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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0
세례받는 그리스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The Baptism of Christ/Piero della France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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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고전을 보는 것은 현재 자신의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아깝고 비싼 시간을 투자해 고전소설을 읽는 것은 현대인들의 팔딱거리는 사고의 원류를 찾아보는 의미 있고 보람찬 일이다. 촌스럽고 감흥 없는 고전그림을 보는 것은 내 안에 존재하는 미술사의 유적을 더듬는 탐험 같은 일이다. 우리 모두는 시커먼 가슴 속에 저마다 미술사를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 미술사는 나름 자존감이 대단하다. 옷을 고를 때 혹은 전자제품을 고를 때, 그것은 취향이라는 고집이 되어 드러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나름 자신의 미적 취향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간다. 오늘날 그 미적 취향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관대작처럼 높으신 분들이 바로 연예인이다. 그들의 속물취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픔 하나다. 그러나 그 무소불능의 권력을 휘두르는, 영향력 지대한 첨단의 외관을 자랑하는 연예인들도 고전미술 앞에 서면 한없이 무력한 하나의 개체일 뿐이다. 고전을 본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어이없는 취향을 거울에 비춰보는 일과 같은 것이다.

 

초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로 지목되는 거장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5~92)의 대단한 걸작 한 점이 런던에 있다. 내셔널갤러리의 문제작 “세례받는 그리스도(1450)”가 그것인데, 고전의 매력을 듬뿍 안겨주는 그림 한점이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피에로는 싱싱한 원근법을 구사하며 파격적 화면구성을 하였던 화가이다. ‘원시입체주의자’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그의 그림들은 색다른 화면 구성과 색다른 색감으로 하여 수많은 르네상스의 고전들 중에서도 아주 낯설게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는 편이다. 그의 원근법을 그 당시의 다른 그림들과 비교해 보면 교묘하면서도 파격적이다. 그의 화면구성에서는 수학자다운 기하학적 진취성이 돋보인다. 또한 그의 그림을 무엇보다도 살려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빛의 효과다.

이 런던의 걸작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단강가를 떠돌며 물로 세례를 하여 회개와 죄씻음을 위해 분투하였던 세례 요한이 한 사발의 물을 그리스도의 머리에 붓고 있는 장면이다. 이 그림의 놀라운 시작은 물을 따라 이어지는 그림의 정확한 중심선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의 두 손바닥 사이를 지나 배꼽을 지나 오른 다리로 연결되는 그 중심선은 피에로가 의식하였던 성령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그 중심선은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비둘기처럼 임한 성령의 임재를 역설하고 있는 듯 하다. 그 비둘기는 자연스럽게 구름 편대의 일부분처럼 배치되어 너무도 확실하게 성경을 시각화 시켜주고 있다. 왼쪽의 세 천사들은 각기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대부분의 피에로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놀라움과 사색의 중간쯤에 존재하는 듯 하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확신의 포즈를 보여주고 있다. 세례 요한은 성경에 묘사된 것처럼 낙타 털 옷을 입고 가죽띠를 두르고 있다. 그는 한발을 들어올리며 물을 붓고 있다. 그의 자세는 흡사 발레리나를 연상시킨다. 발레리나가 보여주는 희망에 대한 가벼움을 세례요한은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오른편에는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는 사람도 보인다. (그 당시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삼각팬티가 과연 존재하였을까, 각자 상상하시도록…) 그림 속의 모두가 성령의 임재를 향해 모여 있다. 이 그림은 강물에 비친 풍경의 굴절을 보여주는 최초의 그림으로서 미술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그림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한 피에로의 놀라운 빛처리다. 마치 강력한 플래시가 터진 것 같은 상태의 그리스도 피부는 죄씻음을 보여주기 위한 피에로의 정성으로 보아주고 싶다. 빛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게 터질 수 있음을 우리는 사진관에서 터득하였다. 그리고 그 강력한 빛 아래에서라면 물체의 색이 보다 밝게 희석되어 나타날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 강력한 플래시의 효과를 피에로는 거의 육백년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그러한 깨달음은 성령의 존재를 심하게 믿었던 그의 믿음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수직형과 수평형이 병치되며 복잡한 구도를 형성하는 이 그림에서 그러한 피에로의 깨달음은 엄숙한 세례장면을 깨우는 힘이 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이다. 보이지 않는 성령을 정성껏 그려낸 한 화가의 위대한 힘이다.

정현종 시인이 읊었던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라고. 피에로라는 육백 년 전의 화가는 이미 그 진리를 터득하고 있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 강물에 굴절된 채 투영되는 산세폴크로(피에로의 고향) 산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예수님도 세례요한도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빛은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빛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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