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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JPG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80
희망/ 조지 프레드릭 와츠
Hope/ George Frederick Watts

 


희망의 알레고리
 
세상에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단어 ‘희망’. 희망이라는 단어는 어마어마한 영역을 지닌 추상명사다. 코 앞에 닥친 초침부터 먼 미래의 시간까지를 아우르고 있으며, 내가 사는 동네어귀부터 광활한 우주의 신비까지를 품고 있다. 인류는 희망과 더불어 생존해온 세상의 다른 이름이다.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희망이 쓰레기 종량제에 버려지고 난 쓸쓸한 길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희망은 너무도 복잡하고 거대한 몸집이어서 그 구체적 몸매를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약간씩 다른 희망을 품고 생을 꾸려나가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복잡다단한 추상명사와 정면으로 맞서 고민하고 과감하게 희망의 초상을 그려낸 화가가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인 조지 프레드릭 와츠(1817~1904)가 그린 ‘희망(1886, 테이트브리튼)’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탄 바 있는 사연 많은 그림이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때문이었다. 미국이라는 오묘한 나라의 최초 흑인 대통령을 꿈꾸며 그가 캠페인에 사용했던 그림이 바로 이 희망이라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최초 흑인 대통령이었던 인권운동가 넬슨 만델라가 어두운 감방의 벽에 걸어 넣고 수도 없이 바라 보았다는 그림도 바로 이 그림이다. 
조지 프레드릭 와츠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며 오랫동안 활동했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화가다. 조각을 공부하며 시작된 그의 미술인생은 비교적 다채로웠던 편이다. 가난한 피아노 조율사의 아들이었던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성공을 거두며 꿈에도 그리던 이탈리아로의 미술유학을 실현하기도 하였고, 런던 상류층인사들과 어울리는 개인적 영달을 맛보기도 하였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연 화가(1893)이기도 했던 그는, 초상화가로도 유명했으며, 라파엘전파의 새로움을 접수하여 영향을 받기도 하며 화풍이 변용되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상징주의(Symbolism)’가 그의 미술을 지배했던 것으로 미술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펜 대신 붓을 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의 상징적이고 사색적인 대표작으로 평가 받는 ‘희망’은 화가가 두 점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보는 것은 화가가 더 애착을 가졌다는 두 번째 버전이다.
커다란 구(球) 위에 앉은 한 여성이 아주 애처로운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잔뜩 몸을 구부린 채 앉아 있다. 게다가 그녀의 옷차림은 한겨울의 민소매 만큼이나 걱정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그녀는 맨발이다. 맨발에 익숙한지 그녀의 발바닥은 제법 단단해 보인다. 게다가 그녀의 눈은 붕대로 가려져 있다. 보이지 않는 상태다. 게다가 악기의 줄은 전부 끊어지고 단 한 줄 만이 남아 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 불쌍한 여인의 비참한 모습에 와츠는 왜 ‘불행’이 아닌 ‘행복’이라는 고상한 제목을 붙인 것일까? 이제부터는 필자의 혹독한 해석이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가급적 읽지 마삼!)
우리는 둥그런 지구 위에 앉아 있다. 언제 미끄러져 얼큰한 늪으로 빠져버릴지 모른다. 언제 미끄러져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릴지 모른다. 우리 모두는 아슬 아슬한 곡예를 하는 곡마단의 곡예사들보다 한 수 위의 위험한 존재들이다. 오매불망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게다가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우리 눈은 철저한 아집과 이기라는 붕대로 가리워져 있다. 우리가 고작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들뿐이다. 유행이라는 단체욕망으로 포장된 걸레조각 같은 옷들, 우리를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어주기 위해 끝없이 우리 주위를 맴도는 하이에나 같은 사회의 눈들, 아무리 자제하려 발버둥쳐도 뒷골목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드는 짐승만도 못한 욕망들. 우리가 세상과 사이 좋은 하모니를 이루려 연주하는 우리 생의 악기는 심히 고장 난 상태다. 달랑 한 줄을 남기고 모두 끊어져 버린 벼룩시장 터에서 뒹구는 고장 난 악기. 우리는 착각하고 싶을 뿐이다. 이 낡고 더럽고 삐꺽 이는 나의 악기가 세상이 알아주는 골동품이거나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어쩌고 만들어낸 명품이라고 착각하고 싶을 뿐이다. 이 더럽고 추잡한 우리의 몰골에 왜 음악가 헨델하고 이름이 같은 (같은 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 영국 늙은 화가는 ‘희망’이라는, 아직도 믿어 의심치 않고 싶은 추상명사를 가져다 지 맘대로 붙인 것일까?
조지 프레드릭 와츠가 바라본 희망의 초상은 바로 그런 것이었던 것 같다. 절망의 한편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것. 절망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것. 희망은 결코 우리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마음만이 알아 볼 수 있는 것. 우리의 조용하고 선경(仙境)같은 마음 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어떤 것.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한 것’. 단 한 줄의 현이 만들어내는 음악 같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힘. 성별은 여자. 
알레고리로 가득 찬 희망의 초상화다. 모두 모두 각자 분량의 희망에 푹 잠겨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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