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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78
채터튼/ 헨리 월리스
Chatterton/ Henry Wallis

 




죽음에 관한 한 연구 

우리 모두는 죽음을 연구한다. 살아가면서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가깝게는 사랑했던 부모의 죽음에 오열하며, 멀리는 안타까운 지인들의 죽음을 목도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는 죽어야 한다. 죽음이라는 불멸의 화두는 언제나 모든 예술의 존재 이유처럼 여겨져 왔다. 인간들은 갖가지 죽음의 유형들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그리고, 노래하였다. 모든 죽음에는 공평하게 안타까움이 내재되어 있지만, 특별히 안타까운 죽음들을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놀이 속에서 인간들은 죽음을 연구하듯이 그 죽음의 황당함을 읽고, 보고, 듣는다.
특별히 안타까운 죽음을 그려낸 그림의 한 점인 헨리 월리스(1830~1916)의 ‘채터튼(1856)’은 테이트브리튼에서 만날 수 있다. 헨리 월리스는 라파엘전파로 활동한바 있는 영국화가로, 화가로서 보다 수집가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유산을 상속받은 이후 수집에 열정을 바친 그의 도자기들은 세계적인 보물창고인 런던의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V&A)’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그림은 그가 젊은 시절 남긴 두 점의 화제작 중의 한 점이다. 공교롭게도 두 점 다 죽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다른 한 점은 ‘버밍햄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석공(Stonbreaker, 1857)’이다. (런던 밖에 있는 영국의 명화들은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의 속편쯤에서야 다룰 수 있을 것 같다. 예상했던 것 보다 많은 런던의 그림들이 아직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런던에 사는 명화를 70점 정도 다루려 했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애초의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있는 중이다.) 
영국 문학 역사상 가장 이례적이었던 한 젊은 시인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토마스 채터튼(1752~1770), 불과 만 열 일곱의 나이로 자살한 무명 시인이다. 살아 생전 조그마한 명예도 부도 누리지 못했지만, 영국 낭만주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채터튼이다. 10대 초반부터 가명으로 시를 발표했다는 그는 중세의 언어로 중세의 시인처럼 시를 발표했던 깜찍한 천재였다. 그는 독약을 먹고 자신의 외로운 다락방에서 자살함으로써, 죽어서야 비로소 매명의 초라한 후광을 얻는 비극적 시인의 전형이 되었다. 워드워스나 키츠 그리고 셸리, 바이런 등 영국 낭만주의의 거장들은 어떤 식으로든 체터튼이라는 비극적 선배의 모습 속에서 오랫동안 번민하였던 흔적들을 보여준 바 있다. 그들은 헌정시를 쓰기도 하였고, 체터튼의 짧은 문학과 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채터튼은 영국 낭만주의의 어두운 상징이었던 셈이며, 고독하고 가난한 젊은 글쟁이들의 영웅이었던 셈이다. 
1856년 이 그림이 ‘채터튼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로열아카데미에 전시되었을 때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잊혀졌던 비극, 놀라운 소년 시인의 죽음을 재현한 헨리 월리스는 일약 유명화가가 되었다. 마치 우리 눈 앞의 다락방에서 방금 쓰러진 것 같은 생생함은 당시의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 놀라움을 보여주기 위하여 헨리월리스는 용의주도하게 라파엘전파의 미술관을 실천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라파엘전파가 특별히 모델을 중시하는 것은 생동감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죠지 메레디스(George Meredith, 1828~1909)라는 젊은 소설가를 모델로 삼았다. 문학의 잔인함과 두려움을 너무도 잘 아는 소설가로 하여금, 갈기갈기 찢어버린 자신의 시 조각들을 쥔 채 죽어간 소년시인의 자세를 재현하게 하였던 것이다.
강렬한 색감들로 극적인 다락방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상징적인 소품들이 등장하는 것도 라파엘전파의 상투적(?) 수법이다. 시 조각들을 움켜 쥔 오른 손 옆에는 독약을 담았던 조그만 병이 뒹굴고 있다. 창백한 얼굴과 비교되는 더러워진 셔츠도 다분히 상징적이다. 열린 낡은 궤짝 속에서 넘치는 찢어진 종이 조각들은 시인에게만 일종의 보물이었을 필사본 시 원고들일 텐데, 성(聖)보다 속(俗)에 능한 나의 눈에는 왠지 무슨 숨겨진 거액의 오래된 채권들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서 얻는 깨달음은 대부분은 빛에서 오고 있다. 영원을 향해 잠든 몸뚱이, (에이 그냥 잔인하게 부르자,) 시체, 위에 쏟아지는 빛이다. 심장 근처에 머문 시체의 왼손을 중심으로 마치 섬광처럼 쏟아지는 햇빛이다. (놀랍다, 시체에도 햇빛이 쏟아지다니!) 그 햇빛이 자유자재로 들어 오도록 열어둔 다락방의 조그만 창문은 이 잔인한 죽음의 연구가 얻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조그만 화분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 어느 날 그 화분을 사다가 정성스레 창가에 올려 놓았을 이미 시체가 된 천재 소년시인 체터튼. 음습한 다락방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 공평하여 시체에게도 쏟아지는 그 아름다운 햇빛.
이쯤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시들어진 꽃에도 또 하루가 있다고 옆에 앉은 태양처녀 날 보고 말하네… (한대수作 ‘오면 오고’ 중에서)” 그래, 상냥한 태양처녀가 쓰다듬어 주는 불행했던 한 천재 소년시인의 주검 앞에서 우리는 지금 죽음와 햇빛을 함께 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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