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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3

여성 누드/ 모딜리아니

Female Nude/ Amedeo Modigliani



 




안쓰러운 홍조 


시간에 도전하는 예술가들의 잔인한 무기는 요절이다. 요절한 예술가들, 그들은 한마디 언질도 없이 인생이라는 학교를 조퇴해버림으로써 자신을 예술이라는 오두막에 가둬버린다. 자신을 학대하고 고문하며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은 서푼 짜리 명예가 되어 그들의 묘비명 아래 꽃다발로 남을 뿐이다.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예술과 싸웠던 그들의 유별나고 칙칙한 삶은 우리에게 밝고 우아한 꽃 향기 하나씩을 남기는 지독한 아이러니를 연출하곤 한다.     

요절이 얼마나 치열한 반항이며 강력한 폭발인지를 보여준 것은 세계를 장악한 대중음악 팝(Pop)이었다. 예술의 사회장악력을 구현한 대중예술의 위력을 보여준 팝이라는 세계 공통의 대중음악은 수많은 요절자들을 남겨, 예술이 절대자에 대한 일종의 항명이며 고독한 수행이라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1970년 런던 노팅힐의 어느 호텔(Samarkand Hotel) 지하방에서 시체로 발견된 지미핸드릭스를 필두로 제니스조플린, 마크볼란, 그람파슨, 짐모리슨, 오티스레딩, 커트코베인 등 수많은 음악쟁이들이 조퇴생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요절한 예술가, 그들이 세상에 남기는 것은 비명이다. 그 비명은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예술이 부딪혀 만들어내는 일종의 파열음이다. 그들이 남긴 작품들은 스스로 비명이기를 작정한 완숙한 비명이므로, 그들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늘 안쓰러움에 휩싸이는 편이다.    

요절한 그림쟁이로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가 있다. 유태계 이탈리아인인 모딜리아니는 이십대 초반 파리에 정착하여 활동하였다. 독특한 파리의 화가로 평가 받았던 그는 세잔이나 고갱, 로트렉의 영향이 넘치는 독특한 화풍의 소유자였다. 주로 인체를 그린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마치 아프리카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단순성과 비현실적인 긴 모양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던 모딜리아니는 그러나 이러한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현대미술의 광염 속에 던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술과 향정신성 약물에 의존하던 그가 서른 여섯의 젊은 나이로 요절해버렸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와 그의 젊은 아내 잔느 에뷰테른(Jeanne Hebuterne, 1898~1920)의 사랑은 파리에 울려 퍼진 슬프지만 아름다운 한 편의 세레나데와 같다. 미술 지망생이었던 부잣집 딸 잔느는 가난한 미남화가 모딜리아니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서 예술과 사랑의 오아시스를 바라본다. 많은 여인을 사랑했던 모딜리아니는 잔느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정착하게 되고, 둘은 꿈 같은 사랑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삼 년 후 그들의 시간은 깨어지고 만다. 술과 마약에 빠진 병약한 모디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슬픔에 빠진 잔느는 모디가 사망한 이틀 후 임신 팔 개월의 몸으로 아버지 건물에서 투신 자살한다.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 주겠다던 평소의 약속을 의연하게 지켜낸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곁에 이런 묘비명으로 묻히게 된다. “모딜리아니와 잔느 태어나지 못한 아기와 여기 잠들다.” 

런던의 가장 중요한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코톨드미술관에 걸려진 ‘여성누드(1916)’다. 아마도 잔느로 추정되는, 모딜리아니의 몇 점 안 되는 앉은 여인의 누드화다. 전설적 스캔들을 일으켰던 모딜리아니의 누드화중 하나다. 1917년 파리, 생애 첫번째로 열린 모딜리아니의 개인 전시회는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전시장의 창을 통해서 보이는 누드화에서 충격을 받고 놀란 시민들의 신고가 잇달았기 때문이다. 신고가 계속되자 경찰이 출동하였으며 전시회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모딜리아니의 다른 그림처럼 이 ‘여성누드’도 일종의 갇힌 꿈이다. 대단한 필력을 느끼게 하는 선들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서 어느 강변의 오두막에 최소한의 간편한 형태로 갇힌 모습이다. 갇힌 것은 어느 젊은 여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해 보이는 여인의 머리칼, 이집트의 네페르티티를 연상시키는 극도로 단순하면서도 선연한 눈코입, 아름답지만 왠지 아름다움이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은 여인의 몸매. 모딜리아니의 선은 최소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도 강렬하게 빛나며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혹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도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 선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형태의 핵심을 아우르며 불꽃처럼 타오르고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집트와 로마와 중세와 매너리즘과 인상파가 모두 보이는 것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정확히 보이지 않는 매력적인 누드화다. 전통대로 그리지 않고 있지만 모든 전통을 따르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숙명적으로 전통을 숙지하고 있지만 숙명적으로 전통을 거부하고 있는 듯한 그림이다. 그 이상한 줄타기를 하다가 잠든 예술가의 영혼을 담고 여인은 잠들고 있다. 단순하고 편한 몸 위에 약간 불편해 보이는 얼굴을 내려 놓고 잠들고 있다. 여인의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다. 황혼처럼 혹은 아침 해처럼. 

여인의 홍조가 마치 비밀을 알아낸 흥분처럼 보인다. 역사의 무게 위에 언제나 더해지는 역사의 무게, 시간의 행군 위에서 되풀이되는 계절…… 그러나 절대로 잠들어서는 안될 순간 잠들어버린 여인의 이 안쓰러운 홍조야말로 자신을 가둬버리고 조퇴한 모딜리아니가 세상에 남긴 비명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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