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3
붕대 감은 자화상/고흐
Self Portrait with Bandaged Ear/ Vincent van Gogh
 그림.JPG
외로움 종결자


1888년에서 1890년, 이 삼 년 동안 인류미술은 가장 잔인한 역사를 만들어냈다. 프랑스 남쪽 아를이라는 마을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한 젊은 화가가 미친 듯이 미술과 맞짱 뜨고 있던 시절이다. 그는 자기 생을 소멸시키려는 것처럼 미친 듯이 많이도 그렸다. 그는 미친 듯이 사랑했던 친구 화가(고갱)에게 면도칼을 들이댔다. 그는 미친 듯이 자신의 귀를 잘랐다. 그는 잘려진 귀의 살점을 어느 창녀에게 보냈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는 결국 권총 자살하였다. 이 모든 것이 그 삼 년 동안 이루어졌다. 그는 바로 영원한 젊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90)다.  
‘별이 빛나는 밤, 팔레트를 푸른색과 회색으로 칠했던 남자, 자신 영혼의 어둠을 느끼는 눈으로 여름날을 바라보던 남자, 언덕의 그림자처럼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하던 남자, 차가운 겨울 바람을 잡던 남자……’(돈 맥클린 노래 ‘빈센트’의 가사 중에서)
그 삼 년 동안 고흐가 그린 그림들은 현재 시장 경제의 극점에 도달해 있다. 잔인했던 고흐의 삼 년에 대한 이 세상의 잔인한 화답이다. 그 시절 그려진 ‘가셰박사’, ‘조셉 룰랭의 초상화’, ‘아이리스’, ‘자화상’,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해바라기’, ‘농촌여인’ 등은 대략 칠백억에서 천삼백 억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그 시절 그림들의 가격을 다 합친다면 아마도 천문학적일 것이다. 살아 생전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아보았던 고흐였다.
이 놀랍고도 잔인한 일이 벌어진 것은 미술이 대중의 곁에서 멀어졌음을 의미하는 불행한 사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흐의 단순하고 강렬한 그림들이 주는 일관되고 깊은 매력에 열광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분명 이유 있는 것이다. ‘열정을 향한 투신’이라는 우리가 감히 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생의 모습에 대한 대리만족 효과 같은 것 아닐까? 아니면 조용필이 어설프게 노래한 것처럼, 나보다 더 불행한 사내의 표본인 고흐 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값진 존재가치 때문일까?  
고흐가 함께 화가 공동체를 이루어 내기 위해 고갱을 초대한 것은 1888년이었다. 고갱과의 동거를 위해 노란집을 빌렸던 고흐의 희망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두 화가는 오래지 않아 결국 헤어지고 만다. 둘의 불화와 파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슬픈 일이다. 고흐의 발작에 놀란 고갱은 떠나버리고, 고흐는 자신의 귀를 도려낸다. 면도칼로 도려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 끔찍한 사내 고흐는 귀에 붕대를 감고도 두 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런던 코톨드미술관의 ‘붕대감은 자화상(1889)’은 병원에서 퇴원한 직후에 그린 것으로, 고흐라는 외로운 사나이의 처절한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의 하나다. 화가와 그림이 하나가 된 경험으로 고흐를 능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흐는 화가의 모든 감정과 생각, 부록처럼 화가를 따라 다니는 인간으로서의 삶의 치졸한 구석구석을 모두 그림에 토해낸, 일종의 전설로 존재한다. 그는 그림을 강렬한 색으로 단순화시키고 화가의 삶을 붓에 실어낸 화가다. 그에게 있어서 색은 묘사가 아니라 표현을 위한 도구였다. 그에게 있어서 선들은 그 자신의 분신들이었다. 
고흐가 자신의 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캔버스를 올려 놓은 이젤과 벽에 걸린 일본 풍속화 사이에 서 있다. 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초록 코트를 입고 있으며 귀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붕대 사이로 잘려나간 귀에 맞닿은 거즈가 보인다. 캔버스는 무언가를 그렸다가 지워버린 듯, 거의 백지에 가깝다.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화가로서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슬픈 모습이다. 후지산 아래 기모노 차림의 여인들이 보이는 일본 풍속화는 고호가 파리에서 열풍을 일으키던 일본 미술에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 풍속화의 생략과 상징성에 매료된 고흐였다.
똑 바르지 못한 문틀은 의미 심장하다. 고흐가 인상파에서 배운 것은 화려한 색감과 더불어 통쾌한 화가로서의 자유로움이었다. 삐뚤어진 그의 선들은 더 이상 화가가 세상을 모사하는 기술자가 아니라는 희망의 선이다. 그대로 드러나는 그의 붓 자국은 신인상파들이 실험한 분할기법에서 획득한 자유로움의 일부다. 고흐는 외로움이 자유가 되는 단순성의 그림들 속에서 마지막 삼 년을 보냈다.
물론 이 그림의 하일라이트는 불안과 처절함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고흐의 눈빛이다. 잘려나간 귀로 인하여 보다 예민해지고 고도의 긴장감을 부여 받은 듯한 눈동자다. 이 눈동자를 오분 이상 보고 나면 나는 탈진 상태에 빠진다. 그럴 땐 조용히 지하 까페로 내려간다. 내 경험으로는 코톨드미술관 까페가 런던 미술관 중 제일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곳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일품 당근 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한잔을 마실 때마다 거기까지 따라온 고흐의 녹색 눈동자를 느끼곤 한다. ‘역시 고흐는 미친 인간이다. 그리고 외로움 종결자였다!’ 그럴 때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싶어진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9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3 여성 누드/ 모딜리아니 [125] hherald 2011.05.02
58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2 위트레흐트의 부르케르크/ 산레담 [843] file hherald 2011.04.18
57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1 보트가 있는 해안/ 코트먼 [234] file hherald 2011.04.11
56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0 진흙 목욕/ 데이빗 봄버그 [711] file hherald 2011.04.04
55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8 샘/ 마르셀 뒤샹 [544] file hherald 2011.03.21
54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7 교황 율리우스 2세/ 라피엘로 [445] file hherald 2011.03.14
53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6 모델과의 자화상/ 샤드 [190] file hherald 2011.03.07
52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5 헤롯왕의 유아학살/브뢰헬 [325] file hherald 2011.02.28
51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4 남자의 초상(양복장이)/모로니 [148] file hherald 2011.02.21
»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3 붕대 감은 자화상/고흐 [226] file hherald 2011.02.14
49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2 누더기 비너스/피스톨레토 [548] file hherald 2011.02.07
48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1 수태고지/로제티 [249] file hherald 2011.01.31
47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0 용과 싸우는 조지/ 틴토레토 [237] file hherald 2011.01.24
46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9 윌리엄 모리스를 생각하며 [95] file hherald 2011.01.17
45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8 허친슨 부인/ 바네사 벨 [5] file hherald 2011.01.10
44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7 산로마노 전투/ 우첼로 [434] file hherald 2011.01.03
43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6 가스전/ 사전트 [243] file hherald 2010.12.23
42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5 비너스의 몸단장(록비 비너스)/ 벨라스케스 [352] file hherald 2010.12.13
41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4 델프트의 어느 집 안뜰/ 피테르 데 호흐 [143] file hherald 2010.12.07
40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3 윌튼 두폭화/ 작자 미상 [863] file hherald 2010.11.2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