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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54
델프트의 어느 집 안뜰/ 피테르 데 호흐
The Courtyard of a House in Delft/Pieter De Hoogh

 


따스한 기억의 한 구석

 


당신이 미술관에 서서 그림을 보고 있다면, 당신은 두 가지 직업을 이미 갖게 된 것이다. 하나는 독자 즉 감상자가 된 것이고, 또 하나는 비평가가 된 것이다. 수입은 보장 못하지만, 이 살벌한 이십 일세기의 문화 전쟁터 안에서 손쉽게 두 가지 직업을 획득한 것이다. 감상자로서의 정서와 비평가로서의 정서는 아주 세밀하게 같은 것이며,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것이기도 하다. 그림이 당신에게 주는 감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당신은 감상자이고, 거부하며 반항해 볼 때 당신은 비평가이다. 이 흐뭇한 겸직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방법은 그러나 조금 어려운 편인데, 뭐냐 하면, 독창성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예술’이라는 허망한 분탕질이 존재하는 이유는, 당신이 예술가의 실력 앞에서 감탄하기를 바라기 때문만이 아니다. 예술을 앞에 두고 숙고하는 당신의 독창적 감상을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독창적 감상의 지름길은 예술을 지식으로 매수하려는 물신주의에서 신속히 벗어나는 것이다. 돈 몇 푼으로 얻어듣는 강좌 몇 번이 당신에게 독창성을 주지는 못한다. 얼마나 치열하게 생각했느냐, 얼마나 진지하게 당신의 인생을 걸었느냐, 얼마나 코 삐뚤어지게 예술에 취해 보았느냐, 그런 지독함 들이 보다 유용한 것이다.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풍속화가 호흐(1629~1684)의 걸작 두 점이 런던에 있는데, 그 한 점이 바로 이 그림이다(1658, 내셔날 갤러리). 코 삐뚤어지게 취하기에 좋은 그림이다. 호흐는 거장 베르메르(Jan Vermeer, 1632~1675)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 그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많이 남겨 준 화가인데, 어느 부잣집의 관리인이 되면서 ‘최초의 화가이자 하인’이었던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뛰어난 색감 속에 빛과 어우러진 집안 구석구석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적이고 섬세한 그의 그림들은 사실과 환상의 중간에 서 있는듯한 몽롱함을 주곤 하는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풍속화들이 대체로 그런 것처럼 마치 선험적으로 본듯한 가정집의 모습들을 포착해 내고 있다. 마치 어렴풋한 우리 기억의 한 구석을 끄집어내 주는 듯한, 수백 년 시차를 무색하게 하는 그림들이다. 
이 그림은 어느 가정집 안뜰에서 바라본 집안의 한 구석 모습이다. 문을 열고 누구를 기다리는 듯한 안주인쯤 되는 여인의 뒷모습이 복도를 통해 보인다. 다소곳하고 꼿꼿한 자세로 보아 아마도 기다리는 순간이 임박한 모습 같다. 그리고 또 다른 등장인물들인, 오른쪽 샛문을 통해 마당에 들어서고 있는 하인으로 추정되는 여인과 어린 소녀가 보인다. 그녀가 든 바구니와 소녀가 앞치마를 움켜쥔 모습으로 봐서는 아마도 샛문으로 통하는 정원에서 과일들을 따온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여인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뭔가를 친절하게 말하며 소녀에게 인생(?)을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삐걱 이는 격자 모양의 기둥 사이를 그녀들은 통과하려고 한다. (이 허름한 공간은 호흐의 다른 그림에서 신기하게도, 말쑥한 모습으로 수리되어 있다.) 담을 타고 넘어온 나뭇잎들은 마치 그녀들을 보호해주려는 듯 부드러워 보인다. 마당에 깔린 보도 블록은 치열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 한구석에는 방금 쓰이고 팽개쳐진 듯한 빗자루가 하나 뒹굴고 있다. 아치형 뒷문 위 현판에는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다. “당신이 참음과 부드러움을 향해 자리를 뜬다면, 이 곳은 신성한 자의 계곡이 되어 줄 것이다. 높임 받고 싶다면 우리는 보다 낮아져야 할 것이다.” 이 준열한 경구는 그림의 분위기와 어떤 관계를 지니는 것일까.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아치의 왼쪽 아랫부분에는 화가의 무덤덤한 서명이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의 놀라운 분위기는 대부분 그 독특한 색감에서 오는 것 같다. 마치 노랑과 청색이 약하게 인쇄된 교정지(校正紙)를 보는 듯 한 느낌이다. 의도적이었을 그러한 호흐의 바랜 색감은 안뜰에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보여주는데 탁월한 성공을 보여주고 있다. 꽃잎들은 햇살에 의해 희석되었지만 부드럽고 따스해 보이고, 바랜듯한 보도블록은 햇살의 열기를 생생히 전해주고도 남아 보인다. 뽀송뽀송한 붉은 벽돌들은 건강한 건조함의 미학을 체현하는 듯이 보인다. 그제서야 그 따스함 속에서 호흐가 적어 놓았던 경구가 또렷이 우리에게 햇빛처럼 각인된다. 누구를 기다리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참음’과 인내를 한아름 안을 수 있으며, 친절하게 소녀에게 속삭이는 여인에게서 우리는 ‘부드러움’의 초상을 생생히 목도하게 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손바닥을 치며 깨달아야 한다.  “오호라, 따스한 햇살이 축복처럼 내리비치는 가정에 진실로 필요한 것은 “참음”과 “부드러움”이었구나!” 그리고 우리는 코 삐뚤어지게 취해야 한다. 그 흔한 기네스 한잔 없이도 우리는 취해야 한다. 그 깨달음의 취기는 물론 예술의 단말마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신나는 선물꾸러미다.
그림은 당신에게 절대로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다. 장황한 사변(思辨)과 현란한 지식으로 당신을 유혹한다면 그것은 이미 미술이 아니다. 매명욕과 탐심의 근시(近視)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당신이 보아야 할 미술이 아니다. 아름다운 기억의 한 구석에서 햇빛처럼 빛나는 당신의 독창성을 꺼내 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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