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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발코니 / 피터 블레이크

hherald 2010.07.17 20:33 조회 수 : 4291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5
발코니/ 피터 블레이크
On the Balcony/ Peter Blake
 

35그림.jpg

 

우리를 지배하는 유년의 추억

 

유년의 추억을 우리에게 선 지급된 보험금이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는 정말 부자였다. 지구가 온통 정신 팔려 들썩이는 ‘돈’이라는 놈이 그다지 많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는 한때 부자였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한때는 부자였던 것 같다. 눈깔사탕, 딱지, 구슬(‘다마’라고 불렀다.), 김일의 박치기, 홍수환의 사전오기, 미제연필 몇 자루, 지퍼 달린 필통, 폴앵커의 크레이지러브, 그리고 반공방첩….. 그런 것들 모두를 소유하고 있던 실한 알부자였던 것 같다. 유년의 추억은 일종의 향수다. 퍼퓸 말고 노스탈쟈,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나른하고 몽롱한, ‘참하 꿈엔들 잊힐 리 없는’ 호시절 말이다. 예술가들의 가장 큰 자원은 세랑게티 초원처럼 탁 트인, 바로 유년의 추억일 것이다.

 

(필자생각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인간인 밴모리슨(Van Morrison)은 벨파스트의 어린 시절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표현한바 있다. 그의 음악을 듣고 그토록 아름다울 것이란 생각으로 찾아간 밴모리슨 유년의 벨파스트는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의 노래 속에서 그토록 아름다웠던 세인트 도널드교회의 여섯번 종소리는 흔하디 흔한 영국 시골교회의 처량한 종소리에 불과했다. 그의 유년의 꿈을 향해 펼쳐졌던 사이프러스 거리(Cyplus Avenue)는 그저 영국 도시의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윤기 흐르는 부촌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실망감들이야 말로 밴모리슨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결정적 물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흔하디 흔한 유년의 기억들을 그토록 아름답게 표현하다니. 유년은 우리 모두에게 선 지급된 막대한 보험금이다.

 

유년의 추억을 가장 꼼꼼하게 그려낸 그림 한 점으로 영국 팝아트의 대표 화가 ‘피터 블레이크(1932~ )’의 대표작 ‘발코니(1952~1957, 테이트갤러리)’를 꼽고 싶다. 블레이크는 현존하는 영국미술 최고 거물의 한 명이다. 피카소나 달리, 앤디워홀처럼 화려한 성격이 아닌 그는 치스윅(Chiswick)에서 조용히 살면서 해머스미스의 화실에서 노년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걸작 팝 앨범인 비틀스의 ‘페퍼 상사(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의 쟈켓을 디자인한 인물로 더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리쳐드 해밀턴과 더불어 팝아트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팝아트는 사실 영국에서 만들어진 미술이다.)
 
그의 초기작이자 영국 팝아트의 대표작인 이 그림은 마네의 걸작 ‘발코니’를 패러디하고 있다. 네 명의 앉아 있는 젊은이들 중 맨 왼쪽 친구가 들고 있는 그림이 바로 마네의 ‘발코니’다. 그는 아마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 내고 있는 ‘엘비스 워너비’인 것 같다. 한 명은 마가렛 공주가 등장하는 잡지로 얼굴을 덮고 있다. 그들은 주렁주렁 뱃지 들을 달고 있다. 뱃지가 대유행이었듯 하다. ‘I Love Elvis’, ‘I Like the Hi-Los’ 처럼 당대의 팝뮤지션이나 ‘I Spy’ 같은 드라마가 내용이다. 잡지, 카드, 콘프레이크 통, 티켓 등 당시의 동심을 사로잡았던 것들을 병치시키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 모두가 미술 속에 들어 온 것이다. 그리하여 유년의 학습과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철학이나 정치 같은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말그대로 팝아트인 것이다. 맨 오른쪽의 뱃지를 달지 않은 교복차림은 한눈에도 블레이크 자신임을 알아채도록, 화가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뱃지 대신 당시 영국 미술학도들의 우상이었던 존민튼(John Mintom, 1917~57 재즈 뮤지션으로도 알려져 있다.)의 사진을 달고 있으며, 초상화가 그려진 캔버스를 들고 있다. 흡사 콜라주처럼 보이지만 이 그림은 정성껏 그려진 유화다. 많은 분량이 할애된 왕실 사람들의 모습들은 당시가 엘리자베스라는 젊은 여왕의 즉위 직후임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영국에 대한 희망으로 애국심이 저절로 강조되었던 시절이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애국심은 단연 ‘반공방첩’이라는 단어가 지배했다. 반공미술대회를 참가한 우리들은 김일성 머리에 도깨비만한 뿔을 그리거나, 털이 난 빨간 손으로 공산당을 묘사하기를 즐겼다. 그리고 아쉽게도 실제로 공산당은 뿔이나 털이 난 괴물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박정희 독재시대에 유년을 보낸 우리들의 서글픈 훈장이다. 일종의 잔인한 뱃지다. 유년의 모든 추억은 우리에게 선 지급된 보험금이다. 대부분 현찰로 지급되었다. 우리는 그 현찰을 평생 지니고 산다. 그러나 문제는 어음으로 받은 추억들이다. 그 중에는 ‘반공방첩’ 같은 어음도 있다. 그 빗나간 교조적 애국심의 어음을 우리는 평생 무엇에도 지불할 수 없었다. 경제를 살렸으니 위대하다는 박정희 정권이 남발한 그 부도어음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유년의 추억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왜곡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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