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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8
허친슨 부인/ 바네사 벨
Mrs St John Hutchinson/ Vanessa Bell

 

기분 나쁨과 싸우기


앞선 문명이 행한 역사의 결과물들은 아무런 준비나 대책이 없던 후진 문명 사회에 바이러스처럼 전이된다. 그것은 한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것이지만, 때로는 너무 수준 높은 숙제처럼 가혹하거나 잔인한 것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느 날 우리 앞에서 갑자기 굴러 다닌 자동차가 그렇다. 우리는 서구사회처럼 충분한 마차의 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얼떨결에 자동차문화권에 종속되었다. 시행착오와 검토가 생략된 채 다이제스트된 것이 우리의 자동차문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구상의 손꼽히는 자동차 생산국이 되어 있다. 어느 날 불현듯이 우리에게 광범위하게 불어 닥친 성 개방 풍조도 그렇다. 과연 우리사회에 여성이란 동물에 대한 연구가 충분했었는가를 걱정하게 한다. 어이없는 성폭력 기사가 넘치는 작금의 뉴스들은 이미 ‘기분 나쁨’을 넘어선 지점에 존재한다.

 

여성이란 성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인물은 버지니아 울프(1882~1941)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라는 시에 등장한 이래 우리에게 슬픈 여인의 대명사로 존재해온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어린 시절 의붓 오빠들에게 당한 성폭력의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았던 여자, 기분 나쁜 성의 정체성에서 헤매다가 강물에 빠져 자살한 여자다. 그녀가 터줏대감이었던 런던의 블룸스버리는 단순한 문학과 예술의 동네를 넘어서 영국이 여성이라는 동물을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든 의미 있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이나 ‘오메가 공방(Omega Workshop)’의 분방한 예술관 속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말한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같은 것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들의 분방한 성취향은 ‘불가지론(不可知論 Agnosticism)’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여진 우리의 성개방처럼 근거 없는 현상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 버지니아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여자가 또 있다. 버지니아의 언니인 화가 바네사 벨(1879~1961)이다. 마티스의 영향을 듬뿍 받은 표현주의 화가였던 그녀의 빛나는 초상화 한 점이 이 그림(테이트브리튼, 1915)이다.

 

이 초상화를 보는 순간 당신은 당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표현하기 힘든 섬뜩함이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밝은 색감으로 현신(現身)하듯이 일어선 여인, 애써 당신을 외면하는 듯한 그녀의 날 선 눈동자, 지나치게 강조된 늘어진 목걸이, 불만으로 가득한 야무진 주둥이, 게다가 속세가 아닌 듯한 비구상의 배경, 아니 비구상이라기 보다는 형식주의라고 불러야 걸맞을듯한 헐벗은 배경…… 이토록 잔인박행(殘忍薄行)한 초상화를 이십 세기 초반에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분노한 붓이 제멋대로 움직여 만들어낸 인물처럼, 믿고 싶지 않은 초상화다. 세상에서도 만나기 힘들 이런 인물이 왜 하필 초상화 속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것일까. 그런데 기분 나쁜 이 여인의 표정을 바라 보며 정작 더 기분 나쁜 것은 이 여인의 표정이 왠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야 하는 수많은 불쾌한 표정들처럼 정숙(情熟)하고 정겹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분 나쁜 그림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이유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분 나쁨’과 불쾌와 분노는 이 세상 주인공의 하나다. 기분 나쁜 역할을 훌륭히 연기한 배우들은 누구보다도 명배우 소리를 듣고, 기분 나쁜 인생을 살다가 개과천선한 인간들은 누구보다도 박수를 받는다. ‘기분 나쁨’이란 우리가 함께 품고 살아야 할 세상의 일그러진 꽃들의 학명(學名)이다.              

 

바네사는 동생버지니아처럼 비정상적인 결혼을 한 여자다. 그녀는 남편 클라이브벨(Clive Bell)과 ‘자유결혼(Open Marriage)’을 하였다. 상대방의 성생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버지니아가 성생활이 전제되지 않는 결혼을 한 것과 비교된다. 이 초상화의 모델은 바네사 남편의 정부였던 메리허친슨이라는 단편작가로 알려져 있다. 물론 바네사는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남편 애인의 초상을 천연덕스럽게 그려낸 것이다. 기분 나쁜 남편 정부의 얼굴을 기분 나쁜 그림으로 완성키는 것, 바로 예술이다. 기분 나쁨을 극복하는 과정을 예민하게 보여주게 된 것은 현대미술이 획득한 자랑스러운 성과급의 하나다. ‘기분 나쁨’과 얼마나 대판으로 싸우느냐는 현대예술의 새로운 업무가 된지 오래다.    

 

버지니아 울프는 어린 시절 경험한 최고의 ‘기분 나쁨’인 성폭력을 극복하는 많은 걸작 소설을 남겼다. 특히 의식의 흐름을 통찰하였으며 여성이란 동물의 정체성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물로 투신하고 말았다.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처럼, ‘기분 나쁨’과 대판 싸우고 떠나 버린 것이다. 그녀의 언니 바네사벨은 그러나 스스로 떠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녀도 우리처럼 ‘기분 나쁨’과 평생 싸우다가 죽었다. 남편 아닌 남자의 아이를 낳았으며, 남편 애인의 초상을 딱 이렇게 그렸다. ‘기분 나쁨’은 인간에게 참음과 분노를 가르치기 위하여 오늘도 목마처럼 거저 돌고 있을 것이다.

 

 

최동훈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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