가끔 가슴 속에 손을 넣어 심장을 확인하면서, 조금씩 빚을 갚아 가면서, 가늘게 실눈을 뜨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9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2 빨강 노랑 파랑의 조화/ 몬드리안 [276] file hherald 2010.11.15
38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1 [299] file hherald 2010.11.08
37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0 [226] file hherald 2010.11.03
36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7 쿡햄의 부활/ 스탠리 스펜서 [292] file hherald 2010.10.11
35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6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에드가 드가 [278] hherald 2010.09.27
34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4 앤드루스 부부/ 게인즈버러 [348] file hherald 2010.09.20
33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3 샬롯의 여인/ 워터하우스 [328] file hherald 2010.09.13
32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2 현대의 우상/ 움베르토 보치오니 [524] file hherald 2010.09.13
31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1 하얀 개와 여인/ 루시안 프로이드 [1884] file hherald 2010.09.06
30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40 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 [552] file hherald 2010.08.23
»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9 잠자는 농부/ 아드리안 브라우어 [244] hherald 2010.08.09
28 대사들/ 한스 홀바인 [613] file hherald 2010.08.02
27 쿠르브부아의 다리/ 조르주 쇠라 [268] file hherald 2010.07.26
26 열대 폭풍우 속의 호랑이(놀라움!)/ 앙리 루소 [296] file hherald 2010.07.19
25 발코니 / 피터 블레이크 [217] file hherald 2010.07.17
24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쫓는 그리스도 / 엘 그레코 [675] file hherald 2010.07.17
23 숲과 비둘기 / 에른스트 [565] file hherald 2010.07.17
22 무아트시에 부인 / 앵그르 [228] file hherald 2010.07.17
21 나르시스의 변형 / 달리 [448] file hherald 2010.07.17
20 세례받는 그리스도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182] file hherald 2010.07.1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