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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2
누더기 비너스/피스톨레토
Venus of the Rags/ Michelangelo Pistoletto

그림.JPG
 

 

치환될 수 없는 현실


미술은 오랜 세월 상상력을 향해 열린 빈 상자와 같았다. 누가 그 상자를 가득 채우고, 아무도 닫아보지 못한 뚜껑을 닫을 것인가? 그 뚜껑을 누군가 닫아버리는 순간, 인류는 과연 구원될 수 있을까? 이 오래된 인류의 염원과 의문을 위해 미술가들은 상상력의 들판에서 때로는 걸인처럼 때로는 귀족처럼 세상과 싸워왔다. 그 상상력의 빈 상자를 인류는 아직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상자 속은 광야처럼 광활하고, 매서운 바람마저 분다. 르네상스의 천재 화가들이 상자를 다 채웠다고 느끼는 순간, 새로운 상상력의 강풍이 불었다. 인상파의 어설픈 화가들이 상자의 거의 윗부분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상력의 태풍이 지구를 휩쓸었다.

 

맞다, 태풍처럼 왔다. 인류 미술의 상상력은 시각적 이미지를 넘어서 우리 사회와의 깊은 밀착을 보여주는 무엇이어야만 한다는 태풍이었다. 그 상상력의 태풍은 대체로 후기인상파 화가들의 초라한 인생역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발전하는 놀라운 과학문명의 위력과 속도감에서도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제 시대를 잡으려는 미술가들은 더 이상 조용한 화실에만 머물 수 없다. 미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상상력의 상자를 채우기 위해 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의 미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붓을 만지는 섬세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세상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의 발현이다. 화가는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현 속에서 세상의 새로운 길이나 숨겨진 풍경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다. 세상이 너무도 복잡해져서 우리 같은 민간인들은 도저히 그런 것들을 볼 여유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미술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표현의 테크닉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의 길이나 풍경이다. 세상의 보이지 않는 풍경을 읽으려는 노력이 없는 자들에게 현대미술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것이다. 런던을 고층건물 즐비한 뉴욕과 비교하여 시골 같다고 표현하는 한국관광객들을 자주 본다. 충고하자면, 런던을 제대로 보려면 약간의 미술적 감각이 필요하다. 19세기의 모습을 대거 보존한 런던의 좁은 차도들은 한때 마차가 다니던 마차로였다. 런던은 뉴욕이나 두바이가 갖지 못한 인류 문화의 어느 시간을 고스란히 전시하고 있는 커다란 갤러리에 다름 아니다.    
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현대미술 사조인 ‘아르테 포베라’의 대표적인 작품 하나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1933~ )의 ‘누더기 비너스(1967, 1974, 테이트모던)’다. (67년 처음 만들었으며, 런던에 있는 것은 74년 다시 제작한 것이다.) 아르테 포베라는 ‘빈약하고 초라한 예술(Poor Art)’이라는 뜻이다. 거대한 상업사회의 대중을 향한 몸부림이었던 미국 팝아트의 영향으로 생겨난 사조로서, 당시 복잡했던 이탈리아의 상황에 대한 반항심이 작용한 미술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현실에 작용하는 여러 가지 빈약하지만(미술적으로) 중요한(사회적으로) 재료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결합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숨어있는 사회 풍경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미술이다. 재료들의 물질성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지극히 사색적이며 시(詩)적인 예술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매우 은유적이다. 한편의 현대 난해시를 읽는 것처럼 바라 볼 때 아주 재미있는 미술이다.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헌 옷들을 하얀 대리석 비너스상이 바라 보고 있다. 비너스는 인류의 정서를 지배해 온 미의 상징이다. 그리고 역사다. 인간들에게 미(美)라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이미지로 생성된 하나의 완벽한 역사다. 그 앞에 헌 옷들이 무자비하게 쌓여 있다. 헌 옷들은 우리의 삶을 우화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무생물이자 시간이다. 우리 모두는 헌 옷을 입고 다니다가 헌 옷을 벗어두고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인간들은 자기 생을 아름답게 치장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옷이 실용성보다 미를 추구하는 도구가 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피스톨레토는 한때 우리 생을 치장하기 위하여 거리를 활보하던 옷들의 생명이 빠져나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용도가 파기된 그 모습을 비너스와 대치시키면서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던 세상의 숨겨진 풍경 하나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치환될 수 없는 현실과도 같다. 현실이 복잡해질수록 우리의 시력은 둔감해진다. 우리는 쇼윈도에 걸린 모습으로만 옷의 이미지를 기억할 뿐, 더 이상의 모습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리의 제한된 시간은 나날이 복잡하게 세분화되며, 우리의 아둔한 사고는 보다 많은 것들에게 할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무얼 보며 사는 것일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풍경화다. 우리의 것이면서도 우리가 보지 못했던 풍경, 현대라는 오묘한 풍경. 풍경이 아름다운 것은 주제가 없기 때문이다. 주제란 어차피 세상의 허구가 만들어내는 것 일뿐, 주제를 모르는 우리의 상상력은 오늘도 주제 없는 풍경 속에서 주제 없는 옷을 입고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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