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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숲과 비둘기 / 에른스트

hherald 2010.07.17 20:22 조회 수 : 8908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33
숲과 비둘기/ 에른스트
Forest and Dove/ Max Ernst

33그림.jpg

 

우연으로 다가온 필연

 

현대미술이 보다 과감하게, 투지 넘치게 용감스러워질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문학가 앙드레브르통의 ‘초현실주의선언(1924)’에 힘입은 바 크다. 초현실주의 문학의 신무기였던 ‘자동기술(Automatisme)’은 말 그대로 무의식의 세계를 자동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떠오르는 것들 모두를 버리지 않고 표현하는 것이다. 잠재의식, 꿈, 상상력, 광기, 초자연… 이런 무자비한 단어들이 인류 예술의 전통을 뒤엎어 버릴만한 메신저가 되었다. 의식의 허무함은 전쟁이라는 극단적 허구로 늘 증명되어 왔다. 사회로부터 구속된 언어를 해방시키는 것은 문학의 새로운 사명으로 등장하였다. 초현실주의 문학이 억압된 언어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했다면, 초현실주의 미술은 억압된 표현의 형식으로부터의 탈출을 추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언어와 표현은 물론 같은 학교 출신이다. 언어는 표현을 전제로 하고, 표현은 언어를 전제로 한다. 단 언어는 분명한 약속이지만 표현은 그 경계가 모호한 약속이다. 문학과 미술의 그런 숙명적 이질성은 그러나 인류 공통의 숙명인 ‘예술의 승리’를 위해 함께 공조하였다. 초현실주의는 문학과 미술이 함께 추구한, 완성되지 못한 예술 혁명의 또 다른 이름으로 새초롬히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          

 

독일의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에른스트(1891~1976)는 문학의 ‘자동기술(Automatisme)’을 미술로 가져와 마음껏 구사한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콜라주(Collage)’기법을 구사하여 표현의 혁명을 이룬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인 ‘숲과 비둘기(1927, 테이트모던)’는 초현실주의가 추구했던 우연과 필연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에른스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로타주(Frottage)’라는 기법은 거친 표면 위에 종이 등을 대고 문질러 질감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에른스트가 사용하고 있는 기법은 ‘그라타주(Grattage)’라고 불리운다. 캔버스에 물감을 바르고 거친 표면 위에서 긁어내는 기법이다. 그렇게 하여 바닥 표면의 거친 질감을 캔버스 위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뜻하지 않은 우연을 만들어내는 기법으로 문학의 자동기술과 같은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화가의 필연적 의식보다 우연한 무의식을 표출해 내려는 기법이다. 흡사 생선뼈 같이 보이는 이 그림의 나무들은 그렇게 탄생되었으니, 일종의 자동기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은 너무도 단순하다. 밤의 숲을 표현하고 있다. 하늘아래 기괴하고 무서운 나무들이 밀집되어 있고 그 아래에서 아직 덜 자란 듯한 비둘기 한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그림이 주는 느낌은 그 신선한 질감과 형태로 인하여, 아마도 이십 세기 초반이었던 당시로서는 대단히 새롭고 유니크 하였을 것이다. 아무도 표현하지 못하였던 한밤의 숲 풍경인 것이다. 에른스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비둘기는 화가 자신의 다른 표현으로 알려져 있다. 일종의 분신(Alter Ego)으로 에른스트는 ‘로프롭(Loplop)’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 그 무서운 이야기를 자꾸 해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있다면, 결국 한보따리 듣고 나서는 한밤의 마당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던 공포의 추억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달빛아래 드러나는 나무의 형태를 보고 화들짝 놀라 본 경험이 있다면 금상첨화로 공감할 것이다. 그 어린 시절의 공포는 나와 세상의 싸움이라는 컴컴한 주제를 어렴풋이 인식시켜주는 우리들의 잠재의식으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만의 공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외로움. 에른스트는 자신만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하여 이 세상 아무도 표현하지 않았던 새로운 질감과 새로운 형태가 필요하였던 것 같다. 그 표현이 곧 자신만이 구사하는 언어로 세상에 남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것은 표현이 새로운 언어가 되는 경험, 즉 미술의 진정한 승리를 향하는 것이다.

 

밤의 공포를 표현하기 위하여 에른스트는 자신의 의식을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 이성, 도덕, 원인 등에 집착하지 않으며 자신의 즉흥적 감성의 분출을 그려내고 있다. 그 즉흥성을 위하여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그라타주’기법의 질감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무런 분석이나 성찰이 필요 없는 한밤 숲의 공포를 그린 최초의 화가가 된 것이다. 그런 에른스트의 순수한 표현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에른스트의 초현실이라는 우연은 우리에게 필연이라는 숙명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른스트가 즉흥적으로 발견한 한밤 숲의 공포는 인류 모두가 경험하는 모든 공포의 필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 재앙, 질병, 폭파, 추락, 실종, 파산, 침몰, 실직, 파탄……

에른스트의 공포를 보면서 우리는 웃을 수도 있다. 그의 공포를 그저 우연으로 그려진 것으로 믿고 싶으니까. 이 세상 필연들을 그저 우연이라고 믿고 싶으니까. 그러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어두운 믿음의 숲 속 비둘기 한 마리는 분명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가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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